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자는 누군가를 좋은 사람인지 판단할 때 자존감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흔히들 자존감 높은 사람은 좋은 사람이고, 반대의 경우는 미성숙한 사람이라고 한다. 뭐 어느 정도 동의하는 바이지만, 반만 맞는 이야기 같다. 자존감이란 있다가도 없고, 없다가도 있는 거 아니겠는가. 어떻게 생각하면 심각하게 상대적인 개념이라, 자존감 충만한 사람 옆에 있으면 비교적 부족해 보이는 것이기도 하고. 자존감 유무로 한 사람을 정의하기에는 충분치 않다는 것이다.
이건 내 개인적인 생각인데, 사람은 자존감 100으로 시작해서 그것을 유지하느냐 잃어버리냐의 문제 같다. 어릴 적 사랑을 충만하게 받은 사람은 이를 유지하는 힘이 클 것이고, 그런 사람도 어떠한 일들을 겪다 보면 잠시 50 정도로 살아갈 수도 있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자존감 바닥인 시간을 얼마나 유지하는가이고, 그것을 회복할만한 마음의 근력이 충분한가이다.
나는 자존감이 높은 편이고 항상 나 스스로에 대한 확신이 가득한 사람이라고 자신했다. 아, 과거에 꽤나 길게 자존감이 바닥을 기었던 시간도 있긴 했다. 취준생 때 탈락을 수차례 겪으며.. 하지만 그 시절은 취업에 성공함과 동시에 내 인생에 있어 하나의 에피소드처럼 지나갔고, 금세 자존감 높은 나로 돌아왔다. 오히려 이 시기를 지나오며 나는 마음의 근력이 꽤나 좋은, 그러니까 회복탄력성이 좋은 사람이라는 확신까지 가져버렸다.
지금까지도 나 스스로를 자존감 높은 사람이라고 생각해 왔고, 주변 평판도 내 생각과 크게 다르지는 않았다. 내 인생에 힘듦이 없어서 그럴 수 있었던 거 아니냐고 하면, 그건 또 아니다. 사회생활을 하며, 여러 사람들과의 만남과 헤어짐을 반복하며, 많은 거절과 부정을 겪어왔다. 그럴 때마다 나는 점점 단단해지려고 노력했다. 일기를 쓰면서, 새로운 것을 공부하며, 소소한 계획들을 이루면서, 맛있고 정갈하게 나만을 위한 요리를 하며, 때로는 본가에 가서 사랑과 따뜻함을 듬뿍 받으면서. 그리고 내가 나 자신을 부정하게 만드는 사람들을 조금은 멀리하려고 했다. 그런 사람들 말고도 내 주위에는 나를 소중히 대해주는 사람이 많았기에.
이런 내가 최근에는 다른 사람이 되었다. 나 자신이 초라하고 작게 느껴진다. 모든 것의 원인을 나로 돌리게 되어 나를 사랑할 수가 없다. 나를 사랑할 에너지를 다른 곳에 쏟아부은 탓이다. 자존감 바닥인 상태로 늪에 빠져 허우적대고 있는데, 딱히 이 늪을 나올 의지가 없기도 했다. 멀지 않은 곳에 밧줄이 있고 그걸 잡을 힘도 충분히 있었지만, 흐린 눈을 하고 밧줄을 외면했다. 아직 이 늪에서 내가 원하는 것을 취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 글을 쓰는 지금은 늪에서 빠져나오긴 했다. 늪이 사라진 탓에 내 의지 없이도 늪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내 의지로 나온 것이 아니기에, 한동안은 늪이 사라져 흔적만 남은 곳을 멍하게 지켜보고 있었다. 하루 이틀 비어있는 그곳을 바라보며 점점 깨달았다. 늪에 있던 것은 어떤 방법으로든 내가 가질 수 없는 것이었고, 가져서도 안 되는 것이었다는 걸. 그것을 욕심 내다보면 내가 늪에 빠지는 결론밖에 없는 것이다.
자존감 이야기를 하다 무슨 뚱딴지같은 늪 이야기인가 하겠지만, 자존감 바닥인 나의 이야기를 조금은 다르게 풀어내고 싶었다. 구구절절 있는 그대로 써내려 가다 보면, 그 감정들을 다시 마주해야 하는데 그러고 싶지가 않다. 회피하고 있는 걸 수도 있지만 지금은 이게 최선인 것 같다. 과거의 아쉬움으로부터 오는 감정들을 일단 회피하고 자존감 회복을 하는데 집중하고 싶다. 이 글을 쓰게 된 이유도 지금 내 상태를 인정하는 것부터가 다시 나를 사랑하기 위한 첫 시작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앞에서도 언급했지만, 자존감이란 있다가도 없고 없다가도 있는 것이기에, 없다 하더라도 그 사람이 별로인 사람은 아니라는 것. 요즘 나에게 끊임없이 해주고 있는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