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그 여름

I. 꿈의 대학생이 되다.

by 차은서

8. 우리 같이 영화 볼래요?

헛걸음했다 싶어 절망적인 심경으로 돌아서려는데 복도 끝에서 음악 소리가 희미하게 들려왔다. 음악이 흘러나오는 방향으로 무언가에 홀리듯 발걸음을 천천히 옮겼다. 복도 끝쪽으로 가보니 동아리 사람들이 춤연습을 하고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나는 재빨리 그의 모습을 찾아보았다. 다행히 그가 있었다. 무리 가운데에서 후배들의 춤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 옆에는 우리 과 친구인 지현이가 앉아 있었다.


내 학번 끝자리가 40으로 끝나는데 지현이는 41이어서 영어 회화 시간에 내 옆에 고정으로 앉는 과 친구다. 댄스 동아리 면접 때 춤을 춰보라고 했더니 ‘저는 춤을 잘 못 춥니다만 잘 추고 싶어서 지원했습니다. 오늘은 춤 대신 자신 있는 동작을 보여드리겠습니다.’라고 말하며 ‘국민체조’ 동작을 열심히 했다고 한다. 댄스 동아리에 들어가려면 무조건 춤을 잘 추어야 한다는 고정관념의 틀을 깨고 그녀는 당당히 동아리 면접에 합격했다.


동아리 사람들이 많이 있어서 양손에 들고 간 아이스크림과 초콜릿우유가 민망했다. 손을 뒤로 감추며 쭈뼛거리는 사이 지현이가 나를 발견하고는 그에게 내가 왔다고 귓속말을 했다. 그는 고개를 들어 반짝거리는 눈으로 나를 찾았다. 눈이 마주치자 부끄러워 나도 모르게 고개를 떨궜다. 내 시야에 그의 발끝이 들어왔다.

“정말 찾아올지 몰랐어요. 음.. 여기는 (뒤를 둘러보며) 보는 눈이 많아서 좀 그렇고... 괜찮으시면 동아리방으로 갈까요?”


“네? 네~”


그는 아무도 없어 불이 꺼져있는 어두컴컴한 동방으로 안내했다. 동방에 들어서자마자 불을 켠 후 내 앞에 의자를 펴주면서 앉으라고 권했다.


“여기 앉으세요.”


곧 그도 의자 하나를 가져와 맞은편에 놓고 앉았다. 마주 보고 앉아 있자니 어색한 기운이 감돌았다.

“저 이거....”


손에 들고 있던 아이스크림을 건네주었다. 그는 아이스크림 콘을 받아 들고 ‘잘 먹을게요’라며 싱긋 웃어 보였다. 그는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동방 한쪽으로 걸어갔다.


“동아리방에서는 딱히 할만한 게 없어서.... 음악 좋아....(눈치를 살피며) 하죠?”

내가 고개를 끄덕거리자 선반에서 테이프를 하나 가져와 카세트에 꽂았다. 하지만 작동이 되지 않자 그는 살짝 당황하며 동아리 녹화테이프를 보여주었다. 동아리 멤버들이 추었던 ‘전사의 후예’ 댄스 영상이었다. 그의 모습이 담긴 영상이 아니어서 별 관심이 없었지만 어색한 공기를 채우기엔 충분했기에 몰입하는 척했다.


“지현이랑 같은 과라고 들었어요.”


“네, 오빠는 무슨 과에요?”


“전 경영학과예요. 2학년이고... 전 재수하고 들어와서 나이는 22살이죠”

“그럼 양띠? 저랑 두 살 차이네요.”


“그렇게 되네요. 아까 보니 키가 상당히 큰 것 같던데..”

“네. 168이라서 힐 신으면 175되더라고요. 그래서 힐을 잘 안 신어요. 불편하기도 하고... 평소에는 지금처럼 요정도 굽이 있는 구두를 즐겨 신겨요.”


‘전사의 후예’가 배경음이 된 지는 오래되었다. 우리는 마주 앉아서 호구조사하듯 서로의 신상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갑자기 대화에 집중할 수 없을 정도로 동아리방 밖이 시끄러워져서 창너머로 눈길을 돌렸더니 동방 창밖에 지현이를 비롯한 동방 후배들이 첫날밤을 훔쳐보듯 우리를 엿보고 있었다. 몇몇 짓궂은 후배들은 노크도 없이 동방 문을 갑자기 열고 들어와 마치 무언가 가지러 왔다는 듯이 뒤적뒤적거리다가 결국 빈손으로 나가기도 했다.


어떤 남자 후배는 벌컥 들어와서 “선배......(천진하지만 능글맞은 미소로) 뭐 하는 거예요?”하며 놀려대고 뛰쳐나갔다. 뛰쳐나가는 후배들을 보며 그는 살짝 쑥스러운 듯 얼굴을 붉혔다.


동방 밖 복도에서는 즐거운 야유 소리도 들려왔다.

"우~~~~ 우~~~~~~~!"


(멋쩍게 웃어 보이며) 애들이 좀 짓궂어서.... 원래 동방에는 동방 사람이 아닌 이상 들어올 수가 없거든요. 규칙을 매번 강조하는데 내가 오늘 규칙을 깼네...”


“띠링”


은서~! 어디야? 나 이제 영상 다 봐서 기숙사 들어갈라고.

후배들의 놀림에 오붓한 대화가 끊겼던 찰나 때마침 혜선이에게서 문자가 왔다.

“저 이제 그만 가볼게요. 오늘 동아리방 구경도 시켜주시고 너무 즐거웠어요.”

인사하고 돌아서는데 뒤에서 그의 음성이 내 걸음을 붙잡았다.


저.... 저기.... 내일 시간 있으면 영화..... 같이 볼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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