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의 묘미
몇 달 전 시동생이 생일선물이라고 ‘밸런스 슬림벨트’라는 마사지기를 택배로 보내왔다. 그리고 무심히 카톡에 글을 남겼다. ‘마사지기 효능 확인 부탁합니다. 어머니 허리에도 도움이 되려나 해서요. 생신 선물입니다.’ 생일 축하합니다, 같은 낯간지러운 말 대신에 어머니께 효도하려는데, 내가 사전 체험단이란 취지로 읽혔다. 생일 축하는 그저 핑계에 불가하다는, 그런 무심함을 가장한 배려가 좋다. 시동생은 한 마디 덧붙였다. ‘작동 이상 없는지 확인 요함.’ 불량이면 교환, 만족하지 않으면 반품하겠다는 뜻이려니 했다. 그렇게 길게 말하지 않고 열한 글자로 모든 용무를 대신하는 간략함도 좋다.
내가 허리통증으로 고생한 지는 9개월쯤 되었다. 겉으로는 무뚝뚝하지만 속은 따듯한 츤데레, 시동생의 마음 씀씀이가 곱절의 감동으로 왔다. 마사지기를 꺼내보니, 허리 복대처럼 생겼다. 사용 설명서에서 작동법만 대충 읽었다. 다른 허리 마사지기 같으려니 했다. 검은색으로 나란히 붙은 두 개의 패드 부위에 물을 묻혀서 등 쪽 허리에 위치시키고 복대를 여몄다. 리모컨으로 작동시켜서 레벨 강도를 올리기 시작했다. 그런데 최대 10중에 9까지 올렸으나 그 진동이 강하지 않았다. 누워도 보고, 허리 펴고 앉아 보기도 했으나 영 시원찮았다.
‘전에 주셨던 허리 마사지기가 더 좋네요.’ 시동생이 시어머니께도 구매해 드릴 예정이라니, 나름 심사숙고해 보낸 후기였다. 그에 대해 시동생의 답 문자가 없었다. 나는 바쁘려니 했다.
며칠 뒤, 딸이 거실 테이블 위에 놓여있는 문제의 마사지기 상자를 보면서 “엄마 이거 뱃살 빼는 거 같은데?”라고 중얼거렸다. 남편도 설명서를 뒤적이며 한 마디 얹었다. “그렇구먼. 이 패드를 뱃살 쪽에 대고 … 해봤어?” 순간 나는 당황했다. ‘아니거든? 민망하게 시동생이 왜 형수인 내 뱃살을…’ 생각하면서, 나는 마사지기를 배 쪽에 대고 작동시켜 보았다. 축 처진 내 뱃살이 레벨 7만 했는데도, 제대로 출렁거렸다. 나는 웃음을 참느라고 삐죽거리는 딸에게 한마디 했다. “흠, 너의 삼촌과 나는 형제지간이야.” 다시 시동생 카톡에 답을 했다. ‘자극 제대롭니다. 뱃살 잘 빼겠습니다.’ 시동생이 그제야 답을 보내왔다. ‘대박 효과 나시길. ㅎㅎ’
일상사에서의 이런 선입견은 잠깐의 부끄러움으로 조금은 쉽게 바로 잡을 수 있다. 하지만 어떤 선입견은 일생일대의 큰 사건이 될 수도 있다.
내 아들은 초등학교 6학년 때 이미 170센티미터가 넘고 덩치도 좋았다. 아들이 중학교에 입학하고 한 달도 안 되었는데, 담임선생님에게서 전화가 왔다. ‘어머니, 학교에 오셔야겠어요. 학교폭력심의위원회가 열릴 것 같아요.’ 청천벽력이었다.
