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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아름다운 캐논 변주곡

일상의 묘미

by 제이로사


카논(Canon←고대 그리스어: κανών을 라틴어 화한 것)은 한 성부가 주제를 시작한 뒤 다른 성부에서 그 주제를 똑같이 모방하면서 화성 진행을 맞추어 나가는 서양 고전 음악 악곡의 형식이다. 어원적으로는 '법칙', '규칙'을 뜻하는 그리스어에서 유래한다. (출처 : 위키백과)


독일의 음악가 요한 파헬벨은 1694년경에 캐논(canon in D, 세 개의 바이올린과 통주저음을 위한 캐논)을 작곡했다. 1982년 조지 윈스턴이 피아노 솔로곡을 완성하면서 드디어 우리 귀에 익숙한 캐논이 된다.




지금은 여러 버전의 캐논 연주곡이 있다. 오케스트라, 피아노와 첼로, 피아노와 첼로와 바이올린, 현악 4중주, 금관 5중주, 가야금 등 수없이 많다. 나는 그중에서도 피아노와 첼로 버전이 좋다. 첼로에는 통통 튀는 영롱함, 마음 밑바닥의 말라버린 우물을 긁어대는 소리, 깊은 동굴 같은 울림 등 여러 가지 소리가 품어져 있다. 피아노와 첼로 협연에서도 피아노 음색을 베이스로 잡아주며, 첼로가 위아래로 자유롭게 노니는 버전이 좋다. 첼로의 가라앉는 우울함을 피아노 음률이 아래에서 받쳐주며 풍선처럼 위로 떠 올려 주는 듯하다.


그럼에도 내가 가장 좋아하는 버전은 십여 년 전 들었던 피아노 솔로 연주곡이다.


나는 아들이 초등학교 3학년이 되자마자 피아노학원에 보냈다. 피아노 치는 남자가 멋있어 보였고, 피아노를 치게 되면 음악 관련해서는 내가 별도로 신경 쓰지 않아도 될 것이란 계산 때문이었다. 아들이 피아노에 소질이 있는지, 잘 따라가고 있는지는 전혀 고려치 않았다. 그냥 보내면 다 잘하는 줄 알았다. 피아노학원에서 가끔 학부모 대상 연주회를 했는데, 주로 평일 퇴근 시간 전이라 거의 참석하지 못했다. 몇 달 보냈는데, 아들이 피아노학원에 다니지 않겠다고 했다. 나는 그냥 달래서 보냈다. 처음엔 다 그러려니 했다. 피아노 선생님께 아들의 피아노 진도에 대해 전화상담을 하면, 친구들과 노는 것을 더 좋아한다고 했다. 그래도 나는 괜찮다고 했다. 그러다 보면 언젠가 잘하게 될 거라고. 1년 정도 보내고 학원에서 소규모로 하는 연말 발표회를 보러 갈 수 있었다. 1년이나 지났으니 얼마나 잘 칠까. 다른 친구들 피아노 연주를 듣는데, 아들의 연주를 들을 기대감이 점점 커져갔다. 그때 아들의 연주곡이 바로 캐논이었다.


드디어 아들이 빌려 입어 팔이 조금 짧은 연미복 차림으로 피아노에 앉았다. 내가 아는 캐논은... 4/4박자로, 따~ 라라 따~ 라라 따~ 라라라 라라라라.... 뭐 이렇게 흘러가는 음악이었다. 풀버전은 5~6분 정도이나 어린이 버전이니 그 절반 정도 치겠구나, 했다.


드디어 아들이 연주를 시작했다. 따라라따라라따라라라라라라라~ 아들은 속사포처럼 연주를 마쳤다. 아니 해치운 것이다. 2분이 채 안 되었다. 다행히 틀리지는 않았다. 속사포 캐논 변주곡(?)을 연주한 아들은 바로 당당히 일어서서 인사를 했다. 친구들과 함께했던 부모님들의 박수 소리와 웃음소리가 피아노학원을 가득 채웠다. 선생님은 나를 향해 민망한 미소를 지었다.





나도 어릴 적에 피아노를 배웠었다. 그 시절에는 피아노가 있으면 부잣집이었다. 우리 집에 피아노가 없는데도, 부잣집이 아닌데도, 내가 피아노를 배우게 된 것은 엄마의 나에 대한 미안한 마음 때문이었다. 내 왼손은 엄지와 검지 사이가 오른손과 다르다. 오른손은 왼손에 비해 1.5배 이상 벌어진다. 왼손 엄지 아래, 손목 쪽 약 1센티미터를 남기고 엄지손가락을 중심으로 둥글게 수술한 자국이 아직도 선명하게 있다. 엄지손가락을 왼손에 이어 붙인 것이다. 다행인 것은 나는 왼손 엄지손가락을 잘 사용한다.

