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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온수ONSU May 27. 2022

불안할수록 삶은 더 간절해진다

김애란 비행운을 읽고 나서 


책에 대한 첫인상 

비행운. 책의 제목을 보고 처음엔 방황하는 사람의 삶에 대해 이야기하는 내용인 줄 알았다. ‘비행’은 길을 잃은 사람들을 위한 단어라고 느껴서 당시 고등학생이었던 나는 왠지 모르게 그 단어에 끌려 책을 구매했다. 깊은 호수를 연상하게 하는 하늘색 표지엔 얼굴이 보이지 않는 사람이 보였다. 한쪽 다리만 빼놓고 나머지는 물속에 잠겨있는 것 같았다. 사람이 물속에 빠져서 자맥질하다가 생기는 물살 때문에 얼굴이 가려져있는 건가, 아니면 물풍선에라도 맞아서 얼굴만 틀어져 있는 건가, 얼굴이 보이지 않는 이유에 대해 나름의 상상을 해봤다. 사람이 한쪽 발로 지그시 힘을 주어 밟는 줄의 의미는 왠지 모르게 나에게 죽음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긴장감을 주었다. 그가 마저 그 줄을 넘어가면 위태로운 상황에 갈 것이라고 생각했고 다른 한쪽 발을 두고 도중에 줄에 올라타는 것을 중단할지 아니면, 하던 행동을 이어갈지 궁금해졌다. 그가 삶과 죽음의 경계 사이에서 주저하고 있는 원인은 무엇일까. 생사의 갈림길에 서있는 그의 마음속 이야기가 궁금했다. 그의 얼굴 전체가 물속에 잠겨있어 화면상에선 그의 표정이 보이지 않지만 분명 억울하고, 허망하고, 좋지 않은 표정을 짓고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책의 내용

작가는 불운한 일상에 대해 묘사했다.  첫사랑이었던 선배가 푸드 파이터 방송에서 자신을 뚱뚱한 엑스트라로 출연시킨 이야기. 한 달 넘게 오는 장마에 마을이 침수되고 어머니는 당뇨로 절식하고 죽은 그녀를 데리고 생존을 위해 발버둥 치는 이야기, 하루하루를 연명하는 신혼부부에게 계획하지 않은 아이가 생기고 그들이 사는 집에서 벌레들이 계속해서 나오는 이야기. 절친 둘이서 우정여행을 갔지만, 결국엔 불협화읍으로 끝이 나는 이야기 등등 연쇄적으로 일어나는 비극들에 덩달아 나도 슬퍼졌고 책을 읽으면서 같이 침울해지는 느낌이 들어 결국엔 중간에 읽다가 책을 덮어버렸다. 가끔 난해한 표현들이 나올 땐 두세 번 문장을 다시 보면서 이해하려고 했다. 예를 들어, ‘바람이 불자 기옥 씨의 브래지어 위에 핀 가짜 꽃들이, 이름을 알 수 없는 이국의 열대 식물들이 휘청거리는 느낌이 들었다’ 같은 문장을 볼 때면 집중하다가 흐름이 끊기는 경우가 많았다. 간결한 글만 보다가 현학적인 표현이 쓰인 문장을 보니 무슨 느낌인지 공감하기가 어려웠지만, 계속 읽다 보니 문장을 음미하는 맛이 있어 작가의 묘사력을 좋아하게 되었다. 그리고 5년이 지난 지금 책장 정리를 하면서 하늘색 표지가 눈에 유표히 띄어 과거에 읽었던 그 책을 꺼내보았다. 아랫면이 누렇게 때가 타고 페이지도 바래진 걸 보면서 괜히 나의 지나간 일을 회고하기도 했다.


나의 비행운

어렸을 때부터 나는 그림 그리는 작가가 되고 싶었다. 그리고 그 꿈을 명확했다. 누군가 나의 그림을 감상함으로 인해, 다른 사람들의 마음에 파고들어 그것이 나만의 것이 아닌 다른 사람들과 나누는 게 근사해 보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언젠가부터 하루 종일 밖에 일한 뒤 소파에 앉아서 꾸벅꾸벅 조는 엄마가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시간이 지날수록 '생계'라는 부분에 대한 걱정과 동시에 "하고 싶은 일"과 "해야 하는 일"에 대한 물음이 서서히 찾아왔다. 미래에 대한 제대로 된 보장도 없는데 주변에서 다 핀잔을 주는 좁은 길을 좇기엔 나의 꿈이 너무 사치스럽다고 느껴졌다. 고3이 되자 주변 사람들과 스스로를 많이 비교하게 되고 불안했다. 하지만 항상 그것을 겉으로는 드러내지 않으려고 했다. 불안하다고 티를 내면 내가 약한 거고, 힘들다 말하면 어린애 같을 것 같아서, 오히려 내가 가는 길에 대한 확신을 주변 사람들에게 호언장담했다. 그렇게라도 말해야지 인서울을 준비하는 친구들보다 덜 뒤처져 보이고, 지금보다 덜 불안해질 수 있을 것 같아서 했던 행동들이었다. 그러면서 막판에는 친구들이 하는 걸 따라서 하려고 했고, 나의 어중간한 선택으로 인한 결과는 처참했다. 그리고 그 후회들을 전부 주변의 탓으로 돌렸다. 가족에 대한 탓, 환경에 대한 탓, 친구들에 대한 탓, 그리고  나에 대한 탓. 실패가 내가 부족해서 생긴 일임을 인정하기 싫어서 주변 사람들을 탓했던 비겁했던 나. 그리고 비행했던 기억.


감상과 마무리

비행운 책은 여러 불운을 모은 이야기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영화 ‘기생충’을 본 것처럼 실제는 아니지만 너무 현실같이 느껴져 찜찜한 기분이 들었다. 좀 더 밝고 따스한 이야기를 바라는 마음이 있었지만 한편으론, 힘들었을 당시 이 책을 읽었을 땐 슬픔을 슬픔으로 위안을 받았던 것 같았던 느낌을 받았다. 그래서 소설 속 인물들의 불행을 보면서 그들을 동정하면서 공감이 갔다.

 “힘든 건 불행이 아니라 행복을 기다리는 게 지겨운 거였어.”라는 대사가 가장 기억에 남는데, 안될 것을 알면서도 희망을 놓지 않으려는 인간의 모습을 그린점이 좋았다. 불안은 인간의 삶에 유한하고도 근본적인 감정이라고 생각한다. 행복과 불행 그 사이엔 항상 불안이 존재한다. 삶에 대한 간절함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언제 올지 모르는 최악의 사태를 항상 걱정하기 때문에 막상 일이 잘 될 때도 불안해한다. 모든 게 다 부정적으로 느껴지고 회의감이 들 때, ‘한 치 앞을 못 볼 때일수록 일단 살아라.’라는 말이 떠올린다. 그래서 현재를 사는 중이다. 미래를 걱정할 필요도 과거에 머무를 필요도 없이 이 사람 저 사람에 묻혀서 그냥 지금을 살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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