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하는 사람들을 만나는 일은 얼마나 행복한 일인가(29년 우울증경험자의
좋아하는 사람들을 만나는 일은 얼마나 행복한 일인가(29년 우울증경험자의 생존에세이 11)
서울에 1박2일 볼일이 있어 서울에 왔다. 울산역에 차를 주차해 놓고 KTX기차를 타고 서울역에 도착했다. 배가 그르륵 그려서 베스킨라빈스 옆에 있는 화장실에 들렀다가 개운한 배속 상태로 지하철을 타러 갔다. 내가보기엔 홍대에 가는게 공항철도를 타고 가는게 빠를 것 같아 그리로 가서 지하철출입기계를 통과하려고 바지에 손을 가져다 대었다. 앗!!!
지갑이 없는게 아닌가. 내가 울산역에 주차를 해놓고 지갑을 쓸 일이 없다가 처음 지갑을 확인한 순간이었다. 급 당황. 평소 자주 지갑과 핸드폰이 바지에 있는지 확인 하는 편이긴 해서 상당히 당황스러웠다. 홍대 약속까지 아직 1시간 30분이 남은 시간이었다. 일단 화장실에서 큰 일을 보다가 바지를 내렸을때 그때 바지에서 흘린게 아닌가 싶어서 그 화장실로 갔다. 좌변기에 줄이 서있었다. 생각해보니 왼쪽에 세개중의 하나였다. 내 차례가 되어 일단 줄 앞에 칸을 확인했다. 물론 나오시는 분에게 혹시 지갑 습득하신 것 없냐고 여쭤보니 없다고 하셨다. 군인이었다. 확실치 않은데 내가 몸수색을 할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리고 다시 그 왼쪽 칸에 있는 사람이 나올때까지 기다렸다가 사람이 나올때 물어보고 그 칸을 확인해 보았다. 나머지 가장 왼쪽에 있는 칸은 사람이 나올 기미가 없어보였다. 분명 사람은 있는거 같은데, 기다리는 다른분이 똑똑 두드리고 물어보라고 해서 그렇게 했더니 지갑을 보지 못했다고 해서 그 분이 나올때 마지막으로 그 칸을 확인했다. 지갑은 보이지 않았다.
일단 어디인지 모르지만 지갑을 분실한게 맞는거 같아 결국 서울역 유실물 보관소로 가서 분실 신고를 했다. 이제는 어쩔수 없는 부분이니 약속장소로 가려고 하는데, 내겐 현금이 없었다. 다행히 핸드폰은 가지고 있어서 지나가는 행인들에게 계좌로 입금해준다고 하고 만원을 얻기로 했다. 세명은 다들 날 이상한 사람으로 보고 지나쳤고 네번째 분이(경찰 혹은 군인 같아 보였다.) 내가 불쌍해 보였는지, 만원을 바로 계좌이체 해준다는 말을 믿어서인지 돈을 주겠다고 하셨다. 핸드폰으로 바로 그분 계좌를 물어 입금해 드리고 현금 만원을 받았다. 다시 공항철도 타는 곳으로 가서 1회용 티켓을 구매하고 입장해서 지하철에 탔다. 그런데 이 지하철이 또 갈 생각을 안하네. ㅠㅠ 뜸하게 출발하는 차량인것 같았다. 검색을 하니 차라리 다른 호선을 타서 한번 갈아타고 갈걸 그랬나 잠시 후회가 되기도 했지만, 다시 그리로 이동하면 시간이 더 걸릴것 같아 일단 기다리기로 했다. 신촌을 지나 가좌에서 내려 홍대입구로 가는 차량을 갈아탔다. 약속시간에 8분정도 늦어서 서둘러 갔고 만나기로 했던 진영누나는 이미 도착해 음식 결제를 하고 음식을 챙겨온 상태였다. 애슐리퀸즈 홍대점에서 만났는데, 뷔페식의 페밀리레스토랑 같은 가게였다. 가성비를 생각하면 꽤 음식이 괜찮은 식당이었고, 맛있는 음식을 먹거나 좋은 곳을 가면 늘 그렇듯이 짝지랑 다음에 여기 와봐야 겠다는 말을 누나에게 했다.
