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평 - 더 블라인드 페인터[다큐]
원평 - 더 블라인드 페인터
밤에 우연히 시청을 눌렀다가 끝까지 보게된 아주 괜찮은 다큐멘터리. 원평.
첫 장면은 원평 화백의 장례식에서 시작한다. 원주에서 오래 교편을 잡았던 미술선생님이기도 하고 원주를 소재로 한 작품들을 오랜 시간 그려온 작가이다. 원주에는 미술관이 없기도 하고 해서 원평 작가가 그린 그 많은 원주그림을 박물관에 기증을 한다. 한쪽눈은 실명이고 남은 눈도 시력이 좋지 않은 원평화백. 눈이 안좋아지니 그림은 단순해 지고, 아이같아질 수 밖에 없다. 그에 눈에 들어온 소재, 이끼. 이끼를 또 열심히 그린다.
지역의 원로이기도한 원평 화백을 우상화하거나 멋지게만 그리지 않고 작가의 일상을 담담히, 그렇지만 세심하게 담는다. 다큐의 컷이 상당히 많고 그 컷들도 시선자체가 독특해서 영화 자체가 한편의 그림처럼 느껴진다. 과거의 예술가 양반들이 그렇듯이 한 여자의 뒷바라지를 희생으로 그들은 즐겁게 왕성하게 활동했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보여준다. 그래서 부부는 자주 싸운다. 아내는 귀가 잘 안들리고 남편은 눈이 거의 보이지 않게 된다. 나중에는 싸울 기력조차 없어진다. 노년의 원평 화백의 이동에 둘째 아들이 늘 같이 하는데…….영화내내 저 아들은 백수인가? 하는 생각을 했는데…..영화 말미에 조각하는 작가임을 보여주는 연출방식도 좋았다.
나이가 들고 (영화속에서 이들 부부는 80대이다) 몸에 하나둘 장애가 생기고(귀가 잘 안들리거나 눈이 멀게 되고) 기력이 떨어지는 모습을 슬프게도 무겁게도 다루지 않고 담담히 담은 연출도 참 마음에 든다. 그리고 그들은 죽음을 맞는다. 둘째 아들도 부부가 돌아가시고 나서 얼마 안가 돌아가셨는지, 영화 마지막에 세분의 죽음을 자막으로 알린다. 그리고 엔딩에 올라오는 일상의 보석같은 장면들, 웃긴 장면들…..그 시선이 참 좋다.
노년의 화백은 나이가 들어서도 제자들 전시회나 경조사에 다니고 그림 작업도 계속한다. 나이들어서도 무언가 할게 있어야 삶에 생기가 생기게 마련이다. 그에 비해 아내는 남편 수발을 들고 나머지는 티비보는 것 말고 특별히 취미나 즐거움이 없는 듯 느껴져 그것이 예술가 남편의 수발을 든 미래인가 싶어 안타깝기도 했다.
우리는 나이가 들어가고, 어딘가 아플것이고, 경제적인 활동은 줄어들고, 그럼에도 우리는 일상속에서 소소하게 할 것들을 지금부터 찾고 개발하고 취미로 만들려고 노력해야 한다. 그게 잘 늙어가는 현명한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영화를 보며 그런 생각을 다시하게 된다.
원주에 어마어마하게 큰 은행나무가 반계리에 있는 모양이다. 반계리 은행나무 보러 짝지랑 한번 원주에 여행가봐야겠다는 생각도 했다.
영화 자막에 도움을 준 사람들에 이명세 감독의 이름이 보였다. 역시 이명세 감독의 제자여서 연출이 이렇게 섬세하고 독특하고 때론 미학적이기까지 했나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