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꿈의 대학생이 되다.
7. 오늘 시간 괜찮으세요?
2000. 05. 31
수요일인 오늘은 화, 목요일보다 수업이 일찍 끝난다. 오후 4시 수업이 모두 파해서 단짝 친구인 혜선이와 모카빵을 뜯어먹으며 캠퍼스를 거닐었다.
“우리 OO대 비디오 영상실 갈래? 갑자기 영화 보고 싶어 졌어.”
혜선이는 아직 온기가 느껴지는 모카빵을 손으로 뜯어내어 입에 한가득 밀어 넣고는 웅얼웅얼 말했다.
“영상실?”
사실 난 영화를 보고 싶지 않았다. 5월 이 푸르른 날에 어두컴컴한 영상실에서 영화를 보기에는 내 젊은 청춘이 너무도 아까웠다. 하지만, 친구와 동행할 때 내가 원하는 것만 할 수는 없으므로 가끔 희생과 양보가 필요했다.
“그... 그래. 뭐 볼 건데?”
“가서 정해야지 뭐. 일단 가보자.. 으흐흐흐”
가기도 전에 뭐가 그리도 들떴는지 혜선이는 연신 싱글벙글하며 내게 매달리듯 팔짱을 꼈다.
#영상실
혜선이가 비디오를 고르고 있는 동안 나는 등을 돌려 핸드폰을 꺼내 들었다.
“안녕하세요? 저 기억하시죠? 음.. 오늘 시간 괜찮으세요?”
처음으로 그에게 문자메시지를 보냈다. 가슴이 콩닥콩닥 뛰기 시작한다.
‘답장이 안 오면 어쩌지? 혹시.. 거절이라도 하면....’
답문이 오기도 전에 온갖 생각으로 머리가 복잡해지는 동시에 가슴이 쿵쿵쿵 너무도 크게 뛰어서 귀 밖으로 튀어나올 것 같았다.
“띠링~!”
‘엇, 문자 왔다.’
“어쩌죠? 오늘 동아리 활동 때문에 시간이 없네요.”
헉. 거절의 메시지가 분명했다. 순간 민망하고 부끄럽고 창피한 여러 가지 느낌이 동시에 밀려들었다. 내 마음을 적극적으로 전하는 건 처음인데... 큰 용기가 필요했는데... ‘운명의 남자’라고 믿을 만큼 첫눈에 반한 남자를 만나게 되었는데 '이 남자는 내가 아닌가 보구나' 싶은 마음에 눈물이 핑 돌았다.
띠링~!
금방이라도 눈물이 떨어질 듯 그렁그렁 눈물이 맺힌 상태로 방금 온 메시지를 확인했다.
“괜찮으시면 동방으로 놀러 오세요..”
눈물 때문에 제대로 읽은 건가 싶어 눈을 한 번 찡끗 감았다 떴다. 재차 확인했지만 제대로 읽은 게 분명했다.
첫 번째 메시지와 두 번째 메시지 사이의 그 짧은 시간에 내가 느낄 수 있는 온갖 감정을 다 맛본 듯했다. 슬픔, 좌절, 실망, 수치심, 창피함, 부끄러움, 민망함, 기쁨, 희열, 설렘, 기대, 희망 등.
그의 문자 하나에 조금 전의 그 모든 감정은 휘발되었고, 언제 그랬냐는 듯 금세 날아갈 듯 기분이 좋아져 발을 동동 굴렀다. 혜선이에게는 잠시 다녀올 곳이 있다며 ‘비디오 다 보면 연락 줘’라는 말을 남긴 채 동아리방으로 향했다.
더운 날씨에 춤 연습을 하고 있을 그를 생각을 하니 빈손으로 가기가 그래서 매점에 들렀다. 오빠에게 줄 아이스크림 콘 하나와 내가 마실 초콜릿 우유를 하나 샀다. 난 사실 빵빠레를 먹고 싶었지만 입에 묻히며 먹을까 봐 아이스크림 대신 마시기 편한 우유를 골랐다.
오빠랑 나란히 앉아 정답게 대화하는 즐거운 상상을 하며 동아리방으로 발걸음을 재촉했다. 동방에 도착하니 동방 문은 잠겨 있었고 불은 다 꺼져있었다. 분명 동방으로 오라고 했는데 그곳엔 아무도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