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인생에서 그만 사라져 줄래요?

by 차은서

내 인생에서 그만 사라져 줄래요?


[출처: 네이버 이미지]

2017년 3월에 입사해 2022년 7월까지 근무했던 곳. 그곳에서 난 늘 그랬던 것처럼 성실하고 책임감 있게 일했고 마무리하는 날까지 최선을 다했다.


1학기 중간고사 내신 대비가 끝나고,

아이들 중간고사 시험 기간이 되면 학원 강사들은 며칠간의 휴가 기간을 가질 수 있었다.


말이 휴가지, 사실상 집에 일거리를 가지고 가기 때문에 재택근무와 다름없다. 한 강사당 담당 학교가 최소 3-4개에서 많게는 11-13 학교까지 있으니 시험 기간이 빠른 학교부터 시작해 차례대로 아이들 시험이 끝나는 대로 성적 결과 상담 및 정규반 복귀 상담을 해야 한다. 명목상 휴가라고 하는 그 기간 동안 강사들은 콜센터 직원이 된다. 담당 학교 개수가 상대적으로 적다고 해도 학생 수가 많은 굵직한 학교를 담당하게 되면 온종일 휴대전화에 매달려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번 중간고사 때도 역시나 아이들 시험 주간에 연차를 내어 명목상의 휴식 기간을 갖었다. 최근 몸 상태가 좋지 않아 일주일 정도의 시간이 필요해 연차까지 합쳐 쉬는 날을 일주일 정도 잡았다. 오랜만에 일주일 정도 쉬는 기간이라 이 정도 쉬면 좀 낫지 않을까 기대를 해 보았다. 하지만, 하루가 지나도 이틀이 지나도 몸상태는 호전되지 않았다. 당연히 쉬는 기간에도 온종일 학부모 상담을 했으니 호전이 될 리가 만무했다. 결국, 휴가 마지막 날 밤 일이 터졌다. 그다음 날이 수업 복귀일인데 아침 수업에 갈만한 몸 상태가 아니었다. 이러다 과로사로 죽겠다 싶었다.


내가 있던 곳은 대치동에서도 워낙 일의 강도가 센 곳으로 악명이 높다. 더욱이 비율제도 아닌 학원 내에서도 강사 간의 보이지 않은 경쟁과 시기심으로 인해 인간관계에서 오는 스트레스와 수업 준비, 학부모 및 학생 상담, 온오프 강의 및 설명회, 보고서 제출, 강사교육, 빈번한 회의로 인해 녹초가 되었다. 평 강사로 지내도 업무 강도가 높은 편이데, 교수부장이라는 직함까지 더해지니 업무가 곱절로 늘어났다. 다년간 축적된 피로와 최근 늘어난 부장 업무로 인해 건강이 많이 악화되었다.


어쩔 수 없이 바로 그다음 날부터 출근할 수가 없었다. 부장 및 교과 담당자로서의 인수인계를 하려면 최소 며칠은 필요한데 바로 다음 날부터 못 나가게 되어 학원 측에 큰 혼란과 부담이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몸이 좋지 않아 퇴사하고 싶다고 의견을 밝힌 지 3개월째였다. 건강이 좋지 않다는 말을 그 누구도 귀담아 듣지 않았고 듣는 이의 입장에 따라 다르게 해석했다. 결국, 쓰러질 것 같다는 내 말을 귓등으로 듣다가 이런 사달이 난 것이라 개인적으로 유감스럽지만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다.


'청춘은 청춘에게 주기 아깝다'는 책에 이런 구절이 있다.

며칠 나갈 필요도 없이 퇴사해야 하는 케이스가 있긴 한데, 건강에 문제가 있다면 당장 쉬거나 그만두는 것이 좋다. 건강에 중대한 문제가 생겼다면 휴직 또는 퇴사가 1순위인 게 맞다. 사람 목숨이 가장 중요하다.


그렇다, 내가 살아 있어야 타인이든 타자든 챙길 수 있지 않은가. 학원의 입장도 예상 가능했지만 내가 살고 봐야 했기에 불가피한 선택이었다는 것을 말하고 싶다.


퇴사 후, 몇몇 강사들에게 연락이 왔다. 걱정하며 인사도 못 나눠서 아쉽다는 강사도 있었고, 걱정하는 마음을 보내는 강사도 있었고, 짐 정리하는 날 일부러 출근해서 마중까지 해준 강사도 있었다. 하지만, 친하다고 생각했던 강사가 선을 넘는 말을 하는 경우도 있었다. 재직 기간 동안 힘듦을 공유했던 강사들 중 한 명이었는데, 내가 부장 직함을 단 이후로 거리를 두더니 결국 퇴사 후에 뜬금없이 연락해서는 좋지 않은 말을 남겼다.

전지현, 김수현 주연의 '별에서 온 그대'라는 드라마 명대사가 떠오르는 시점이었다.

"내가 바닥을 치면서 기분 더러울 때가 많았는데 한 가지 좋은 점이 있다. 사람이 딱 걸러져. 진짜 내 편과 내 편을 가장한 적! 인생에서 가끔 한 번씩 큰 시련이 오는 거.. 한 번씩 진짜와 가짜를 걸러 내라는 하나님이 주신 기회가 아닌가 싶다."


퇴사 확정 전, 아파서 누워있는데 '인간적으로는 이해가 되지만 이번에 업무적으로 실망했다'며 뜬금없이 톡을 보내온 그 강사. 재직기간 동안 친한 척, 내 편인 척하더니 내가 부장이 되자 조금씩 거리를 두다 내가 퇴사할 것 같으니 이런 메시지를 보내온 것이다. 조금씩 거리를 두면서 평소 톡도 보내지 않다가 맥락 없이 아픈 사람에게 굳이 이런 말을 하고 싶었다는 그 의도와 심보가 너무도 분명해서 씁쓸했다.


한참 멍하니 그 톡을 바라보고 있자니 인간관계의 허무함과 실망감, 배신감이 쓰나미처럼 밀려들었다. 그러다 이내 씁쓸함과 안타까움이 들었다. 어떻게 대응할까 고민을 안 했다면 거짓이다. '선생님한테 업무적으로는 진작에 실망했지만, 오늘은 인간적으로도 실망스럽네요.'라고 톡을 보내고 싶었다. 하지만 이내 이런 사람과 이야기하는 것 자체가 에너지 소모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루라도 빨리 이런 종류의 사람을 내 인생에서 내보내고 싶었다. 그대로 차단을 해버렸다.


이제 내 인생에서 그만 사라져 줄래요?
빠이빠이~~ 짜이찌앤~


좋은 장(腸) 환경이라 함은 유익균과 유해균의 비율이 8:2인 환경이라고 한다. 유해균이 아예 없으면 좋지 않을까 싶지만, 유해균이 0으로 없어지면 유익균이 유익균 내에서 또다시 8:2의 비율로 나누어진다고 한다. 아무리 좋은 유익균이라고 해도 그 안에서도 상대적으로 해로운 균을 구분해 8:2로 나누어진다는 것이다.


장(腸) 환경과 마찬가지로, 직장 내에서도 '사이코 질량 보존의 법칙'이 존재한다. 직장 내에서 이상한 사람이 일정한 비율로 존재한다는 것인데, 우리 조직 내에서도 그 '이상한 사람'이 있어 마음을 한데 모았더니 그 마음을 함께 했던 이가 또 다른 '이상한 사람'이 된 경우랄까. 위에서 언급한 그 강사에게 묻고 싶다.


본인이 그 '이상한 사람'이 된 걸 알고는 있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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