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국정원에서

- 조사를 하다.

by 만을고옴

국정원에 도착해서 나와 12명은 각자 뿔뿔이 흩어졌다.

그리고 각자 방을 배정받고, 각자 방 안에서 대기를 했다.

건물도 그랬지만. 방안은 깨끗하고 안락하기까지 했다.


"샤워하신 다음에 여기 보이시는 속옷, 운동복 갖다 놨으니 갈아입으시면 됩니다.

오늘 일정은 없고, 개인 신변 정리하시고 저녁 드시면 돼요.

내일부터 조사 들어가니 차분하게 쉬시면 됩니다.."


하루는 방 안에서 그냥 쉬라고 한다.

무슨 조사를 하려고 하는지 도무지 이해를 할 수 없지만, 별 신경 쓰이지 않는다.

직원 말대로 방안 욕실에서 샤워를 했다.

따뜻한 물이 나의 긴장감과 피로함을 풀어 주는 듯하다.

침대 위에 놓인 깨끗한 속옷과 츄리니을 입고, 침대에 잠시 누었다.

저녁 식사는 방까지 직접 갖다주고, 다 먹고 나서는 직접 회수해 갔다.

다음날이 되고, 세면대에서

간단하게 세안을 하고, 아침 식사를 한 다음 곧바로 조사가 시작되었다.

국정원 직원이 나를 부른다.


"조사관님이 기다리고 계시니 같이 가시죠~!"


난 직원을 따라나섰다.

복도 끝에 다다랐을 때, 방으로 들어가는 문이 나왔다.


"조사관님 들어가도 좋을까요~"


"네, 들어오세요!"


"자, 들어가시면 됩니다."


난 방 안으로 들어갔고, 소파에 말쑥한 정장을 입은 남자 한분이 앉아 나를 맞이해

주었다.


"어서 오세요.! 아침 식사는 잘하셨어요?!!"


그의 말에서 따뜻함이 묻어 나온다.

얼었던 긴장감이 쏴악 녹아내리는 기분이 들었다.


"여기 앉아서, 차 한잔 하실래요?"


따뜻하고 달달한 첫 잔을 내게 내미었다.

그리고 그는 말을 계속 이어 갔다.


"저는 국정원 5급 조사관 정확실입니다. 처음 뵙게 되어 반갑습니다. 제가

당신의 신상정보를 조사할 텐데 전혀 긴장할 필요는 없습니다.

방과 식사는 맘에 드시던가요?"


"네, 아주 좋았습니다."


"잠도 편안하게 잘 주무 셨고요?"


"네"


"모두 좋았다니 다행입니다.!"


조사관의 차분한 목소리와 살며시 뜨인 미소는 나의 경계심을 해제시키기 충분했다.

북한의 조사 과정이랑 여기는 완전히 딴 세상이었다.


"근데 조금 문제가 있어요, 같이 탈북하신 12명의 신상은 파악이 되는데, 선생님 신상만 아리송하네요. 설명해 주실 수 있나요?"


나는 내가 원래 곰이었고, 이름은 만을고옴이고, 원래 태생은 남한의 강원도 산골짜기였으면, 100일 동안 마늘만 먹고 사람이 되었고, 북한으로 넘어간 어머니에게 사람이 된 모습을 보여 주려고 북한으로 넘어갔다가 잡혀서, 저 사람들을 구하고 탈 북한 내용을 시시콜콜 하나도 빼지 않고 말했다.

조사관은 내 말을 관심 있게 들어주면서도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혹시 이 말이 사실이 아니면, 당신은 다시 북한으로 추방될 수 있어요~!!

오늘 조사는 여기 까지만 하죠"


조사관의 말에서 조사가 잘못 흘러감을 나는 인지할 수 있었다.

정확실 조사관은 나의 이야기에 충격을 금치 못했다.

곰이 마늘을 먹고 사람이 되어 북한으로 갔다가 탈북했다니.

아무리 국정원 생활 15년 차인 자신이라도 이런 황당한 이야기는 처음이었다.

