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파리

9월, 초가을, 시작일기

by 이수연

나는 글 쓰는 사람들이 저주받았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선언적 예언에 가깝다기보다

본능 혹은 전염이다


해파리처럼

유영하는 시간을 손으로 잡으려는 시도


세계와 불화할 수밖에 없는

운명을 배태한 자들

내가 쓰는 글은

슬픔과 고통에서 생겨난다

하나도 즐겁지 않다

때로 활자는 조소한다

진실과 선과 아름다움

너는 셋 중 무엇하나라도

쫓고 있느냐

기이한 웃음소리가

머릿속을 메운다




최근 한 달간의 일정이 다소 무리인 것도 있었고

유독 오늘 컨디션이 좋지 않았다


나이를 먹어서 좋은 건

미병을 일찍 알아차린다는 것

그러나 한 번도 겪어보지 않은

고통을 대처하기는 어려웠다


마지막 교시는

정말 좋아하는 수업이었다

점심도 먹지 않았는데

올려오는 구역감을 참을 수가 없었다


화장실에 가도

아무것도 나오는 게 없었다

마신 물과 흰 체액만 계속 뱉어냈다


자리에 돌아왔지만

구역질을 참을 수가 없어서

다시 강의실을 나갔다


나의 인내심을 믿지 못했고

강의를 방해할 수 없어서

돌아갈 수 없었다


정말 듣고 싶은 수업이었는데..


너무 아팠다

복도에서 혼자서 배를 붙잡고 있었다


금요일 마지막 교시라서

아무도 없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했고

여기서 죽어도 괜찮을 것 같았다


저녁의 날씨는 꽤 추워서

떨고 있었는데 정신을 차리니

동기들이 나를 걱정스럽게 보고 있었다


띠동갑도 더 차이나는 아이들이

나를 걱정해서 구급차를 불렀다

고맙고 미안해서


만약 죽음의 순번이 있다면

아이들 앞으로 새치기를 할 것이다


아이들이 단 1초를 더 산다고 해도

그렇게 할 것이다


세계는

그렇게 되어야만 한다







어느 배교자의 신앙 고백



태어나 보이 모태신앙인기라. 봉제사 접빈객이 헌법이고 족보가 경전인 경상도 땅인기라. 꿈에도 생각 몬 해본 배교(背敎)는 오직 분선이 이모 때문이제. 이모는 내보다 딱 한 살 더 뭇는데 분해서 분서이, 다섯째 딸인기라. 우에 히는 필선(必宣)이고, 그 우에 히는 필조(必助). 삼신할매한테 우짜든동, 우짜든동, 손바닥 닳도록 치성 드리가 얻은 아가 또 딸인기라. 낳자마자 웃목에 던져짔던 분서이는 큰히의 큰아들인 날 딴 별에서 온 사람으로 여겼을끼라. 외가 가믄 분서이 이모는 방금 낳은 알을 몰래 내 손에 쥐키줬지. 그기 새 새끼 심장메로 팔딱이는 기라.

내가 어무이 뱃속에 들앉아 있을 때 이모는 외할매 몸에서 불안한 숨 몰아쉬었을 끼라. 부른 배 때매 사우 피해 츠마 밑으로만 댕깄다는 할매, 한 지붕 아래 뒤뚱뒤뚱 딸내미와 어매가 서로 마주치는 거도 을매나 민망시러운 일 아니었겠노. 누가 등 떠민 것도 아인데 또 아를 가진 할매, 고마 죽은 아들 손잡고 저세상으로 가시뿌고. 분서이는 뺑덕어마이 눈칫밥이 떠밀어 국민학교 졸업하자마자 대처로 떠났는기라. 큰히의 아들은, 아부지 어무이 다 잃고 교복 차림으로 난생처음 서울행 완행열차를 탔는데 이모는 주인 몰래 나왔다카미 구개진 지폐 한 장 쥐키주고 캄캄한 골목으로 사라지는기라.

그 후에사 말해가 뭐하겠노. 우째우째 내가 얼치기 박사 따고 교수 되는 동안 이모는 나이 많은 신랑 만내 노점채소장사하다 덜컥 암종에 발목을 잡혔는기라. 여러 해 방사선에 항암제에 조리돌림 당하다 서둘러 가고 말았으이, 슬프다 풀 끗혜 이슬*. 남자와 여자, 아니 여자와 남자 그 한 끗에 누린 것들, 당연해서 당연하다 여기고 저질렀던 것들 미안코 미안해 때늦게 신앙 고백하는기라. 수지븜 많았던 이모는 외가 삽짝 밖에 핀 분꽃을 닮았었제. 살구꽃 이파리 날리듯이 눈발 흩뿌려지는 이 겨울 아침, 난데없는 까치 울음 속으로 분서이 이모가 사부잭이 내리와 내 어깨를 다독이는기라.


*송재학, 『슬프다 풀 끗혜 이슬』,문학과지성사, 2019.


-장옥관,「어느 배교자의 신앙 고백」



장옥관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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