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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호 Nov 07. 2021

중병(重病)

기다림의 노래

저는 언젠가 당신을  기다리고 있던 적이 있습니다.


부끄러워 어디에도 말하지 못한 기다림이 있었습니다. 전화기 불이 켜지는 순간 혹은 수십 대의 차가 지나다니는 도로에서 여덟 자리 당신의 번호판을 찾는 일이었습니다. 뿐만 아닙니다. 상록수 아래서 귀를 겉돌다 흐르는 노래와 함께 당신 생각을 숱히 퍼올린 날도 있습니다. 마르지도 않덥니다. 생각으로 먹고살 수 있다면 기꺼이 영생하겠다는 농담도 저는 하곤 했습니다.


제법 아름다웠습니다. 저는 그 시절 꿈을 다양히도 꾸었습니다. 보라색 적란운을 처음 보았습니다. 연분홍색으로 단풍이 지더군요. 제법 아이와도 같이 허우적대다가 숨이 차 일어나고는 했습니다. 당신은 그때도 소식이 없었습니다. 그래도 괜찮았습니다. 유색 꿈으로 보듬고 먹이면 마음은 이튿날까지는 얼추 잠잠해 곤히 잠들었습니다.


눈물이 이유를 모르게 눈 끝을 박차고 흐르는 날이 왔었습니다. 사람이 많은 곳을 가면 종종 그러하였습니다. 그때 저는 영문을 알 길이 없어 그저 울었습니다. 귀를 막았습니다. 혼자일 때 저는 혼자임에 서글픈 적 없었으나 둘인 줄로 알아보니 서운해졌습니다. 궁상맞도록 울 일은 없었으면 하는데, 홀로는 힘이 듭니다. 당신 걸음 하는 곳에서 미련히 울어나 볼까 하기도 합니다. 손 꼭 모으고.


저는 왜인지 잘 웃습니다. 요즘은 실없는 너털웃음을 지어 보이는 일도 많습니다. 말도 곧잘 합니다. 당신 곁에서 따라 웃기만 하다 말을 삼키는 날들은 기만과도 같이 느껴집니다. 결코 그렇지 않았지만, 이제 할 수 있습니다. 필요한 말은 제때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먼저 웃을 수 있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배운 것들을 잘 익혔나 봅니다, 저는.


발간 꽃송이를 보면 당신을 떠올리는 병에 걸렸습니다.


찬비 내리면 오시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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