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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조건형 Sep 28. 2023

책 리뷰

<악인의 서사> 중 동의가 되지 않는 전승민의 글

<악인의 서사> 중 동의가 되지 않는 전승민의 글


<악인의 서사>는 여러명의 저자가 악에 대해서 다양한 지점에서 접근하며 글을 썼다. 읽던 도중 전승민의 글에는 전혀 동의가 되지 않아 글을 남긴다. 그의 글은 “조명등, 달, 물고기: 나르시시스트의 선한 얼굴은 어떻게 악이 되는가” 라는 글이다. 전하영의 <그녀는 조명등 아래에서 많은 시간을 보냈다>와 한정현의 <마고>에는 비판적 시선의 글을 썼고,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찬사의 글을 썼다.


가부장제 혹은 남성중심의 사회의 피해자인 여성이나 소수자들이 왜, 꼭 남성의 폭력성과 불합리에 대해 끝까지 싸워나가야 하는지 의문이다. 전승민의 글에는 여성과 퀴어의 세계를 이해하고 있다는 투의 글이 보이지만, 진정 그들의 삶에 대해 이해하고 공감하고있는지 의문이 들었다. 여성이 남성중심의 공고한 시스템과 싸우기란 쉽지가 않다. 생존자체로만 버거울때가 있다. 그 남성 사회와 싸워야 할 것은 여성들 뿐만이 아니라 글을 쓰는 정승민 본인도 포함된다. 남성들이 두둔하는 이 사회에서 여성들이 그들의 악과 끝까지 싸워내는 것이 악에 저항하는 유일한 방법일까. 남성세계의 폭력성과 싸우는 여성 혹은 퀴어들은 그들의 삶 자체가 버거울때가 많다. 그들의 어떤 선택도 존중하고 지지해 주는 것이 우선적으로 필요한 태도라고 생각한다.


소설속의 주인공이 이성애자 남성으로부터 피해를 받고 여성들의 뒷모습을 바라보는 장면이 과연 회피라고 표현할만한 것인지 나는 동의가 되지 않는다. 퀴어의 세게에도 이성애의 세게와 마찬가지로 복잡함이 존재한다, 주인공이 그걸 모르고 그 두여성을 부러워만 했을까.


소설 <마고>를 다루는 방식도 마찬가지이다. <마고>에는 정말 다양한 소수자들이 등장한다. 식민시대 + 가부장 시대의 큰 힘 아래에서 그들이 과연 무엇을 얼마만큼 할 수 있었을까. 그들의 행동과 선택은 그들로써는 최선의 선택일 수 있었음을 전승민은 상상하지 못하는 것 같다.


내 글이 충분히 설명적이지 않음을 안다. 다만 정승민의 글을 읽으며 불편한 지점이 많았고 그에 대해서 한마디 말은 하고 싶어서 제주가는 3등실 복잡한 칸에서 블루투스 키보드를 켜서 몇자 끄적여 본다.


남성평론가 중에 자신이 나름 객곽적으로 접근한다고 생각하고 이런식의 글을 쓰는 남성들이 많은 것같다. 책 몇 권 읽었다가 여성의 삶, 혹은 퀴어의 삶을 이해한다고 생각하는 것 자제가 어불성설이다.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약자와 강자에게 들이미는 기준은 달라야 한다. 어설프게 페미니즘을 이해하는 남성이 이래서 위험하다는 생각을 새삼해 본다.


p.s. : 이 글을 읽은 지인 분이 마지막 문단 부분을 읽고 전승민 평론가가 여성이라고 알려주셨다. 그렇다고 위의 글의 내용에는 바뀔게 없다. 여성이든 남성이든 페미니즘을 잘 못 이해하는 사람은 그래서 위험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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