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미터〉를 보고 난 뒤
영화 〈100미터〉를 보고 난 뒤,
나는 이런 질문을 하게 되었다.
나는 지금 무엇을 위해 예술을 하고 있는 걸까.
“현실이 무엇인지 모르면, 그곳으로부터 도망칠 수도 없다.”
영화 속에 등장하는 이 대사는 이상하리만큼 오래 마음에 남았다.
이처럼 나를 둘러싼 현실을 정확히 인지하는 일은 생각보다 훨씬 어렵다.
나는 지금 어디에 서 있는 걸까.
무엇을 향해 가고 있는 걸까.
이 질문이 드는 순간, 나는 생각보다 자주 눈을 돌렸다.
올해는 유난히 ‘잘’ 살고 싶다는 마음이 간절해졌다.
돌아보면 지금까지의 작업들은 어쩌면 운 좋게 시기가 맞아떨어진 지원 사업이나 외주 작업에 나를 끼워 맞추는 과정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런 일이 있을 때면 오히려 마음이 편안해졌다.
단기적인 목표가 분명했고,
그 목표를 향해 치열하게 달리기만 하면 되었기 때문이다.
눈앞의 과제를 하나씩 해결해 나가는 과정에서 얻는 안정감은 생각보다 컸다.
해야 할 일이 정해져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나는 안도하고 있었다.
그곳은 분명 나의 도피처였다.
하지만 일이 모두 끝나고,
나를 위한 작업을 해야 할 때면 상황은 달라졌다.
꿈꿔왔던 나만의 작품을 만드는 순간임에도 불구하고,
손에 잡히지 않는 이상만을 쫓고 있는 기분이 들었다.
그 틈으로 허무함과 불안이 스며들었다.
내가 가는 이 길에 끝은 있는지,
이 막연한 시도가 정말 가치 있는 일인지
나는 끊임없이 스스로에게 묻게 된다.
정해진 흐름에 몸을 맡긴 채 작업하는 것이 아니라,
진짜 내가 말하고 싶고 표현하고 싶은 ‘나의 작품’을 만들고 싶다는 욕구가 커질수록
불안은 오히려 더 커져만 갔다.
나이가 들수록 더 두려워지는 것이 있다.
퇴화하는 재능,
평범한 인재가 되어버릴지도 모른다는 불안.
꿈과 희망을 품고 하루하루를 노력하며 살아왔지만,
막상 그 끝에서 마주한 현실을 온전히 받아들이는 일은 쉽지 않다.
그래서 나는 이 상태가 괴로워
자꾸만 눈을 감고 다른 일로 도망쳤다.
하지만 영화는 이렇게 말한다.
인생은 언제나 잃을 가능성으로 가득 차 있다.
그리고 바로 그 불확실성 속에 생명의 묘미가 있다고.
이 말을 통해 나는 깨달았다.
내가 해왔던 현실 도피는
무책임한 회피만은 아니었다는 것을.
내가 서 있는 지점이 어디인지,
나의 한계가 무엇인지 정확히 인지한 상태에서
그 경계 밖으로 벗어나기 위해 움직이는 것.
그것이 내가 꿈꾸는 진정한 의미의 도피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결국 나는 스스로를 끊임없이 증명하기 위해
작품을 만들고 있었다는 사실을 마주하게 되었다.
외부의 강박에서 벗어나
내 한계라는 현실을 직시할 때,
나는 비로소 매 순간순간에 집중하여 진정한 내 삶에 도전할 수 있게 된 것인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