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의 묘미
작년 4월 말쯤. 영종도에 있는 골프장에서 골프를 치기로 했다. 괴산 사는 친구가 하루 일찍 올라온다고 연락이 왔다. 영종도에서 자고, 다음날 골프장에 함께 가자고. 친구를 위해 흔쾌히 영종도에서의 외박을 선택했다. 천천히 출발해서 영종도에 저녁 6시쯤 도착했는데, 그제야 친구는 두 시간쯤 늦는다고 연락을 해왔다. 진작 연락할 것이지, 투덜대려는 마음을 접고 밖으로 나갔다.
천천히 주위를 둘러보니 야트막한 언덕 위로, 전면 유리에 바다를 제대로 볼 수 있는 카페가 바다를 향해 높게 서 있었다. 카페 창문에서 반사되는 햇빛에 눈이 부셨다. 일몰을 볼 수 있겠구나! 카페로 서둘러 올라갔다. 친구를 기다리는 시간은 지루한 기다림에서, 갑자기 소중한 두 시간이 되었다. 혼자 극장에 가면 조금 더 영화를 제대로 감상할 수 있는 것처럼, 오롯이 혼자서 영종도 일몰을 즐기게 된 것이다. 무엇보다 이렇게 작정하고 앉아 시간을 들여, 해가 바닷속으로 들어가는 마지막까지, 촘촘히 시간을 쪼개며 일몰을 볼 수 있다는 것이 갑자기 받은 선물 같았다.
잠시 후, 맑은 하늘이 온통 주황빛으로 물들었다. 짙은 먹색인 작은 섬들에서 번진 듯 바다 빛깔은 회먹색이었다. 붉은색 테두리를 한 선명한 동그라미는 절반은 루비색이고, 절반은 황금빛이었다. 보석보다 더 아름다운 동그라미가 서쪽 바다 위로 둥둥 내려왔다. 해는 수평선에 가까워질수록 점차 가로로 넓은 타원형으로 바뀌며 커졌다. 일몰멍에 가슴이 벅차올랐다. 태양이 알려주는 아름다운 소실이었다. 탄생의 장관 못지않은 숭고한 죽음, 사라짐…. 그냥 그대로 아름다웠다.
일몰을 보니, 제주 바다가 생각났다. 혼자 한 여행이었다. 서귀포 바다 바로 앞에 묵었다. 반드시 숙소 침대에서 통창으로 바다가 보일 것. 그것이 그 숙소를 선택하게 된 이유였다. 숙소에 짐을 풀자, 배가 고파왔다. 대포항과 동네를 한 바퀴 돌고 저녁 식사로 동네 식당에서 몸국을 먹었다. 술도 안 마셨는데 해장이 되는 기분이었다. 긴장도 풀렸다.
저녁 식사 후 뜨듯해진 몸과 여유로운 발걸음으로 맥주를 사 들고 숙소의 베란다로 나갔다. 여행 떠나오기 전, 수십 번 상상했던 로망을 실현해야 했다. 해 지기 전, 바다 바라보면서 멍 때리기. 검은색과 청색과 녹색이 뒤섞인 바닷물은 파도를 앞세워 나에게로 온전히 몰려오다가, 은빛 물방울로 부서졌다. 바다는 고요했다. 실컷 바다를 바라보았다. 남쪽을 바라보고 있어서인지, 태양은 보이지 않았다. 잠시 후 오른쪽 하늘빛이 조명을 줄이듯이 점차 어두워지면서, 바다색이 점점 깊어졌다. 어느 결에 먹색 바다의 물결이 하늘로 치솟아 하늘과 바다가 하나가 되었다. ‘어디가 하늘이고, 어디가 물이요.’ 노래 구절이 생각났다. 멀리 반짝반짝 불을 밝힌 작은 어선들이 그림처럼 박혀있었다.
