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그 여름

I. 꿈의 대학생이 되다.

by 차은서

5. 화려한 축제 (3)


스카이 블루, 순백의 화이트, 정열의 레드 등의

형형색색의 화려한 드레스를 입고

12명의 참가자들은 클래식 음악에 맞추어 한껏 우아하게 등장했다.

어둠 속 강렬한 스포트라이트가 마치 햇살처럼 그녀들의 머리 위로 쏟아진다.

김종석 MC는 계속 진행을 이어나갔다.

“자, 이번에는 마지막 순서인 '드레스 심사'입니다. 참가자들은 각자의 파트너와 함께 등장하게 됩니다. 이번 순서에서는 드레스 심사와 더불어 순발력 테스트가 진행되는데요, 순발력 테스트를 통해 참가자들의 센스를 확인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참가자들은 각자 파트너들의 손을 잡고 무대에 등장했다.


내 파트너는 우리 과 학회장 선배였다.

사실 우리 과에서 제일 인기 많았던 영준 선배가 파트너 해주기로 해서 다들 부러워했었는데, 하필 전날 밤에 술을 많이 마셔서 늦잠을 잤단다. 그래서 파트너가 막판에 변경되었다는 후문이다.(난 막상 무대에 올라가서야 상황을 알게되었다.)결국, 신입생 OT 때 새우깡 게임했던 그 학회장 선배가 내 파트너로 무대에 섰다.


마치 결혼식을 하는 듯한 엄숙하고도 차분한 곡이 흐르는 가운데 '참가번호 4번 차은서 양은.....'이라는 멘트가 흘러나왔다. 그때 파트너가 건네주는 장미꽃 한 송이를 받아 들고 어둠 속에서 무대 중앙으로 걸어 나왔다. 손뼉 치며 환호하는 사람들을 향해 무릎 굽혀 정중하게 인사했다. 그리고 내 자리를 찾아가 서 있었다. 다른 참가자들도 각자의 파트너와 함께 나왔고, 참가자 전원이 각자의 자리에 서 있자 드레스복 심사에 이어 순발력 테스트가 진행되었다.


“말씀드렸던 대로 이제 마지막 순서입니다. 바로 '순발력 테스트'를 통해 참가자들이 얼마만큼 센스를 잘 발휘하는지 확인하는 시간입니다.”

진행자 김종석 씨가 참가자 순서대로 질문을 했다.


“자, 참가자 1번, 최진아 양에게 묻겠습니다. 맥주를 마시러 갔는데, 맥주에 파리가 빠져 있는 경우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글쎄요.... 종업원에게 파리가 빠져 있다고 말해야겠죠!”

코미디언 조혜련을 닮은 참가자 1번 언니는 그 외의 다른 답이 있겠냐는 듯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네, 그렇군요. 상당히 현실적인 대답이었네요. 자, 그러면 참가자 2번 이서진 양. 이번에도 같은 질문을 드려볼게요. 이런 경우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네, 저는 파리를 건져내고 맥주를 다 마신 다음... 파리가 빠져 있다고 말해서 새 맥주를 받겠습니다.”

“아하하하하. 재미있네요. 답변 잘 들었습니다. 이번엔 참가번호 3번 강유빈 양에게 질문드립니다. 길을 가고 있는데 맞은편에서 남자 친구가 다른 여자와 손을 잡고 걸어오고 있어요. 이럴 때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아~~~~여러 감정이 교차할 것 같은 상황이네요. 전 남자 친구가 보기 전에 일단 그 자리를 피할 것 같아요. 그리고 나중에 이야기하지 않을까 싶네요.”

“네, 강유빈 양의 답변이었습니다. 이런 상황은 상상하기조차 싫은 상황이긴 하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주 깔끔하게 답변 주셨습니다.”

참가번호 3번의 답변이 끝나고 나에게 질문하기 위해 진행자가 나를 향해 걸음을 옮기고 있다.


'이런 질문들이 순발력 테스트에 해당하나?'

라는 의문이 들었지만 그 순간 내게 도움 되는 생각은 아니었다.


'1,2번 질문이 같은 걸 보니 나도 3번 질문과 동일한 질문이려나? 만약 그렇다면, 뭐라고 답하지?'


대답을 잘해야 한다는 강박에 마음이 초조해졌다. 무심코 무대 왼쪽 편으로 눈길을 돌렸다.


어?!!!!!
아까는 없었는데...





수많은 관중 속에서 앞자리에 앉아있는 한 남자의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익숙한 얼굴이다.

태어나 처음으로 '설렘'이라는 느낌을 온몸으로 느끼게 해 준 사람.

'운명적 만남'의 실재를 증명해주듯, 5월의 푸르른 어느 날 문득. 내 앞에 나타난 사람.

다시 보고 싶었던...

궁금한...

그 사람.


바로, 댄스 동아리
부회장 오빠였다.

'축제 구경하러 왔나? 공연하러 왔나? 근데, 옆에 여자는 누구.... 지?'


밤하늘에 반짝이는 별처럼 한 남자의 얼굴만이 객석에서 홀로 환하게 빛을 발하고 있었다. 수많은 관중은 배경으로 페이드 아웃되고, 오직 한 남자만이 전경으로 선명하게 내 눈에 들어왔다. 오빠와 눈이 마주치자 나도 모르게 입꼬리가 올라가며 입가에 미소가 번진다.


'진행자가 몇 걸음 옮기는 이 짧은 순간이 이렇게 길게 느껴질 수도 있구나! 시공간을 초월하는 느낌. 멈춰진 시간 속에 오직 그와 나만이 존재하는 신비스러운 느낌. 숨도 쉬고 눈도 깜빡이고 있는데 현실감이 없어. 분명 꿈은 아닌데.... 아... 아... 정말이지 이 순간을 흘려보내기 싫다... 언젠가 이 순간을 수없이 회상하겠지.... 시간이 이대로 멈추었으면....'


“자, 참가번호 4번이죠, 차은서 양. 조금 전 질문과 동일합니다. 만약 남자 친구가 다른 여자와 손을 잡고 저~어~~ 앞 맞은편에서 걸어오고 있어요. 이럴때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혼자만의 생각에 매몰돼 꿈인지 생시인지 혼동하고 있는 내게 진행자가 훅 질문을 던지니 뭐라 대답해야 할지 막막했다.


저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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