당장 직장에 휴가계를 내고 학교로 뛰어갔다. 선생님은 몇 가지 이유를 댔다. 하나, 아들이 등교할 때 보면, 문제 학생들이 아들 주위로 모여든다. 둘, 수준별 수업반을 나누기 위해 영어와 수학 시험을 보았는데 한 과목은 빵점, 또 한 과목은 10점을 받았다. 이는 반항해서 시험을 안 본 것이다. 셋, 수업 종례하기 전 두세 차례 먼저 하교하다 걸렸다. 넷, 반에 지체 장애아 친구가 있는데, 아들이 주도해서 그 친구를 괴롭히고, 빵 등을 빼앗아 먹은 것으로 의심된다.
결론은 아들이 그 학교 신입생 중 문제아들의 중심이므로 학교폭력심의위원회에 올려야겠다는 거였다. 일벌백계의 의미가 크다고 했다. 선생님은 반 아이들에게 장애 친구를 괴롭힌 것 관련 조사지를 돌리기는 했으나, 아들의 답변을 들어본 것 같지는 않았다. 나는 믿을 수 없었지만, 선처를 호소했다. 그리고 다시 한번 진상조사를 요청했다. 중학교 입학 후 한 달밖에 안 된 시점에 학교폭력심의위원회의라니.
서둘러 집에 돌아와 조심스럽게 아들 얼굴을 보았다. 아들은 의외로 태평했다. 조심스럽게 선생님이 열거한 아들의 혐의에 대해 하나씩 물었다.
아들은 당당하게 말했다. 자신의 앞자리에 앉은 친구가 장애 친구를 괴롭혀서 오히려 자신이 말렸다. 그 상황을 곁에서 지켜본 친구도 있다. 시험에 빵점 받은 것은, 시험 당일 아침 몇몇 친구들과 등교하면서 빵점 맞기로 약속한 거였다. 처음에 완전 바닥이어야 앞으로 올라갈 일만 남으니 좋은 것 아니냐고 오히려 나에게 물었다. 종례 전 일찍 하교한 것은 선생님이 너무 늦게 오셔서 지루해서 그랬다고. 또한 선생님이 문제아로 지목한 애들은 모두 초등학교 동창이라 자주 어울리지는 않지만, 인사하고 지내는 친구들이라고.
빵점 맞은 대목에서는 어이가 없었다. 반항이 아니라, 엉뚱하고 천진한 열네 살의 답변이었다. 이 역시 엄마인 나의 선입견일 수도 있다.
다행히 임시 반장이었던 아들 친구의 증언과 선생님의 재조사 덕분에 아들은 누명을 벗었다. 하지만 아들은 선생님의 요청으로 방과 후에는 전 과목 반으로 바꿔 매일 학원에 가야 했다. 그리고 한 달 뒤 치른 수행평가에서 반 2등 정도의 성적을 받았다. 그때부터 선생님의 아들을 향한 오해와 주시는 잠잠해졌다.
무엇이 선입견인지, 기준은 무엇인지, 안심하면서도 혼란스러웠다.
중국 윈난성 리장에 있는 차마고도로 트레킹을 떠났을 때 일이다. 우리는 객잔에서 잠을 잤다. 11월에는 하루 기온이 0℃~17℃를 넘나 든다. 장선생객잔에서 숙박했을 때의 일이다. 산중이라 시설에 대해 크게 기대하지 않았고, 당연히 다 갖춰져 있지 못했을 것이라 친구와 통 크게 이해하기로 했다. 밤이 되니 추웠으나, 다행히 두툼한 이불이 있어 참고 잠을 잤다. 다음날, 동행들과 아침 식사를 하는데, 전기매트와 온풍기 덕분에 너무나 따듯하게 잘 잤다고들 이구동성이었다. 나와 내 친구만 선입견으로 오해해서, 멀쩡한 온풍기와 전기매트를 두고, 춥고 썰렁한 객실에서 온몸을 웅크리고 잔 것이다. 그다음부터 숙박할 때는 반드시 전기요를 찾았다.
선입견은 방심하면 금방 당하게 되는 것 같다. 헛똑똑이 인간들의 허점 중 하나일 수도. 이 또한 그대로 받아들이고, 풀며 가는 수밖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