나의 눈빛이나 태도에서 거짓을 읽기는 어려웠지만, 이 이야기를 그대로 받아들였다가는 자신의 커리어는 물론, 국정원 전체가 웃음거리가 될 판이었다.


"이건 단순한 신원 미상 차원이 아니야. 뭔가 숨기고 있거나... 아니면 정말 문제가 있거나."


정확실은 깊은 고민에 잠겼다.

하지만 나 혼자 탈북한 것이 아니라 다른 12명과 함께였다는 사실에 실낱같은 희망을 걸었다.

그들에게서 나에 대한 단서를 얻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다음날 정확실은 함께 온 탈북자들을 자기 방으로 한자리에 모았다.

방을 배정받고 휴식을 취하고 있는 그들은 아직 긴장한 기색이 역력했지만, 남한 땅에 무사히 도착했다는 안도감도 엿보였다.

정확실은 자연스럽게 안부를 묻고, 탈북 과정에서의 고충을 들어주며 그들의 경계심을 조금씩 풀어나갔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나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다.


"함께 오신 만을고옴 씨에 대해 여쭤볼 게 있습니다. 그분은 북한에서 어떻게 지냈고, 언제부터 알고 지내셨습니까?"


12명의 탈북자들은 정확실의 질문에 눈빛을 교환했다.

그들은 국정원에 도착하기 전, 내가 곰이었다는 충격적인 고백을 듣고 한참을 술렁였었다.

처음에는 믿을 수 없는 이야기였지만, 나의 순진하고 솔직한 모습에 그들은 진심을 느꼈을 것이다.

그리고 이 세상 어디에도 곰에서 사람이 되었다는 사실을 받아들여 줄 곳은 없을 것이며, 자칫하면 내가 위험해질 수도 있다는 생각에 이르렀을 것이다.

결국 그들끼리 무언의 눈빛으로 나를 돕기로 약속했다.

그 약속을 기억한 그들은 나를 위해 일제히 입을 맞추기 시작했다.


"아... 만을고옴 씨 말입니까. 글쎄요... 솔직히 저희도 그분을 잘 모르디요."


"네? 전혀 모른다는 말씀이십니까?"


정확실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함께 탈북한 일행인데 모른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았다.

탈북자 중 한 명이 나서서 말했다.


"그분은 북한에서 체포되어서 정말 극심한 고문을 당하셨거든요. 그분에 대해 물어보면 자기 자신은 곰이라 했습네다."


다른 한 명도 덧붙였다.


"예. 고문 후유증이 너무 심해서 예전의 기억을 거의 잃으신 것 같습네다. 이름이나 나이 같은 기본적인 것도 제대로 기억 못 하니 말입네다..."


"몸도 성치 않았습네다. 저희가 겨우겨우 부축해서 함께 온 겁네다."


"아마 너무 큰 충격 때문에 정신적으로도 많이 힘들었을 겁네다."


12명 모두 비슷한 이야기를 했다.

내가 극심한 고문을 당해 기억을 잃었고, 신상 정보를 전혀 알 수 없다는 취지의 말을 해주었다.

심지어 어떤 사람은 고문 때문에 제정신이 아닌 것 같다고까지 말했다.

그들은 내가 추방당하지 않도록, 그의 황당한 이야기가 단순한 고문 후유증으로 인한 착란으로 보이게끔 치밀하게 거짓 증언을 해주었던 것이다.

정확실은 혼란스러웠다.

내가 너무나 멀쩡해 보였고, 자신의 이야기를 할 때도 망설임이나 혼란스러움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때 나는 오히려 너무나 확신에 찬 말을 했었다.

그런데 함께 온 사람들은 모두 입을 모아 고문 후유증으로 인한 기억상실을 이야기했다.

정확실은

'누가 진실을 말하는 것일까? 혹은 모두 진실의 일부만 말하는 것일까?'

라고 생각했다.

고문 후유증으로 인한 기억상실 가능성은 충분히 있었다.

북한에서 극심한 고문은 흔한 일이었고, 그로 인해 정신적인 문제가 생기는 경우도 많았다.

