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의 묘미
대학 다닐 때, 어느 날 문득 깨달은 바가 있었다. 나는 비 오는 날보다 햇빛이 쨍쨍한 날에 공부 집중력이 더 높았다. 강의실 칠판이 잘 안 보여도, 창가 자리를 선호했던 나는 쨍한 햇빛을 온몸에 받으며 강의 듣기를 좋아했다. 특히 봄철 개나리색 햇살 속에서 교수님 강의를 듣는 내 모습은 상상만 해도 포근하고 바삭하다. 잘 알려진 것처럼, 햇빛에 노출되어 비타민D 합성으로 세로토닌 수치가 높아지면 인간의 행복감은 증진한다고 한다. 그래서 나는 햇빛 속에서 좋은 기분으로 공부에 임할 수 있었나 보다. 다른 생각할 거리, 한눈팔 거리가 햇살에 심취해 끼어들지 못한 것 같다. 문제는 비 오는 날이었다.
대학 입학 후 그다지 학과수업에 열심이지 않았던 나는, 중고등학교 때는 엄두도 못 냈던 수업 제끼기 땡땡이를 잘 쳤다. 특히 비 오는 날. 나의 중고등학교 시절에는 사춘기로 대변되는 ‘중2병’이란 단어는 없었지만, 엄마와 가족들에게 있는, 없는 신경질만 팍팍 내며 다녔다. 그게 다였다. 나는 선생님 말씀과 학교 규칙에서 어긋나면 큰일 나는 줄 아는 고지식하고 답답한 축이었다.
대학에 가서야 나에게 뒤늦은 사춘기가 왔다. 인간이란 무엇인가, 인생이란 무엇인가, 내 삶은 앞으로 어떻게 되는가 등의 질문을 나에게 해대며, 세상과 어른들에 대한 불평거리들을 찾아 헤매었던 것 같다. 겉으로는 시니컬한 척하면서. 그런데 이 병이 특히 비가 오면 심해졌다. 중간고사를 앞두고 기껏 새벽부터 학교 도서관에 자리를 잡아 놓고도, 비가 내린다 싶으면 엉덩이가 꿈틀거렸다. 특히 주룩주룩 내리는 비를 바라보는 것을 좋아했는데, 온통 마음을 빼앗겨 버렸다. 그렇게 내리는 비는 나의 상념을 부풀게 했다. 자유롭고 거침없이 생각에 생각을 이어갔다. 떠오른 한 가지 사유 거리가 더 깊고, 깊게 이어질 수 있었다.
빗소리는 기름 튀기는 소리와 같다고 했던가. 빗소리가 들리면 파전이 생각났고, 파전이 생각나면 막걸리는 자동이었다. 막걸리까지 더해져 취기가 올라오면, 그 집중도는 두 곱절 세 곱절까지 뛰었다. 내가 비 오는 날과 막걸리를 좋아했던 이유다.
결국 나는 해서는 안 되는 짓을 해버렸다. 2학년 1학기 기말고사 때였다. 그날 오후 시험 때문에 도서관에서 시험공부를 하다가, 잠시 쉴 겸 해서 점심시간에 학생회관 동아리방에 들렀다. 오전에 시험이 끝난 후배들이 학교 앞 먹자골목에서 막걸리에 파전을 먹자고 작당하고 있었다. 나는 학생식당으로 점심 먹으러 갈 사람을 찾고 있었다. 그런데 그때 갑자기 후드득 비가 오기 시작하는 것이 아닌가. 후배들이 우르르 몰려 나가면서, 내 손을 잡아끌었다. 선배는 시험 보셔야 하니, 밥 대신 파전만 먹으라면서. ‘안 돼, 비가 오는데…, 아, 시험 봐야 하는데…. 아, 비가 오네, 안 되는데….’ 입으로는 ‘안 돼’를 외치면서 나의 발은 따라 나가고 있었다.
‘나 6교시에 시험이야~’ 나 포함 네 사람은 어느 결에 먹자골목 자매집에 도착했다. 후배들이 들어가면서 막걸리, 파전, 김치찌개를 주문했다. 자매집 아주머니가 반갑게 달려와 잽싸게 막걸리와 잔, 김치를 우선 테이블에 올려주었다. 한 후배가 외쳤다. 아주머니, 대접 주세요, 큰 거로. 아주머니는 냉면기 4개를 가져다주셨다. 후배들이 냉면기에 막걸리를 가득가득 부었다. 나는 꼴깍 침 넘어가는 소리를 감추며, “난 안 돼. 이따 시험이라구.” 후배 녀석들이 꼬드겼다. “아직 시간이 남았으니, 얼른 한 잔만 딱 마시고 안주 먹고 깨서 가면 되잖아요” “에이, 겨우 한 잔인데 괜찮아요.” 술집 창밖으로 골목길을 보니, 밖에서는 빗줄기가 더욱 굵어져 주룩주룩 내리고 있었다. “괜찮을까? 깨겠지?” “선배는 막걸리 마시고 사이다 마셔요.” 우리는 사이다도 한 병 시켰다. ‘입만 대야겠다.’ 나는 냉면기에 가득한 막걸리를 딱 한 입! 마셨다. 시원하고 달달한 막걸리 맛이 입안의 세포들을 자극했다. 그 음미가 끝나기도 전에 파전 부치는 치지지직! 소리가 빗소리와 이중주를 시작했다. 동시에 거절할 수 없는, 기름에 파와 밀가루 튀겨지는 냄새가 콧구멍으로 훅 들어왔다. 잠시 후 접시보다 큰 파전 하나가 술상 위로 올라왔다. “와우~~ 건배!!!” 나는 꿀떡꿀떡 막걸리를 양껏 삼키고 파전 한 조각을 냉큼 입 안으로 가져갔다. 이미 나의 이성은 빗소리와 파전과 막걸리 삼합이 매우 옳다고 격렬하게 수긍하고 있었다.
