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ologu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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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치동 학원가. 높은 업무강도와 대치동 아이들만큼이나 경쟁이 치열한 강사의 세계로 난 오늘도 출근 중이다. 차창 밖으로 쏟아지는 햇살이 따사롭다. 온종일 교무실에 박혀있으니 이렇게 이동할 때만이라도 햇빛을 쬐줘야 할 것 같은 죄책감에 눈썹이 하나가 될 듯 양미간을 찌푸리며 햇빛에 얼굴을 들이민다.
‘아~ 따스하다.’
얼굴을 어루만지듯 감싸는 햇살에 마음까지 여유로워지는 느낌이 들어 일순간 기분이 좋아진다. 그때, 문자 수신음이 ‘띠링’ 경쾌하게 울린다.
선생님 찬호가 끝까지 학원 안 간다고 합니다. 단어도 DAY 1,2에 나와있는 단어 안 외운다고 하네요. 강의계획서에 어휘 80-100개라고 써져있던데 왜 더 많아진 거냐고 난리 치는 중입니다. 오늘은 온라인 수업 주소 보내주시면 온라인으로 듣도록 하겠습니다. 다음부터는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아, 그리고 선생님. 찬호가 과제의 중요성을 체감하지 못하는 것 같아요. 아이와 통화해서 과제를 왜 해야 하는지 말씀 부탁드려요.
출근 전부터 학부모의 당부 메시지 가득한 문자가 쏟아진다. 여유로운 기분을 누릴 틈도 없이 마음이 분주해진다. 분주해진 마음만큼이나 핸드폰이 분주하게 울어댄다.
“여보세요? 부장님, 출근 중이시죠? 오늘 설명회 11시에 있는 거 알고 계시죠? 설명회 예약자 분들 000명이세요. 참고 부탁드립니다.”
“네, 알고 있어요. 지금 이동 중이니 10시 30분 전까지는 도착할 거예요.”
“네, 알겠습니다. 이따 봬요.”
설명회 일정을 브리핑하는 행정실 직원과의 통화 후 한숨을 크게 내쉰다.
이렇게라도 숨을 의식적으로 내뱉지 않으면 숨이 안 쉬어질 것 같다. 어제 작업 후 미리 내 톡으로 전송해놓은 PPT 파일을 핸드폰으로 확인하며 최종 점검을 한다.
힘들다는 말을 하고 싶지 않다.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있고 앞으로도 하고 싶은 일이 많은데 체력 때문에 여기서 주저앉을 수는 없지. 힘들다고 입 밖으로 내뱉는 순간 모든 것이 무너져 내릴 것 같아 힘들다는 말도 못 하겠다. 하지만 더 이상은 무리다. 몸이 더 이상은 무리라고 말하고 있다. 스스로 멈추어야 하는 것일까. 계속 버텨내야 하는 걸까. 과연 언제까지 버틸 수 있을까.
화창한 날씨와 대조적으로 암울해진 마음을 애써 외면하며 학원 맞은편 커피숍으로 향한다. 익숙한 커피 향이 코 끝을 스치니 변덕스러운 마음이 언제 그랬냐는 듯 가벼워진다. 커피에 위로받는 느낌. 이 느낌 때문에 출근길에 커피숍을 외면하기 힘들다.
커피숍을 나서며 일하는 자의 보상과 같은 이 달콤한 커피를 한 모금 쭈~욱 들이켠다.
‘아~~!! 이제야 살 것 같다.’
학원으로 향하는 횡단보도 앞에서 신호를 기다린다. 저 멀리 정면으로 보이는 롯데타워를 중심으로 양쪽 길가로 즐비하게 늘어선 학원가의 모습과 그 거리를 오가는 행인들이 눈에 들어온다. 동시에 머리 위에서 내리쬐는 햇빛이 너무도 강렬하다 느끼는 순간 시야가 흐릿흐릿해진다.
시야에 들어오는 것이 없다. 아마도 의식은 있으나 눈은 감겨 있는 상태인듯하다. 코끝을 스치는 향이 너무도 익숙한 여름향기다. 늘 반복되는 꿈속의 그 계절이다. 다시 또 난 그 여름에 서 있구나. 그 앞에.
(시야가 뚜렷해지며) 또렷해진 그의 모습과 함께 과거의 추억이 선명하고도 빠르게 리와인드된다. 꿈일까 현실일까 알 수 없는 이 여정 속에 우리는 다시 그때의 그날처럼 이별을 고하고 있다. 서로의 슬픔을 삼키며.
주체할 수 없이 뺨을 타고 흘러내리는 눈물을 닦을 생각도 없다는 듯 흐르는 눈물을 뚝뚝 땅에 떨구며 그가 말한다.
생각할 틈도 없이 반사적으로 뱉은 말이지만 사실 나는 모른다. 이렇게 헤어지는 것이 서로에게 최선일지. 하지만 분명한 사실은 이쯤에서 그를 놓아주어야 그에게 최선이라는 것은 알고 있다. 하여, 콧물까지 흘려가며 울고 있는 그가 지금은 이렇게 힘들어할지라도 내가 없는 미래에 분명 웃고 있을 거라 과거의 나는 확신했다. 그렇기에 상처받은 마음, 슬픈 마음, 그를 놓아주고 싶지 않은 마음을 여과 없이 보여줄 수가 없었다. 그처럼 마음껏 목놓아 울지도 못했다. 그저 어린애처럼 눈물 콧물 흘려가며 애달프게 우는 그를 조용히 끌어안아 주는 것 외에 달리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그를 끌어안고 눈을 감자 20대 초반의 일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간다.
그렇게 나의 기억은 인생에서 가장 슬픈 순간에 내 인생에서 가장 행복했던 20대 초반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BGM) 모든 날, 모든 순간(Every Day, Every Moment) - sung by Paul Ki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