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이 보이지 않고 막막할 때

해는 동이 트기 전이 가장 어둡다

비가 내리는 날이었다. 콘크리트 길은 연기로 자욱하고 산 중턱에는 안개가 서려있었다. 사방에선 비에 섞인 흙냄새가 올라오면서 뒷마당에 있는 싱싱한 풀들은 냄새를 물씬 풍겼다. 몇 시간이 지나도 검게 피어있는 먹구름들에서 후드득후드득 굵은 빗줄기가 계속해서 내려왔다. 모니터 앞에 앉아서 일을 하다가 다시 밖을 보니 사방이 진한 회색빛으로 자오록해졌다. 나는 기분이 꿉꿉해져 찬물로 세수를 하고 방에 들어가 침대에 누웠고 이내 잠에 빠졌다. 하지만 그날 새벽 예고도 없이 치는 천둥에 소스라치게 놀라서 깼다. 창문 사이로 물이 들어오진 않았는지 확인하고는 밖을 살펴봤다. 우르릉 대는 천둥이 조금은 무서워져 몸으로 이불을 돌돌 말아서 감쌌다. 눈을 감으면서 이 비가 계속되면 세상이 물에 잠겨버릴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 자신이 물속에 빠져 아래로 깊숙이 사라지는 상상을 하면서 다시 잠에 들었다. 다음날 눈을 떴을 때, 창밖에서 여기저기서 울어 대는 새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따사로운 햇살이 내 방 창문으로 비껴 들여와있었다. 커튼을 마저 걷고 밖을 보니 비가 언제 왔냐는 듯 하늘엔 무심한 뭉게구름이 흘러가고 있었다. 

날씨는 변화한다. 해가 쨍쨍할 때도 있고 바람만 선선하게 부는 날이 있고 비가 올 때도 있다. 해가 잘 들 땐 비가 오는 것을 예측하지 못하듯, 일이 잘 풀릴 땐, 기쁨에 심취해있어 나중에 인생에 찾아올 비바람과 같은 시련을 예상하지 못한다. 겨울이 지나야 봄이 오듯 극심한 한기를 견디면 온화한 날씨가 찾아온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봄에는 항상 날이 좋은 것만은 아니다. 사람이 살아가는 것 또한, 천편일률적으로 반복되지 않는다. 내가 지금의 가시밭길을 걷는다는 생각이 들 때면 눈물이 찔끔 나긴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이 일을 가벼운 마음으로 다른 사람들에게 이야기할 수 있게 된다.

예전의 나는 일이 잘 풀려도 언제 찾아올지 모르는 어려움을 생각했었다. 그렇기에 행운과 불운 중 하나에 기울이지 않는 삶을 살고 싶어 했고, 행복 끝에 불행이 있다면 나는 불행 전에 있고 싶었다. 그러나 작년은 나의 바람과 다르게 잔잔하게 흘러가지 않았다. 유독 사람들과 부딪히는 일도 많았고, 무리한 스케줄로 나와의 약속보단 남과의 약속을 더 우선시해야 했기 때문에 나의 건강과 생활을 포기해야 했었다. 그러다 보니 능력의 절대량을 넘어 무리했었다. 당시엔 힘들었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나의 역량을 기르는 과정이었던 것 같다. 고비가 올 것 같으면 그 자리를 피하려고 했던 예전과 다르게 그 해는 억지로라도 참고 버텼던 시간이었기 때문에 나에겐 의미가 컸다.

비가 올 때는 해가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는 사라진 것일까? 해는 항상 그 자리에 있지만 먹구름에 의해 보이지 않을 뿐, 가려진 곳에서 해는 계속 빛나고 있다. 비가 그치고 나면 항상 하늘은 맑아지는 것처럼 나도 당장은 보이지 않더라도 한결같이 계속 앞으로 가면서 어제보다 더 나은 나를 위해 살아가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