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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호 Mar 07. 2022

지나가는 것들을 맡으며

사랑했던 사람들 잘 있나요

 비가 오고 어스름이 내리면 귀뚜라미 소리가 들릴 것만 같은 계절이 온다. 지나간 여름은 충분히 더웠음에도 아쉬웠는데, 돌아올  알지만 아쉬웠는데... 돌아오지 않을 것들이 지나가는 일은 하물며 얼마나 슬플까.   여름에는 여름만 아쉬웠던  아닐 테다. 장마도 습기도  마르지 않는 빨래도 아쉬운 기억만 없다면  괜찮을 듯하다.


 여름에 포기한 것들을 가을에 그렸다. 열심히 그렸고 겨울에는 꿈꾸었다. 그리고 봄 즈음이 되면 모두 눈앞에 있으리라, 그렇게 되리라 막연히 다짐했다. 다짐이 무색하게 내가 포기한 것들은 여전히 포기당한 채로 남아있고, 그림과 꿈은 회갈빛 홀로그램을 씌운 듯 탁하게 빛난다. 내 잘못이야. 내 마음들이 마음으로만 남는 건 그래, 내 잘못이야.


 뿌연 하늘이 가득하다. 가능성으로 남았던 얄팍한 사랑들은 모두 0이 되어 사라졌다. 뜨거웠던 날을 떠올려본다. 팔팔 끓는 냄비의 물 따위 같기도 했던 내 마음들은 무얼 남겼나. 내 사랑은 초콜릿 중탕과도 같은 일이었다. 나는 끓고 당신은 녹고. 나 식으면 당신 따라 굳고. 나는 알면서도 끓어올랐다. 누굴 위한 증발인가.


 삶에 거는 기대도 있었고, 새로운 내일에 가슴 졸여보기도 했다. 지금까지도 일말의 기대와 두근거림을 안고 산다. 그러나 내일보다 어제가 좋다. 끝도 없이 어제를 향해 살아가는 일이 재밌을 것 같기도 하다. 내일 눈을 뜨면 어제로, 모레 눈을 뜨면 그제로. 처음은 아름답고 끝은 지저분한 모든 것들을 제대로 느끼고만 싶다. 고진감래 말고 감진고래였던 날들이었다. 모든 일이 첫사랑만 같았다.


 나는 내가 일그러진 밤을 기억하고 있다. 내가 사랑했던 사람들은 모두 어디에 있나. 흔적도 없이 가버린 사람들의 상처를 헤집으며 좋았던 때를 찾았다. 책장을 덮지 못하고 행간을 헤매며 아물지 않는 흉터를 남긴다. 친구들은 잘 있을까. 찬바람 부는 날 아프지는 않을까. 마음이 흐린 날 이제는 유연하게 넘어갔으면 좋겠다. 그런 걱정들로 밤을 새웠고 해를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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