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백호 Mar 27. 2022

허술도 예술이라면

한 조각 없는 퍼즐처럼

 어제까지만 해도 나를 잡아먹을 듯 차오르는 후회들과 왜 그랬을까, 의 연속이 오늘은 또 잠잠하다. 종종 있는 일이다. 마음이 뜨고 가라앉는 데에도 주기가 있다. 나는 이제 그 주기마저 피곤한 지경에 이르렀다. 내 안의 갓난아이가 대차게 울다가도 조용히 잠들듯 해 달래기도 힘이 들 때가 있다.


 나는 바닥부터 착실히 쌓아 올린 특급 건축물과는 거리가 멀다. 오히려 나무젓가락으로 뼈대를 이룬 여름방학 만들기 숙제와도 같달까. 부실공사의 흔적이 여실히 드러나 잔바람만 불어도 삐걱댄다. 대충 덮어두고 모르는 체하기도 일상. 어디부터 잘못된 것일까를 생각하고 있으면 골치가 아프다.


 허술도 예술이라면 내 삶과 일상은 장황한 몸짓으로 평가받을지도 모른다. 절체절명의 일탈이 고작 맥주 한 캔에 먼지 가득한 도시의 야경이라면 그건 드라마고, 사랑이랍시고 하는 일련의 과정이 전부 실패한다면 그건 절절한 비극이고. 그러나 허술함은 허술함으로만 남아서 인생이 시트콤이다. 나조차도 웃는다, 에휴.


 우린 모두 불완전해서 아름답기 때문에, 색칠할 여백이 남아있어 무슨 색이 될지 모르는 러프 스케치와도 같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난잡해도 일단은 아름답다며 이야기했으나, 굳이 그럴 필요도 없으려나 한다.


 난잡하고 허술한 것들을 아름답다고 포장할 필요는 무엇 있나. 아름다워야만 괜찮나. 바랬을 때 더 괜찮은 것들은 계속 바래고만 싶어 하니까. 허술은 확실히 예술이 아니지만, 그 나름의 무언가가 있다. 한 조각이 없어 어떤 조각이든 들어갈 수 있는 퍼즐처럼.


 봄바람과 여름의 새벽 공기가 빈 퍼즐 자리를 사무치게 찌른다면 또 모르겠다. 내일 내 후회가 나를 다시 잡아먹을 수도 있겠으나, 오락가락하는 마음까지 나름의 무언가 있으리. 그러니까 언젠가 외로운 날이 오면 나는 군말 없이 사랑 한 조각 하거나 술 한  조각하련다.

작가의 이전글 지나가는 것들을 맡으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