그것이 사단이었다. 나는 어느새 냉면기 막걸리 한 잔을 싹 핥듯이 비우고 벌건 얼굴로 갈등하고 있었다. ‘또 한 잔? 안 되지. 시험이잖아.’ 후배가 내 잔에 또 술을 가득 채워주었다. 술집에는 어느새 불어난 선후배들이 먹고 마시고 있었다. 양심껏 한 모금 더 마신 나는 ‘셤 다녀오겠슴돠!’를 외치고 강의실로 뛰어갔다. 내 전공과 무관하게 교양으로 선택한 정치경제학 과목이었다.
강의실 안으로 들어가자, 아는 선배가 조교로 시험장에 들어와 있었다. 선배는 나의 벌게진 얼굴을 보고는 알겠다는 듯,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술기운에 대범해진 나는, 모르는 척 방그레 인사를 하고 자리에 앉았다. 그리고 그야말로 일필휘지로 답안지를 써 내려갔다. B4 한 장 앞뒷면이 부족해서 한 장 더 달래서 다시 앞장까지 채웠다. 시험문제는 생각나지 않는다. 내가 쓴 내용은 아마도 사회에 대한 옹색한 비판 내용이었을 것이다. 강의실 밖에서는 계속 주룩주룩 비가 내리고 있었고, 나는 알딸딸하게 취해 있었다. 나는 매우 용감해졌고, 앞뒤 문장쯤은 고려치 않고 하고 싶은 말을 다 쓰고 나온 것 같다. 답안지 두 장을 조교 선배에게 당당히 제출하고 나는 강의실을 나왔다. 그리고 당연히 다시 자매집으로 달려갔다.
믿기지 않겠지만 나는 그때 A를 받았다. 그리고 그다음부터는 시험 전에 술을 마시지 않았다. 차라리 시험을 포기할지언정. 치기 어린 실수는 한 번이면 족했다. D나 F를 받았다면, 오히려 반성이 안 들었을 수도 있다. 이상하게 학점을 보면서 심하게 부끄러웠다. 사춘기의 특효약이라고나 할까. 그 시절 세상이 하~ 수상했고, 정치경제학 교수님의 지식인 적 고뇌에, 철없는 대학생의 난봉꾼 같은 문장이 호의를 자극했는지도 모르겠다. 아니면 시험 점수 매기던 날 비가 왔고, 교수님도 나처럼 비에 약한 분이실 지도.
비 오는 날은 햇빛이 부족해서, 행복 호르몬인 세로토닌이 부족해지고, 졸음 유도 호르몬인 멜라토닌의 증가, 비타민D 생성 부족으로 피로감과 무기력함을 유발한다고 한다. 반면, 빗소리는 백색소음으로 뇌를 편안하게 만드는 주파수를 발생시키고, 리드미컬한 소리를 뇌가 음악처럼 인식해 감성적 반응을 유도한다고. 이런 과학적 사유로 나는 비 오는 날은 되도록 공부하지 못했다고 핑계를 대고 있다. 내 의지와 상관없는 자연스러운 몸의 반응이었다고.
하지만, 비 오기 바로 직전, 길을 걷다가 흙냄새 또는 비 냄새를 맡아본 적이 있는가. 흙냄새는 다른 말로 페트리코(petrichor)라고 한다. 흙에 있는 방선균이라는 박테리아가 죽은 유기체를 분해해 식물이 흡수할 수 있는 영양분을 만드는데, 그 과정에서 만들어지는 지오스민(geosmin) 냄새가 비 오기 직전 나는 흙냄새 또는 비 냄새라고 한다. 평소 지오스민 성분은 땅에 있다가 비가 오기 시작하면 에어로졸 형태가 되어 공기 중에 떠돌다 인간의 콧속으로 들어오는 것이다. 비는 인간 생존에 매우 중요하므로, 비 냄새는 유전자에 각인되어 우리에게까지 이어진 것 같다고 한다. 살 수 있음에 대한 ‘안심’인가.
‘비 오는 날의 수채화’ 음악을 흥얼거리면서 멜랑꼴리 해질 수 있는 것도 시작은 ‘생존 안심’에서 비롯된 거 아닐까. 유전자적 생존 안심 위에 우리는 사랑을 얹고, 예술을 얹고, 추억을 얹고, 무모함을 얹어온 것 같다.
나의 ‘비 오는 날의 사춘기’를 이렇게 호르몬과 박테리아로 다시 조명해 보니, 지극히 인간답고, 본능적이며, 평범하다. 과거 비와 막걸리에 취해서 벌였던 시험시간의 무례도 용서할 만하다. 비 오는 날이 우리에게 주는 일탈의 본능이 이해할 만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