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00원짜리 이온음료를 꿈꾸다
우리들 마음에 빛이 있다면, 여름엔 여름엔 파랄 거예요. 산도 들도 나무도 파란빛으로, 파랗게 파랗게 덮인 속에서, 파아란 하늘 보고 자라니까요.
어릴 적 부르던 동요를 입에 물고 오늘을 바라보자면, 나는 우리들 마음에 빛이 있는지부터 의심하는 어른이 되었다. 마음에 빛이 없어 여름도 산도 들도 나무도 파랗지 못한 우중충한 어른이라니. 10년 전의 나는 10년 후의 내가 파란 하늘만 보고 살 줄은 상상도 못 했을 것이다.
무언가를 진심으로 배워 본 적이 언제였더라, 하는 생각을 했다. 나아가 무언가에 진심이었던 적이 언제였는가에 대해서도 생각해보았다. 뒷일 생각하지 않고 가는 대로 발 옮긴 것이 진심이었을까, 그런 마음이라면 이제 나는 진심이기에는 글러버린 것은 아닌가. 기타를 배우고 피아노를 배우던 때를 떠올린다. 그때 나는 진심이었어서, 다시 진심이 되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지 잘 안다.
진심인 것들에는 항상 그만큼의 아픔이 따라온다고, 마음을 쏟는 만큼 내치는 일은 어려운 법이다. 어릴 적부터 인형들을 머리맡에 두고 자는 일이 부지기수였던 나인지라 이를 잘 안다. 아버지는 정을 들이면 떼어내기가 힘들다고, 그러니 그러지 말라고 말하셨다. 너무 잘 아셔서 당신은 강아지 한 마리도 무심한 듯 사력을 다해 챙기셨다. 미지근하게 사는 건 머리는 알지만 마음은 힘든 일이지. 당신은 차마 말은 못 했어도 그 이야기가 하고 싶었을 것이다.
진심인 날들, 여름보다도 더 파란 마음. 나는 한때 포카리스웨트 보이를 꿈꾸었다. 물빛을 닮아 장대비 스테이지로 다이브 하는 상상을 하곤 했다. 한숨보다 눈물이 많은, 유채색을 좋아하는 사람이 되어야지. 나 예술하는 사람이 될래요. 고리타분한 뿔테 안경 따위는 집어던지고 먼 곳을 보는 사람이 될래요.
파란색이 되고 싶었던 예비 포카리스웨트 보이는 웬일인지 짙은 군청색이 되어버렸다. 산토리니와 지중해를 향해 출항한 나의 산타마리아호는 모종의 사건들로 한밤의 북극에 도착했다. 그 여정을 설명하는 일이 이젠 지리하고 따분할 지경이지만, 그만큼 무덤덤하기도 하다. 하여간 항로가 틀어진 일만은 확실하다.
이번 여름은 다를 것이라는 기대감과 뜨거운 여름밤은 가고 남은 것은 볼품없을 것이라는 걸 잘 아는 담담함. 23살의 포카리스웨트 맨이 깨달은 무언가 이다. 사랑한다는 말로도 위로가 되지 않는 몇몇 밤들을 기워 한 달을 만들고 일 년을 만드는 일. 그것이 취미가 되었고 제일 잘하는 일이 되었다. 포카리스웨트보다 진한 것들을 좋아하게 되어 버렸다.
그래도 바보같이 하늘빛 신발을 주문하고는 했다. 바닷빛 모자를 예뻐하곤 했다. 꿈꾸는 건 자유니까. 나 군청색이어도 포카리스웨트 할 수 있잖아요. 포카리스웨트 보이가 장래희망일 수도 있죠. 파란색이 되고 싶어요. 올여름은 아무것도 바뀌지 않겠지만 전 그렇게 되려고 해요.
사랑한다는 말이 큰 위로가 되는 날이 올 것이다. 굳이 기워 붙이지 않아도 흘려보낼 수 있는 날들이 올 것이다. 포카리스웨트 보이를 꿈꾼다는 것은 이런 날들을 꿈꾸는 것과도 같다. 그래서 내 장래희망은 작가 말고 포카리스웨트. 1500원짜리 이온음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