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은 다이빙 끝의 동화
시간이 덧없이도 흘러갔다. 무상하다. 오늘 아침에는 분홍색 하늘이 펼쳐지기도 하고, 낮에는 잔비가 내리기도 했다. 하늘은 소나기를 드리울 듯 검은 구름으로 가득 차있다가도 싸락눈을 떨굴 듯 희기까지 했다. 그 무결한 흐림이 계절을 더욱 가늠할 수 없게 했다. 지금은 딱 그러한 계절이다. 구월 말 시월 초.
추운 노래가 귀에 더 잘 들어오고는 한다. 아껴두던 여름 노래는 이번 해에도 듣지 못했다. 로미오의 꿈은 역시 없고, 극적인 서사도 없고. 셰익스피어조차 숨을 불어넣지 못한 심드렁한 하루 뿐이었다. 언제고 담장 너머에 피리 소리가 가 닿기만을 기다릴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렇지만 담을 뛰어 넘을수는 없으니 더더욱 비극일테지.
작년 이맘때에는 오래 발걸음하지 않던 치과에 갔다. 사랑니가 바르게 올라오는데도 잇몸을 찢는 것이 신경을 건드려, 겁은 뒷전이고 이를 고치러 갔댄다. 그런데 요 며칠 이가 찌릿찌릿한 느낌이 들어 보니 일 년째 잠잠하던 사랑니가 또 잇몸을 건드리는 것이 아닌가. 새로운 사랑은 없을텐데 왜 이리도 말썽인지. 달래주기가 싫어 괜히 심술을 냈다. 고작 이빨에게.
가고 싶은 곳도 마땅치 않고 하고 싶던 것도 구미가 당기지 않는다. 24시간 이상의 즐거움을 선사하는 소재가 어디에 있을까. 고민에 고민을 해봐도 내 행복은 촛불 같아서, 잘 타다가도 꺼지고 잘 탈수록 눈물이 많다. 또 꺼지고 흘러내릴 걸 알아서 쉽사리 붙이지 못하는 불이 있다면 믿겠는가. 나는 이제 밝은지도 모르겠다.
내가 이렇게 신나 있잖아. 그 때 너는 어디에 있었어? 나는 나와 같이 어린아이일 사람을 찾고 있다. 내가 어른이 되려 할 때 어린아이로 남도록 도와줄 사람을 찾고 있다. 나를 샴페인 초신성 속에 가둬줄 사람이 필요하다. 왜인지 다 아는 사람 말고, 몰라도 된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 어릴 때 읽은 <한여름 밤의 꿈> 영어 동화 같은 사람.
우리는 바다 속에 살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을 한다. 수면에서 열심히 발길질하며 몸을 내밀고 있는 사람들이 태반. 그리고 그 발 아래로 잠수하는 나와 일부들이 있다. 나는 수면의 사람들과 달리 당장 두 시간 이후의 산소를 걱정한다. 언제 숨이 막힐지 모르는 삶도 내가 선택한 것이긴 하지만, 노력과 열정만을 말하는 그들을 보면 뭐라 말할까. 그들은 나만큼 깊게 바다를 들여다보지는 못할 터이다. 태양보다 빛나는 것이 심해에도 있다. 꼭 있다.
그러나 정말 오랜만에 닿은 인연에게서는 연락이 없다. 엊그제에는 젊음이 좋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같은 담배 두 갑을 샀다. 소화가 잘 되지 않는다.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겠다. 한강에 가고 싶다. 2년 전에 갔던 그곳에 다시 가고 싶다. 이곳의 장은 05일마다 열린다. 49장이 있는 도시가 그립다. 15층 건물이 없다.
나는 끝나지 않는 유영을 한다. 낙엽 사이로, 인파를 가로질러가며 겨울로 헤엄친다. 여름은 폐허였고 가을은 폭풍전야 같아서 도통 쉽지가 않다. 더 깊은 곳으로 가면 있을까. 이대로라면 지구 반대편까지도 헤엄쳐 가지는 않을까.
물이 차다. 그래도 결코 얕아지지는 않을 것이다. 깊은 곳에서 더 깊은 곳을 동경하며 지구 반대편과도 같은 극을 노래하리. 비극을 노래하는 사람은 노래를 분명 좋아했을텐데, 그렇다면 그는 슬픈 것인가 ㅡ 혹은 기쁜 것인가 ㅡ 와 같은 생각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