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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온수ONSU May 26. 2022

위대한 레아

단편소설

오후 1시. 구름 한 점 없는 화창한 날. 가을 햇살이 찬연스레 그녀의 방을 비쳤다. 그녀는 테라스에 나와서 숨을 들이켰다. 따스한 바람이 녹아든 맑은 공기에 머릿속이 상쾌해졌다. 그녀는 앉아서 책을 폈다. 그러자 그녀가 애완용으로 키우는 오리가 자리에서 일어나 되똥거리면서 그녀에게 다가왔다. 오리가 테이블 아래에서 뚫어져라 그녀를 쳐다보며 꿱꿱거리자 그녀는 하는 수없이 자리에서 일어나 책을 테이블에다가 놓고 사료를 꺼내 밥그릇에 채워 넣었다. 오리는 밥그릇 쪽으로 뒤뚱뒤뚱 걸으며 주둥이 끝으로 사료를 하나씩 집어먹었다. 레아는 주방으로 가 커피를 내렸다. 그리고 따뜻한 커피를 머그잔에 따르자 훅훅 더운 김이 뭉게뭉게 일어났다. 그녀는 커피를 마시려다가 뜨거운 물에 혀를 데이고 말았다. 그녀는 재빨리 냉동고 문을 열어 얼음을 꺼내 입안에 넣고 우두둑 깨어먹었다. 커피를 식히려 컵을 테이블 위에 올려놓고, 그녀는 머그잔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구불구불한 물결들이 넘실거리는 모양과 그 속에 희미하게 보이는 그녀 자신의 모습을 보면서, 과거와 얼마 전 선명하게 꾸었던 꿈 내용을 떠올렸다.



25년 전, 그녀는 남편을 여의고 자신의 아들 에오스만을 보고 살아왔다. 그녀는 아들이 변호사가 되기를 원했고, 에오스는 어머니의 바람에 따라서 사법시험을 준비했지만, 그는 낙제를 하게 되었다. 반복되는 낙방에 에오스는 절망하고 변호사의 길이 아닌 생활 속 아름다움을 읊는 시인으로 살고 싶다는 마음을 품게 된다. 에오스는 시를 지으면서 행복감을 느꼈다. 그리고 이 일을 진정으로 좋아하게 되었다. 어느 날 그는 어머니에게 시인으로 사는 것이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그녀는 이를 강력하게 반대했다. 에오스는 어머니의 마음을 좀 돌려 보려고 몇 번이고 설득했으나 어머니는 시인으로 사는 길은 변호사가 되는 길보다 훨씬 더 좁은 길이고, 시험에서 떨어지는 실패에 흔들리지 말고, 해야 하는 일을 맞서 나가라고 엄숙하게 이야기했다. 결국 에오스는 다시 시험을 준비해 치르게 되고 통과를 하게 되지만 합격증을 손에 넣은 그는 기쁘지 않았다. 에오스는 자신이 하고 싶은 일과 해야 하는 일 사이에서 갈등과 회의감을 느껴 결국 투신을 하게 되었다. 시험이 끝나 시간이 한참 지나도 아들이 집으로 돌아오지 않자, 어머니는 밖으로 나가 에오스를 찾으러 다녔다. 그리고 산골 짜리 절벽 아래에서 피범벅에 싸늘한 주검으로 변한 자신의 아들을 보고 어머니는 울분을 토했다.

그녀는 자신의 아들을 업고 집으로 데려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살릴 방법을 모색하지만, 이미 아들은 죽은 몸이었기 때문에, 그녀의 온갖 힘을 다한 치료에도 소용이 없었다.  결국 그녀는 아들의 장례를 치르게 되었다. 그녀에게 에오스가 없는 삶은 지옥과도 같았다. 그녀는 장례가 끝난 이후에 허구한 날 술을 훌쩍훌쩍 마셔댔고, 매일 새벽에 깨서 아들 생각이 나서 서럽게 흐느꼈다. 그녀는 밤낮으로 에오스의 생각만 했으며 술을 먹고 잠들면 다시 에오스 생각에 깨서 울다가 다시 술을 들이켰다. 가까운 친척들까지 알코올 중독인 그녀를 포기했으며 그녀는 폐인과 다름없는 삶을 살고 있었다. 망령이 된 에오스는 슬픔에 잠겨 망가지는 어머니를 보며, 가슴이 찢어질 듯 아팠다. 그래서 자신을 그리워하는 어머니를 위해 그녀의 꿈에 나타나기로 했다.


그날 밤 꿈속에 그녀는 저승길에 서 있었다. 검은 잉크를 물에 탄 듯 시꺼먼 강물, 널브러진 해골바가지와 뼈, 그리고 피로 붉게 물들인 돌들을 보면서 그녀는 저승에 있다는 사실, 즉 자신이 죽었음을 직감했다. 그녀는 자신에게 따라오라는 듯 공중에 날고 있는 벌들을 발견하고 그들을 따라 앞으로 걷자, 자신의 아들 에오스의 주검이 눈에 보였다. 그녀는 아들의 시신을 발견하자마자 그에게 달려갔다. 그녀가 투신한 절벽 아래에서 봤던 아들의 처참한 모습 그대로였다. 어머니 눈에서는 눈물이 그렁그렁 맺히기 시작했다. 그러자, 허공에서 갑자기 에오스의 목소리가 들렸다. 소리가 들리는 방향으로 고개를 틀어보니 아들의 영혼이 떠 있었다. 

“에오스야, 정말 내 아들 에오스, 네가 맞니?”

