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인의 존재를 존중할때 나의 자유가 생긴다
자유가 뭘까.
구속받지 않는 상태,
누구의 간섭도 받지 않는 선택,
내가 원하는 대로 움직일 수 있는 힘.
우리는 흔히 그것을 자유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진격의 거인》은 묻는다.
그 자유는 과연 누구의 위에 서 있는가.
주인공 에런 예거는 “이 세상에서 가장 자유로운 존재”를 꿈꿨다.
벽 밖의 세상을 보고 싶었고,
자신을 가둔 모든 구조를 부수고 싶어 했다.
그의 갈망은 누구보다 순수해 보였다.
하지만 벽 밖에 자신들을 증오하는 ‘사람’들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 순간,
에런의 자유는 방향을 바꾼다.
그는 그들을 이해의 대상이 아니라
자신의 자유를 방해하는 장애물로 규정한다.
그리고 결국 그는 ‘땅울림’을 선택한다.
타인의 생존권을 박탈함으로써
자신의 자유를 확보하려는 극단적 결단.
타인의 권리를 무시한 자유는
학살과 폭군으로 귀결된다.
에런은 누구보다 자유를 외쳤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는 거대한 역사와 운명의 흐름에 복종하는 도구가 된다.
그의 자유는 고립된 의지였고,
타인을 지워버린 채 완성된 힘이었다.
작품 속 케니 아커만은 말한다.
“누구든 무언가의 노예가 되지 않고서는 버텨낼 수 없다.”
누군가는 복수의 노예가 되고,
누군가는 꿈의 노예가 되며,
누군가는 자극과 쾌락의 노예가 된다.
에런 역시 자유라는 이름의 신념에 사로잡혀
결국 그것의 노예가 된다.
‘자유’라는 단어가 광기로 변하는 순간이다.
작가는 보여준다.
타인을 배제한 채 얻은 자유는
결국 자신마저 파괴하는 감옥이 된다는 것을.
에런의 최후는 고독하다.
자신이 지키려 했던 세계로부터조차 이해받지 못한 채
그는 사라진다.
생각하지 않는 행동은 자유가 아니라, 타인의 판단에 몸을 맡긴 복종일 뿐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일본 사회의 기저에 흐르는 ‘타인의 영역에 대한 감각’은 인상적이다.
스스로의 자유를 선언하기에 앞서 타인의 숨 쉴 공간을 먼저 인지하는 태도,
즉 ‘메이와쿠(めいわく, 타인에게 폐를 끼치지 않음)’로 대표되는 예절의 이면에는
나의 자유가 타인의 세계를 침범하지 않아야 한다는 고도의 자기 절제가 스며 있다.
나의 확장이 타인의 축소를 전제하지 않을 때, 개인의 고유한 공간은 비로소 사회적 연대의 출발점이 된다.
자유를 주장하기 전에
먼저 타인의 영역을 인지하는 태도.
그 안에서 자기 몫의 공간을 지키는 방식.
나의 자유가 타인의 숨 쉴 자리를 빼앗지 않을 때,
자유로움과 동시에 연대가 된다.
그러나 우리는 종종 자극과 파괴를 자유의 화신이라 착각한다.
통제되지 않는 감정의 분출, 도파민이 선사하는 즉각적인 쾌감,
타인의 세계를 무너뜨리는 강렬한 결단이 나를 해방해 줄 것이라 믿는다.
《진격의 거인》의 에런 예거가 걸어간 길도 이와 같았다.
그는 자신과 관련이 없는 타자들을 지워버림으로써 가장 순수한 자유를 얻고자 했으나,
그 끝에서 그를 기다린 것은 완전한 해방이 아닌 고독의 감옥이었다.
타인을 배제한 채 얻은 자유는 결국 자신조차 기댈 곳 없는 허무의 공간으로 전락시키기 때문이다.
《진격의 거인》은 묻는다.
당신이 원하는 자유는
누군가의 세계를 무너뜨린 뒤에 세워진 것인가,
아니면 함께 설 수 있는 공간을 넓혀가는 것인가.
타자의 자리를 나의 자리만큼이나 소중히 여기는 예의를 갖추는 것.
그 안에서 나의 자리를 다시 정의하는 과정이야말로
더 성숙한 자유에 가까울지 모른다.
진정한 자유는
혼자 살아남는 힘이 아니라,
함께 살아갈 방식을 고민하는 용기 속에서 자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