3. 아버지의 후회

- 강하게키우고 싶었다.

by 만을고옴

몇년 전이었다.

형과 내가 다 장가를 가서 각 가정을 꾸리고 난 후였다.


"내가 그때 왜 그랬는지 모르겠다."


아버지가 갑자기 운을 뜨셨다.

그리고 계속 말을 이어가셨다.

때는 형과 내가 국민학교를 다니고 있을때였다.

그때 망우리에서 아버지는 쌀가게를 운영하시면서 우리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셨다.

쌀 곡물등의 소도매상이어서, 매일 엄마는 가게를 보고,

아버지는 각 거래처 쌀가게에 쌀과 배달을 하셨다.

쌀 곡물 유통량에 따라서 지방에 쌀 곡물들을 직접 싣고와서 가게에 쟁겨놓고 하셨다.

가게는 방이딸린 가게로 그방에 부모님이 거주하시고,

우리는 그건물에 딸린 세대 집에서 친할머니, 형, 나 이렇게 같이 지냈다.

아버지는 기독교 신앙심이 강하셔서 항상 주일이면,

서울의 첫 상경해서 등록하신 교회에 어머니랑 같이 예배를 드리셨다.

형과 나는 아직 나이도 어리고 부모님이 출석하시는 교회에는 거리가 좀 있기에,

우리는 집에서 가까운 교회를 다녔었다.

어린이 예배는 일찍 시작하고 일찍 끝나기에 집에오면,

부모님 방에서 가게를 지켜야만 했다.

딱 그때였다.

손님이 찾아와 팥 한되를 달라 하신다.

형은 팥 한되를 팔고 몇푼을 받았다.


오후에 부모님이 집에 도착하시고,

난리가 났다.

형이 아버지에게 엄청 혼나고 있는것이다.

지금 그렇게 혼내면 아동학대죄로 잡혀갈지 모른다.

암튼 형은 그렇게 아버지에게 호되게 혼났다.

이유는 팥을 정가에 팔지 못하고 밑지게 팔았다는 이유에서 였다.

그때 아버지의 나이도 30대 초반이었다.

아버지는 그때를 회상하면서 후회 하고 있었다.


"그때 어린애를 잘 팔았다고 격려해주질 못할망정, 네 형한테 못씁짓을 한거같다고..

그 얼마나 되지 않는 돈이 아까워, 네 형을 혼내켰다고.."


아버지도 서울에 누구의 도움도 받지 못하고,

오로지 살아야 한다는 신념하나때문에,

너무 젊어서 자식들의 기분 이런걸 헤아릴 수 없었다고,


형은 아버지한테 정말 많이 혼났다.

일단 첫째이기도 했고, 아버지의 기대가 많았던거 같다.

아버지의 훈육은 말을 듣기도 전에, 주먹이나 싸대기를 후려 치시곤 했다.

나는 아버지가 무서워서 눈치 보면서 생활을 했던거 같다.

형은 사춘기가 되면서 거의 집에 없었다.

밤늦게 들어오고, 아침 일찍나가고, 거의 아버지를 피했던거 같다.


나도 중학교때 일이다.

방학이라 미용실에서 머리를 조금 길게 남기고 짤랐다.

스포츠보다 조금 더 길게.

오후에 잠간 집에 아버지가 들리셨다.

소파에 앉아있는 나를 보시곤,

갑자기 달려드시더니 내 머리를 움켜지고 바닥으로 내동댕이 치셨다.

머리 꼴이 그게 뭐냐며,

호랑이 얼굴로 욱박 지르시던 아버지가 아직도 생생하다.

나는 참억울 함에 그냥 눈물만 흘렸던 기억이 있다.


지금 아버지게 왜 그래셨냐고 물으면 언제 그랬냐고 모른다고 답하신다.

그리고, 하시는 말씀이


"너희 강하게 키울라고 그랬어~"


이 한마디 뿐이다.

그 말 한마디에, 그때 그러수 없는 아버지의 심경과 상황등이 결코 이해가 되지 않는건 아니다.

무일푼으로 서울에 상경하여 서울에서 혼자 자리 잡으시느라 얼마나 힘드셨을까?

혹시나 아들들이 나쁜 길로 들어서지 못하게,

어쩔수 없이 엄격하게 더 그랬을지 모른다.

남들에게 손가락질 당하지 않으실려고.

그래서 더 마음이 찡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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