진영누나와의 인연은 15년 정도 된거 같다. 짝지랑 만난지 14년이 되었으니 그것과 비슷한 인연. 독서모임에서 알게 되었는데, 14년동안 오늘을 포함해서 다섯번째 만나는 셈일 정도로 우리는 아주 느슨한 친구관계이다. 얘술리퀸즈가 2시간 이상 있으면 직원이 나가야 된다고 해서 맛있는 음식을 먹고 수다를 떨다가 2시 20분 정도 되어서 그 식당을 나왔다. 그 근처에 누나가 예전에 일하던 공유오피스 공간이 있어 그 공간을 가기로 했다. 레몬에이드 캔 두개만 무인결제로 구매하고 그 공간에서 또 2시간동안 수다꽃을 피웠다. 몇 년 만에 만난 사이임에도 우리는 어제 만난것처럼 신나게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가벼운 이야기에서부터 각자의 아픔을 토로하는 속깊은 이야기까지. 우리는 각자의 sns을 자주보며 서로의 삶을 관심있게 보고 있다고 이렇게 몇 년 만에 만나 친구처럼 이야기를 나누었다. 저녁약속만 없었다면 저녁을 또 같이 먹고 나머지 수다도 더 나누고 싶을 정도로 밀도 높은 즐거운 시간이었다. 오후 4시 20분경 누나는 다이소에 물건을 사러가고 나는 약속 장소인 단팟 스튜디오로 향했다.
팟캐스트를 녹음 하러 서울에 온 셈인데 가는길에 내가 만나기로 한 배윤민정 작가님으로 보이는 사람이 내 앞을 지나가는게 아닌가. 작가님 작가님 불렀더니 바로 그 배윤민정 작가님이어서 반갑게 인사를 했다. 이렇게 약속 장소에 가는길에 미리 만나다니 이런 우연이 있을까. 녹음은 5시부터였고, 우리는 길에서 4시 20분에 만난 셈이었다. 녹음 스튜디오에서 우리는 사전 대화를 나누었고, 시간이 되어 녹음실에 들어가서 대기중에 함께 녹음하기로 한 연옥 작가님이 오셨다. 민정작가님은 우리 두 사람이 아주 친한듯 보여서 이미 서로 오프로 만난적이 있는 줄아셨지만 우리는 그날 처음 만난 것이었다. 워낙 sns로 서로의 근황을 관심있게 지켜보고 댓글도 자주 달고 메일도 가끔 주고 받고해서 온라인상으로 아주 가까운 친구인 셈이었지만, 오프로 처음 봐서 너무 반가웠다.
민정 작가님은 <나는 당신들의 아랫사람이 아닙니다>와 <아내라는 이상한 존재라>라는 페미니스트 정체성을 바탕으로 해서 두권의 책을 쓰신 에세이 작가님이시다. 몇년전부터 홍대에 신여성 작업실을 운영하며 여성작가들의 작업과 교류와 소통에 큰 관심을 가지고 공간을 운영하시고 계시기도 하다. 두 책을 흥미롭게 읽고 작가님을 알고 있다가 우연히 작가님이 “에세이클럽”이라는 팟캐스트를 운영하고 계시다는걸 알고 첫 화부터 정주행을 했다. 거기에 출현하신 작가님들의 책은 거의 다 구해 읽어본 것 같고, 에세이클럽에 출현한 연옥작가님의 방송을 듣고 연옥작가님에게 호감이 생겨 작가님이 쓰신 독립출판물 <지워지는 나를 지키는 일: 예민하고 아픈 사람의 퇴사의 일-실험 기록>을 구해 읽었다. 우울증 경험자로써의 공통분모도 있었고, 자기에게 맞는 삶의 방식을 찾아 여러가지를 적극적으로 시도하는 모습이 좋아 늘 응원의 마음을 보내는 작가님이었다. 그 두 작가님을 직접 뵙다니 성덕이 된 셈이었다. 작가님들의 책을 다 챙겨와서 녹음전에 사인을 받았다.
팟캐스트 에세이클럽은 금남의 영역이라고 생각했다. 페미니즘을 기조로 깔고 에세이작가로써 글쓰기에 대한 다양한 잇슈들을 다루는 아주 느슨한 텀으로 녹음하는 팟캐스트이다. 여성들이 안전하게 이용하기 위해 금남의 영역이라는 정체성을 두는 공간이나 팟캐스트가 있다. 에세이 작가로 살기로 마음먹게 된 것도 어쩌면 에세이클럽의 방송 영향이 크기에 감사한 마음도 있고 혹시나 남자인 나도 출현할수 있을까 궁금했다. 나도 에세이 글을 쓰기도 하고 남자 페미니스트이기도 해서 작가님에게 혹시 남자인 나도 출현이 가능한지 연락을 드려보았는데, 혼쾌히 수락을 해주셨다. 작가님이 워낙 바쁜 스케줄을 소화하고 계시느라 허락을 하시고 나서 3개월정도 지나서야 약속을 잡을수 있었다. 이 녹음이 나를 서울로 이끈 첫 약속인 셈이었다. 서울에 가는 김에 다른 일정도 잡아서 1박2일 일정이 된 셈이었다.