다음날부터 나의 ‘제주 바다 보기’가 시작되었다. 혼자 보는 고즈넉한 바다는 장소, 시간, 고저, 원근에 따라 모두 다르게 보였다. 멋있다, 후련하다, 이쁘다, 황홀하다, 고급스럽다, 무섭다, 위압적이다, 찬란하다…. 수많은 감흥이 시각과 후각과 청각을 자극하고, 머리와 가슴에 출렁였다. 나중에는 그냥 먹먹했다. 보고 있어도 보고 싶은 그대였다.
본태박물관에 갔다. 평일이라 사람이 얼마 없었다. 한적하게 관람하며 휘적휘적 걷다가 4관에 들어갔다. 연결된 두 개의 공간이었다. 어린아이들 3명이 여기저기 경쾌하게 뛰어다니고 있었다. 부모님은 안 보였다. 조용히 관람해야 하는데, 돈을 낸 관람객 입장이 되어 아주 잠깐 뛰어노는 아이들이 당황스러웠다. 그때 부모님이 들어와서 내 눈치를 보며 아이들을 진정시켰다. 아이들이 옆 공간으로 옮겨갔다.
전시물을 집중해 보니, 상여와 이승에서 마지막 한을 풀어 준다는 꼭두 인형이 전시되어 있었다. 전통 상례 전시관이었다. 갑작스레 죽음을 마주한 기분이었다. 삶의 마지막 의례를 보자, 나도 모르게 갑자기 머리가 쭈뼛 서고 피부 위에 소름이 돋았다. 늘 멀게만 느껴졌던 죽음이었다. 삶에 연연하지 않는 의연한 죽음을 꿈꾸었고, 품위 있고 존엄한 죽음을 선택할 것이라고 친구들 앞에서 당당히 말했었다. 그런데 막상 죽음 의례를 전시한 공간 한가운데에 혼자 서 있게 되자 갑자기 고독해지고, 무서움이 확 밀려왔다. 상여와 꼭두 인형에 묻어 있는 죽음이 내 몸에 묻을 것 같았다. 그때 옆방에서 해맑은 아이들의 떠드는 소리가 들렸다. 그 소리에 나는 무서움을 떨쳐냈다. 너무 반갑고 안심이 되었다. 죽음이 무서웠던 것인지, 절대고독이 무서웠던 것인지, 삶에 아쉬움이 남은 것인지, 전시된 상여와 꼭두 인형의 생김이 무서웠던 것인지 지금도 모르겠다. 어쨌든 그날 해맑은 아이들이 나를 구제한 것만은 맞았다.
본태박물관을 나와 제주 바닷가로 가서 일몰이 보이는 카페에 앉았다. 하루의 끝, 바다의 끝, 밝음의 끝, 태양의 끝, 인생의 끝, 죽음. 그날따라 맑은 하늘, 바다 멀리 떨어지는 태양은 그 찬란함이 눈부신 황금보다 더욱 열렬하고 싱싱했다. 일몰의 장관을 배경으로 한 모래사장에서는 신혼부부들의 사진 찍기가 한창이었다. 제철 맞은 꽃처럼 아름다웠다. 그리고 그들 사이를 조용히 맨발로 걷고 있는 노부부들과 각양각색의 여행자들. 모두 다 제멋대로 아름다웠다. 그야말로 제멋에 겨워 나오는 제주 바닷가의 흐드러진 한 판이었다. 제주의 일몰과 바다와 사람들. 그리고 거기에 앉아 있는 나. 제멋에 겨운 인생이야말로 가장 아름다운 것이 아닐까.
제주와 헤어질 날이 다가올수록 아쉬움이 커졌다. 나는 예정된 마지막 날 매정하게 돌아서야 했다. 가수 장기하는 <나 돌아가면 얼마나 이곳을 그리워할까>에서 ‘혼자 한 여행은 짧게 한 연애처럼 느껴진다.’라고 했다. 혼자 한 여행, 짧게 한 연애, 여행과 같은 인생. 인생은 혼자 하는 짧은 여행이 아닐까. 연애처럼 해야 하는 인생살이. 그렇게 4박 5일의 짧았던 연애를 마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