사연인즉, 이렇다. 내가 돌이 되기 전 즈음에 외할머니댁에 놀러 갔다고 했다. 나는 그즈음에 막 짚고 일어설 때였다. 엄마는 할머니와 수다 중이었다. 할머니 댁에는 앉은뱅이책상이 있었고, 그 책상의 주인은 셋째 외삼촌이었다. 삼촌은 장난꾸러기 초등학생이었다. 그 당시에는 놀이재료로 종이 속에 작은 화약 알갱이를 넣은 화약 종이를 팔았다. 화약 종이를 땅바닥에 놓고 돌로 충격을 가하면 터지는 놀잇감이었다. 화학실험 등을 유난히 좋아했던 삼촌은 화약 종이에서 화약 알갱이만 따로 모아서 조그만 유리병에 넣어 책상서랍에 보물로 간직하고 있었다. 호기심 많던 내가 앉은뱅이책상을 짚고 서서, 그 서랍을 뒤진 것이 사건의 발단이었다. 나는 그 작은 유리병을 왼손으로 잡고 마구 흔들었고, 쾅! 하고 터진 것이다. 내 손은 그야말로 너덜너덜해졌고, 급히 병원으로 옮겼으나 의사 선생님은 처음에는 엄마에게 내 왼손 엄지손가락을 포기하자고 했다. 하지만 엄마와 가족들의 반대로 일단 봉합을 했고, 기적처럼 내 왼손 엄지손가락은 살아났다.


그렇게 살아난 왼손 엄지손가락은 특히 외가 가족들이 늘 애지중지했다. 나만 별로 의식하지 않았다. 손가락이 그냥 작동을 잘하고, 크게 벌어지지만 않을 뿐이라 신경 쓰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5학년 때 피아노를 배울 수 있었다. 처음에는 호기심으로 쳤는데, 바이엘 하권을 거의 마칠 무렵이 되자 지겨워졌다. 학교 수업을 마치면 피아노학원에 갔다가 집에 갔는데, 그보다는 친구들과 노는 것이 더 좋았다. 당시에는 수강료를 현금으로 지급했다.


어느 날 나는 엄마에게 받은 한 달 수강료를 들고서 피아노학원으로 가지 않았다. 학원으로 가다가 옆으로 빠졌다. 그 배짱이 어디서 나왔는지 나도 잘 모르겠다. 내가 기억하는 어린 시절 나의 첫 번째 일탈이었다. 그 돈으로 간식을 사서 맛있게 먹으면서 거리를 배회했다. 피아노학원에서 연습하는 시간만큼 거리에서 놀다가 집으로 갔다.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어떤 날은 친구들과 놀기도 하면서 꽤 긴 날을 계속 그렇게 했던 것 같다. 하지만 매일 간이 졸아붙어 스트레스가 만땅이었다. 그러다 보니 나는 거리를 배회하는 것에 지쳐있었다. 그리고 엄마에게 다음 달부터는 학원에 가지 않겠다고 했고, 엄마는 순순히 그러라고 했던 것 같다. 지금도 이상한 것은, 분명히 피아노학원에서 내가 나오지 않는다고 엄마에게 전화로 알렸을 것 같은데, 엄마가 나를 야단치지 않은 것이다. 어쩌면 지루해하는 것을 알았던 피아노 선생님이 그냥 안 나오나 보다, 여겨서 넘어갔을 수도 있다. 어쨌든 그 사건 이후로 나는 되도록 부끄러운 짓은 하지 않는다. 당당하지 않은 삶의 죄의식을 어린 나이에 차고도 넘치게 경험해 보았으니까.




그래서 아들이 1년 동안 얼마나 힘들었을지 헤아려졌다. 그나마 나처럼 일탈 안 하고 지겹지만 참고 피아노학원에 갔던 것을 생각하면 나보다 순진했다. 직장을 다녀서 바쁘다는 핑계로 아들의 음악교육을 피아노학원으로 떠밀어 버리고 마음 편해지려 했던 나의 얄팍한 셈속의 결과이기도 했다. 아까운 1년 치 피아노학원 수업료는 벌금이었다.


나는 그다음 날 바로 피아노학원을 끊었다. 아들에게 매우 미안했다. 아들은 그 후 가끔 집에서 속사포 캐논을 연주했다. 속사포 캐논만 치다가, 어느 때부터는 피아노 근처에도 안 가게 되었다. 피아노 치는 멋진 남자에 대한 나의 로망은 그렇게 날아갔다.


그때부터 길 가다가도 캐논만 흘러나오면 그 음악은 내 귀에 박혔다. 캐논을 듣다 보면 어린 시절 아들의 속사포 캐논이 생각나고, 나의 어린 시절 피아노 수업료 삥땅사건이 함께 연상된다. 캐논의 뜻은 한 주제를 다른 성부에서 모방해서 반복한다는 것 같다. 규칙이 생기는 것이다. 캐논 변주곡은 매우 아름답다. 어쩌면 내 어린 시절의 잘못을 아들이 속사포 캐논으로 승화시켜 준 것처럼. 그렇게 캐논에 익숙해지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언제인가부터 캐논을 들으며 위로를 받고 있다. 얼마나 아름다운 음악인가. 그때 짧은 악보였지만 안 틀리고 쳤던 아들의 <속사포 캐논 변주곡> 덕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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