이날의 주제는 남자, 페미니스트 였다. 민정작가님 말로는 댓글을 안 달아서 그렇지 에세이클럽을 듣는 남성 애청자들이 존재한다고 했다. 내가 출현함으로 인해서 그 예비 남성 페미니스트들을 수면위로 끌어올리기 되는 계기가 되면 좋을 것 같다. 1시간 30분이 훌쩍 훌러가 버린 녹음이었다. 많은 편집은 하지 않는 편이시라 아마 담주 중에 방송이 올라갈거라 하셨고, 이 방송을 사람들은 어떻게 들을까 궁금하고 기대가 되었다. 악풀도 달릴수 있겠지만, 그것도 기대가 되고.
녹음을 잘 마치고 우리는 민정 작가님이 이끄는대로 타코집으로 저녁을 먹으러 갔다. 민정작가님이 쏘시기로 해서 저녁과 간단한 칵테일과 맥주 한잔을 마셨다. 술을 거의 마시지 않는 편이지만, 좋은 사람들과 함께라면 술을 하고 싶은 마음이 생기니깐. 그렇다고 알딸딸하게 취한건 아니고 기분좋은 취기였다. 서울에서 공간을 운영함의 고단함을 이야기 하시기도 하고, 연옥작가님은 미래에 통영으로 주거지를 옭기고 싶다는 이야기도 하셨다. 민정작가님은 화요일에 발표를 해야하는게 있어서 그것준비로 최근에 엄청 바쁜, 몰입도 높은 시간을 보내셨기에 일찍 보내드리고, 연옥작가님과 나는 연옥의 남편 네일기 작가님을 만나러 갔다.
연옥작가님은 올해 영국인인 네일기작가님과 혼례를 하셨다. 축하의 의미로 두분의 혼례사진중 하나를 그림으로 그려드리기도 했다. 연옥작가님집이 망원동이고 집근처 카페에서 네일기 작가님은 10월을 목표로 독립출판책 후반작업을 하고 있던 중이었다. 네일기 작가님은 한국어로 그림일기를 인스타에 올렸는데, 나는 그 작업이 너무 맘에 들어서 인스타를 정주행해서 그 작업들을 다 보았었다. 언어가 서툰사람에게서 나오는 그 경계선의 묘미, 네일기 작가님이 가진 순수함에서 나오는 어떤 위트가 아트적으로 느껴지는 작업물이었다. 기존에 작업했던 한국어 그림일기 작업에다가 그와 관련된 글을 자세히 써서 책으로 엮을 계획이고 한책에 한국어버전과 영어버전이 함께 담긴 책이 될 것이라 했다. 제목은 깍두기 인데, 우리가 어린시절 이편에도 붙었다가 저 편에도 붙는 사람을 깍두기 라 부르지 않았는가. 한국에서 산지 몇년이 된 네일기 작가님의 위치성이 마치 그 깍두기 같은 셈이다. 한국인도 아니고, 영국인도 아닌 그 경계선위의 위치성. 경계인으로 사는 것의 불편함 또한 분명있지만, 경계인만이 볼 수 있는 시선이 있다. 나는 네일기님의 그림 일기에다가 그 깍두기로써의 시선이 더해진 글이라 무척기대를 하고 있는 책이다. 책이 나오자 마자 바로 구매해서 읽어볼 생각이다.
우리는 저녁 8시 30분에 만나, 그 카페가 닫는 12시까지 즐겁게 이야기하고 내가 아쉬워서 근처 맥도날드에가서 또 1시가까지 이야기를 나누었다. 내가 그들에게 나를 숙소까지 에스코트 해달라고 부탁드렸고(그들과 더 오랜 시간을 보내고 싶어서) 길을 걸어가며 아침에 녹음해서 sns에 올린 이적의 “걱정말아요 그대”를 불러 드리기도 했다.