정확실은 나의 신상 파악이 더 이상 진전되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단순한 조사가 아니라 전문적인 진단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고심 끝에 정확실은 나를 국정원과 협력 관계에 있는 정신과 의사에게 보내기로 결정했다.

그는 국내 최고 수준의 정신과 의사이자 대학교수인 '최고의' 교수를 떠올렸다.

정확실은 최고의 교수에게 나의 특이한 상황과 동행 탈북자들의 증언을 설명하고 정밀 진단을 의뢰했다.

며칠 뒤, 나는 최고의 교수의 진료실에 앉아 있었다.

흰 가운을 입은 최고의 교수는 인자한 미소를 지으며 나를 맞이했다.

딱딱한 조사실과는 달리 편안한 분위기였다.

나는 최고의 교수에게도 내가 곰이었고 마늘을 먹고 사람이 되었다는 이야기를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최고의 교수는 그의 이야기를 끝까지 경청하며 중간중간 질문을 던졌다.

진찰이 끝난 후, 최고의 교수는 정확실 조사관에게 소견을 전달했다.


"정 조사관님, 만을고옴 씨의 진찰 결과, 해리성 장애, 즉 기억상실증이 맞는 것 같습니다."


"기억상실증이요? 하지만 제게는 전혀 그렇게 보이지 않았는데요?"


정확실은 의아해했다.

최고의 교수는 차분하게 설명했다.


"해리성 장애는 심리적 외상이나 극심한 스트레스 상황에서 발생할 수 있습니다.

특히 만을고옴 씨처럼 극심한 고문을 당한 경우, 충격적인 기억이나 자기 자신에 대한 기억을 통째로 잃어버리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심한 경우에는 현실 감각이 왜곡되거나 자신이 다른 존재라고 착각하는 경향을 보이기도 하고요."


그는 내가 곰이었다는 이야기를 언급하며 덧붙였다.


"만을고옴 씨의 경우, 고문으로 인한 극심한 정신적 충격이 과거의 기억을 봉인하고, 자기 자신을 동물로 착각하게 만드는 형태로 발현된 것으로 보입니다.

이는 매우 드문 경우지만, 심한 외상성 스트레스 장애(PTSD) 환자들에게서 나타날 수 있는 일종의 해리 현상입니다."


최고의 교수는 나의 현재 상태는 안정적이며, 시간이 지나고 심리 치료를 병행하면 점차 호전될 가능성이 있다고 소견을 마무리했다.


최고의 교수의 전문적이고 납득 가는 설명에 정확실은 고개를 끄덕였다.

12명의 탈북자들이 입을 맞춘 것도, 내가 내입으로 곰 이야기를 하는 것도 결국 고문 후유증이라는 하나의 퍼즐로 맞춰지는 듯했다.

더 이상 그의 신상에 대해 깊이 파고들기보다는, 의사의 소견을 바탕으로 그의 상태를 관리하는 쪽으로 방향을 잡는 것이 합리적이라고 판단했다.


결국 나는 최고의 교수의 진단 덕분에 국정원 조사를 무사히 통과할 수 있었다.

곰이었다는 나의 비밀은 고문 후유증으로 인한 착각으로 받아들여졌고, 나는 기억상실증 환자로서 남한에서의 새로운 삶을 시작하게 되었다.

12명의 탈북자들의 기지와 최고의 교수의 진단 덕분이었다.

물론 나 자신도, 그 모든 상황 속에서 평정심을 잃지 않고 자신의 이야기를 진솔하게 해냈기 때문이기도 했다.


"여러분, 이제 여러분들은, 6개월 동안 [하나원]에서 한국사회의 적응을 위한 교육을 받으실 예정입니다.

오늘 하루 편히 쉬시고, 내일 아침 소집 후 [하나원]으로 이동하겠습니다."

방안의 스피커에서 따뜻한 직원의 목소리가 들린다.

하나원은 또 어떤 곳인가~~?? 궁금증과 호기심의 설렘을 안고,

사람들과 함께하는 자기 자신을 생각하며,

잠 못 이루는 마지막 밤의 잠을 청한다.


[다음 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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