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NTRY #1
친하지는 않지만 몇 번 대화가 오갔었던 직장 동료가 식사 자리에서 한 말이다.
이런 말은 아직 결혼을 하지 않은 경우 종종 들어봤음직 하다. 하지만 이런 말은 누가, 언제, 어디에서, 어떤 의도를 가지고 말하느냐에 따라 여러 가지로 해석 가능하다. '좋은 사람 만났으면 좋겠다는 좋은 의도를 가지고 그저 인사치레로 가볍게 말한 거구나.'라고 치부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말이다.
사실, 나한테 말을 건넨 그 동료는 가벼운 인사치레로 한 말일 수도 있고, 새로운 대화 주제로 전환할 겸 아무런 저의 없이 한 말일 수도 있다.
하지만, 이 말을 듣고 기분이 썩 좋지 않았다. “이제”라는 말에는 “전에 만난 사람(들)이 좋은 사람이 아니다”라는 의미가 전제되어 있다. 또한, “이제”라는 말에는 '지금이 결혼할 적기 아니냐' 혹은 '아직도 결혼할 생각 없냐'는 의미로도 해석될 수 있다. 친분이 있지도 않은 사람이 내 사적인 영역에 대한 일을 아무렇지 않게 이야기하는 것, 과거의 나를 모르면서 어림짐작하여 부적절하게 접근하는 태도, 여러 사람이 있는 식사 자리에서 개인의 사적 영역을 소재 삼아 도마 위에 올리는 무례함에 불쾌감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여러 사람이 예의 차리며 식사하는 자리였다. 순간 '무슨 상관?' '관심 끄시죠!' 등등의 말이 목구멍까지 올라왔지만 음식과 함께 삼켜버렸다. 굳은 얼굴로 내 불쾌함을 드러내어 사회생활의 미숙함을 보이기보다 유연한 처세로 사회성 좋은 태도를 보여야 상대가 약이 오를 것 같았다. 그런 말을 꺼낸 동료가 어떤 유형의 사람인지는 이미 파악이 되어 있었으므로 굳이 진실된 자세로 대화에 임할 필요는 없었다.
이런 종류의 대화는 직장 생활하면서 비일비재하게 경험한다. 어떻게 보면 별말 아닐 수도 있는 말이지만 어떻게 보면 상당히 민감할 수 있는 말이기도 하다. 사소하지만 민감할 수 있는 말을 하는 사람들은 애매모호한 경계를 넘나들며 끊임없이 상대의 간을 본다. 어느 정도까지의 말들을 받아주는지 그 경계를 살펴본 후 상대에 대한 파악이 완료되면 어김없이 그 선을 넘나 들거나 이용하는 사람들. 그들로부터 나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서 다양한 사회적 가면을 쓸 수밖에.
한 번은 퇴근 시간이 겹쳐서 동료들과 함께 엘리베이터 앞에 서 있던 중이었다. 여자 동료 한 명은 남자 친구가 회사 앞으로 데리러 온다고 해서 다들 '좋겠다'며 부러워했다.
그때, 대뜸 한 남자 동료가 나를 바라보며,
라고 하지 않던가.
그야말로 마른하늘에 날벼락이었다. 퇴근길 녹초가 되어 기진맥진한 상태에서 뒤통수 맞은 기분이었다. 순간 '뭐라는 거야?' 싶었지만 당혹감에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다행히도 옆에 있던 여자 동료 한 명이 “요즘 그런 말 하면 큰일 나요.”라며 뭐라 뭐라 덧붙이던 목소리가 귓가에서 희미하게 멀어져 갔다.
가끔 아니, 종종 이렇게 선을 넘는 말들을 정말 아무렇지 않게 내뱉는 사람들이 주변에 심심치 않게 있다는 사실에 자주 놀란다. 이런 사람들은 보통 '농담'이라는 말을 빙자하여 자신의 말을 합리화시키지만 사실 상대에 대한 배려가 없는 사람들이다. '농담'이라고 하는 것은 그 말을 한 사람이나 들은 사람 모두가 기분이 좋아야 농담으로 인정된다. 말을 한 사람의 의도가 아무리 '웃기고자'하는 것이었어도 상대방의 기분이 좋지 않다면 결코 농담이 아닌 것이다. 내가 이 말을 내뱉었을 때 상대가 어떻게 받아들일지, 내 의도가 잘 전달되는지를 먼저 생각하고 말을 한다면 결코 '혼자만 즐거운' 어색한 상황이 빚어지지 않는다.
늘 사회적 관계를 맺고 있지만 늘 대인관계의 어려움에 직면한다. 어떻게 하면 현명하게 상황을 처리할 수 있을까?
내 마음이 상처를 받아도 전체적인 분위기를 위해서 순간을 참아내야 하는 것일까? 아니면 앞으로의 불편한 관계를 감수하더라도 내 마음과 감정에 충실해야 하는 것일까?
무조건 감내하고 버티기보다는 본인만의 선을 정하는 것이 정신건강에 좋을 듯싶다. 내가 정해 놓은 선을 넘나드는 말을 할 때 단호하게 '선 넘으셨어요'라는 태도를 견지한다면, 결코 만만한 상대로 보이지 않을뿐더러 내가 불편한 상황이 줄어들지 않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