네일기 작가님은 생각도 못하고 있다가 혜안이 있는 연옥작가님의 푸시를 받아 첫 독립출판물을 준비하고 있는 셈인데, 첫 결과물을 준비 하는 작가라면 누구라도 가지고 있을, 이 책이 나왔을때 반응이 좋지 않으면 어떠나 책이 많이 팔리지 않으면 어쩌나 하는 걱정이 크셨다. 혜안1인 연옥작가님과 혜안2 역을 맡은 나는 초보 작가인 네일기 작가님의 근심을 해소해 드리려 아직은 자신이 인정하지 못하고 알아채지 못하는 네일기작가님의 장점을 반복해서 반복해서 표현해주었다. 나는 내가 누군가를 좋아하면 적극적으로 상대에게 당신이 멋진 사람이라고 표현하는 편인데 어젯밤 정말 정말 많이 표현해 드렸다. 나에 대해서 부정적이었던 내가 짝지인 김비작가님의 응원과 푸시 덕에 이렇게 프로(?) 작가가 된 것처럼, 내가 받은만큼 누군가에게 돌려주고 싶어 네일기 작가님을 응원했던 시간이었다.
십대와 이십대와 삼십대의 나는 정말 정말 서툴고 쉽게 좌절하고 포기하던 나였다. 그래서, 연옥작가님의 행보를 나는 무조건 100% 응원하고 싶었다. 그 응원은 연옥작가님에게 보내는 응원인 동시에 내가 그 시절 받지 못했던 나에 대한 응원이었던 것이다. 자신의 삶의 방식을 찾기위해 좌충우돌 모험하고 있는 연옥작가님이 멋져보이고 힘들어하고 혼란스러워할땐 괜찮다고 응원을 보내고 싶었다.
처음만나서 네시간 반을 웃고 떠들었지만, 새벽 1시에 그들을 떠나보내기 아쉬웠다. 우리는 또 조만간에 만날셈이니까 그 때를 또 기대하며 숙소로 향했다.
게스트하우스 8인 도미토리를 3만원에 야놀자에서 예약한 셈인데, 나포함 6인이 자는 공간이었다. 들어가서 샤워하고 바로 자리에 누웠다. 하루동안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을 만나며 내가 얼마나 행복하고 즐거워했던지, 그 시간을 생각하니 쉽게 잠이 오진 않았다. 감사하게도 크게 코를 고는 사람이 없어서 잘 잤다. 아침에 화장실에 간다고 일어났다가 나오는데, 거실에서 외국인 여성이 말을 거는게 아닌가. 노트북으로 한국어로 번역된 글을 보여주었다. 화재경보기 같은 곳에서 계속 삐 삐 소리가 나서 잠을 못잤다는 그런 내용이었다. 나도 게스트라고 말을 했지만, 일단 뭐가 문제인지 보기로 생각하고 그 여성을 따라 여성 도미토리에 조심히 들어갔다. 화재경보기는 손을 뻗으니 다였고, 왼쪽으로 돌리니 분리가 되었다. 그리고 거기서 건전지 하나를 빼주었다. 얼마나 좋아하시던지. 이제 다시 잠을 잘꺼냐고 물었더니 그렇다고 했다. 삐 삐 거리는 소리땜에 잠을 설친 모양이었다. 외월아유프롬 했더니 프랑스라고 했다. 잘자라고 하고 나도 다시 남자 도미토리로 가서 잠을 청하다가 이 기쁜 경험을 글로 바로 옮기고 싶어서 블루투스 키보드를 챙겨 거실로 나와 글을 쓰고 있다.
하루동안 정말 많은 일이 있었다. 참,. 웃긴 에피소드 하나 추가. 진영누나랑 식당에서 이야기를 한참 나눌때 부산 지역번호가 뜨며 전화가 왔다. 별생각없이 받았는데, 부산역 역무실인데 지갑을 습득했다고 연락이 온것이다. 타기는 울산역에서 탔는데, 서울역에서 지갑을 분실한 거 같은데 지갑은 부산역에서 습득했다니……ㅋㅋ 얼마나 다행이고 기쁘고 웃기던지. 감사하게도 지갑을 울산역 역무실로 보내주실수 있다 해서 오늘 내려가는 길에 울산역 역무실에서 지갑을 찾기로 했다.
정말 다이나믹한 하루였고, 내가 좋아하는 사람을 네명이나 만난 너무 황홀한 항루였다. 오늘 일정도 잘 하고 조용히 양산으로 내려가야겠다. 오늘의 일정에 관한 소식은 또 따로 전하도록하겠다. 왜냐면, 오늘 출판 계약서를 쓰기로 했거든….ㅋㅋㅋ 자랑하는 거 맞다. 일단 계약서 쓰고 난 후 자세한 내용의 글을 또 따로 올리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