그녀가 에오스를 간절하게 바라보며 이야기했다. 에오스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에오스, 네가 떠난 이후로 나는 거듭해서 후회하고 너에게 했던 말과 행동들을 되씹으면서 지냈단다. 너도 나의 전부를 아는 게 아닐 텐데, 너의 나머지를 내가 이해하지 못하고 제대로 된 판단을 하지 못해서 내가 너를 비참하게 만들었구나. 어머니로서 자격이 없었던 못난 지난날의 나를 용서해주고 내가 있는 곳으로, 다시 나와 함께 가지 않겠니?"

그녀는 걷잡을 수 없이 흐르는 눈물을 추스르면서 자신의 이야기를 가까스로 말했다. 에오스는 눈물이 가득 고인 어머니의 눈을 뚫어져라 보았다. 그리고 어머니는 다시 자신의 솔직한 얘기들을 이어갔다.  

"에오스, 나는 일도, 꿈도, 인생도 나 자신도 포기하고 너를 25년 동안 키워왔단다. 지금까지의 나의 모든 생활은 온통 너였기에 이제는 네가 없으면 나는 아무 존재도 아니란다. 네가 없는 동안, 이기적이었던 나를 스스로 얼마나 많이 원망했는지 아니, 나는 너를 잘 안다고 생각했는데, 너의 예외인 모습을 알지 못했기 때문에 너의 아픔을 예측하지 못했단다. 눈에 보이는 네 모습이 전부가 아님을 알았으니, 과거와 다르게 네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나와 함께 지내자. 제발 돌아와 주렴."

에오스의 어머니는 슬픔에 목이 멘 채 말했다. 그러자 에오스가 입을 뗐다. 

"어머니 세상에 돌이킬 수 있는 일만이 있는 것은 아닙니다."

에오스는 잠시 입을 꾹 다물었다가, 다시 말을 꺼냈다.

 "저는 이미 죽음 몸입니다. 그리고 어머니는 지금까지 어머니의 의무를 잘 다해오셨기 때문에 제가 다시 돌아가더라도 어머니께선 이전처럼 기쁘지 않으실 거예요. 그러니 이젠 제가 어머니께 진정으로 필요한 선택의 권리와 기회를 드리고 싶습니다. 제가 마음만은 항상 어머니를 생각하고 가까이에 있음을 잊지 말아 주세요."

에오스는 자신에게 눈을 떼지 못한 채 울고 있는 어머니를 꼬옥 안아주고 홀연히 떠났다.


아들의 망령이 떠나자, 레아는 잠에서 깨어나 몸을 일으킨 채 침대에 멍하게 앉았다. 그녀는 자신의 지난 25년의 모습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그녀는 그녀의 어머니가 했던 방식에 따라 결혼을 하고 아이를 가졌다. 그것은 그녀의 선택이 아니었지만 모든 책임은 그녀의 것이었다. 그녀는 대기업의 소속 직원이었고, 동시에 아이가 생긴 그녀는 사회생활을 이어나가면서 악착같이 일을 해보았다. 하지만 배가 불러올수록 그녀의 육아 휴직은 빈번해지고 늦게 출근하는 일도 잦아지면서, 직장 생활은 힘들어져만 갔다. 그녀의 현재 일을 유지하기도 버거웠기에 결국 퇴사를 하게 되었다. 그녀는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전업주부로 전향하게 되었다. 그 이후로도 그녀는 육아에 몰두하면서 그녀의 젊음, 건강, 직장, 동료와 친구, 그리고 꿈과 계획, 그리고 미래까지 자꾸만 포기해야 하는 것들이 생겼다. 수많은 희생을 통해, 그녀는 뱃속에 있는 이 아이만은 자신처럼 잃는 것만을 생각하지 않게끔 만들어 주고 싶었다. 레아는 자신과 똑같은 환경에 처해진 여성들 중 그녀 자신만 합리적인 공정을 내세우면서 균등한 기회를 바랄 수 없었다. 설상가상으로 그녀의 남편까지 사고로 죽게 되었다. 레아는 이러한 냉혹한 현실을 살기 위해 끈덕지게 버텨야 했다. 그래서 그녀는 자신의 아들에게도 엄격해질 수밖에 없었고, 이런 과정 중 모진 아픔이 있더라도 아들이 성공해서 자신과 다른 삶을 살길 바랐다. 하지만 그 집착이 자신과 아들을 불행하게 만들었음을 깨닫게 되었고 레아는 다른 사람의 미래가 아닌 본인의 미래에 대해 생각해보게 되었다. 그녀는 에오스를 낳기 전 가졌던 꿈을 떠올렸다. 그것은 PD였다. 하지만 아이를 키우면서 가지기 좋은 직업은 아니었기 때문에 그녀가 포기했던 꿈이었다. 눈동자에 초점이 없던 레아의 눈에는 생기가 돌기 시작했다. 그리고 일어나 널브러진 술병을 하나씩 치우고 물건을 주워 담기 시작했다. 이후에 그녀는 다시 대학 시험을 준비했다. 그녀는 지망하던 곳 중 방송통신학과에 합격해 들어가게 되고 PD의 꿈을 향해 조금씩 나아가게 되었다.


따스한 오후, 그녀는 창문 밖으로 지나가는 풍경을 보면서 노트북을 켰다. 책상엔 쌓인 원고와 그 옆엔 따뜻한 커피가 놓여 있었고 노트북 화면엔 그녀가 정리하다만 스토리보드 파일들이 띄워져 있었다. 그러자 오리가 엉덩이를 되똥거리면서 그녀에게 다가오면서 꿱꿱거렸다. 그녀가 자리에서 일어나 선반 위에 사료를 꺼내 밥그릇에 채워 넣자, 오리는 뒤뚱뒤뚱 걸으며 밥그릇을 앞에 두고 가만히 레아를 보았다. 안경을 쓰고 머리를 질끈 묶은 채 노트북을 바라보며 희미한 웃음을 띠고 있는 레아는 그 전과는 완전히 새로운 모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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