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증 이야기

우울한 엄마들의 살롱(수미 에세이)

by 박조건형


우울한 엄마들의 살롱(수미 에세이)


귀한 이야기를 잘 읽었다. 이래저래 바빠 단번에 읽어내진 못했지만, 오늘 후반부를 읽으며 몰아치듯이 읽었다.


수미 작가님과는 10년 넘는 인연을 이어 오고 있지만, 길게 이야기를 나눈 적은 드물다. sns상으로 작가님의 일상과 칼럼들로 작가님의 살을 대충 추측할뿐, 엄마의 우울증에 대해서 쓰신다해서 지지하고 축하드렸을뿐, 엄마로써의 삶의 힘겨움을 잘 이해하지도 못했고, 엄마로써 겨우 시간을 내어 힘겹게 글을 써온 시간들을 구체적으로 알진 못했다. 아이를 키우며 무언가를 한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가. 글을 읽으며 그 고립감과 힘겨움에 눈물이 나기도 하고, 친한 친구가 자신의 깊은 속이야기를 들려준것 같아 반갑고 감사하고 귀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앞부부분은 한국사회가 얼마나 아이키우는 엄마에 대해 무심하고, 혐오적인지 고발하고 있다. 노키즈 존이라는 것은 육아하는 엄마에 대한 노골적인 혐오를 국가가 방관하며 일어나는 현상이라고 생각한다. 아이는 출산하라고만 하면서 아무것도 안하고 있는 국가. 아이들은 원래 시끄러운 존재이다. 층간 소음에 대한 글을 읽으며 우리 부부의 경험도 떠올랐다. 지금은 이사가신 윗층 부부인데, 소설을 쓰며 집에서 하루종일 있는 짝지에겐 아이들의 쿵쿵 소리가 신경이 쓰였나 보다. 짝지가 한번 올라가보고, 나도 한번 올라간적이 있다. 매트도 깔고 주위도 줘보지만, 아이들은 원래 시끄러운 존재다. 두번 올라간 이후론 그냥 그러려니 받아들이고 지냈다.


한국남성들은 자신이 아내보다 돈을 더 번다는 이유로 육아에서 좀 자유로워도 된다고 당연히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그렇다면 돈을 못벌게 되는 상황에는 당연히 아이를 볼것인가? 그건 또 아닐것이다. 누구는 육아는 시간을 쪼개어 쓰기 좋다고 쉽게 말하는데, 육아는 24시간 대기조의 일이다. 육아보다 차라리 일을 하는게 낳다고 하는 사람이 많다. 그만큼 육아는 원래 힘든 일이다.


이 세상에는 수많은 육아서들이 난무하지만, 이렇게 키우든 저렇게 키우든 아이에게 상처를 주게 마련이다. 적게 상처를 주려고 노력만 하면 되는 것이지, 아이에게 좋은 엄마가 되는 비결이라는 것은 없다. 엄마들이 느끼는 죄책감은 이 사회가 조장하고 있는 것이다. 과거에는 육아에 마을이 함께 했지만, 마을이 없어진 현재에는 오로지 엄마들에게만 책임을 묻는다. 모성애는 국가가 함께 책임져야할 돌봄을 방기한체 엄마에게만 책임을 지우는 비겁한 이데올로기 일 뿐이다.


어제 있었던 줌 북토크에서 최현숙 선생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어느정도 클때까지 책임을 지려고만 노력하면 되지 모성애라는 것은 사회가 강요한 이데올로기라는 말에 동의한다.


그 힘겨운 육아와 글쓰기와 우울증의 병행의 시간동안 내가 만약에 여성이었다면, 창원에 사는 동료작가였다면 작가님 옆에서 좋은 수다를 떨수 있는 친구가 되었을텐데 하는 마음도 들었다. 나의 우울증은 15살때부터 44살까지 29년동안이어져 왔다. 우울증없이 잘 지낸 기간은 최근에 2년 11개월이다. 잘 버티고 생존해 왔다고 생각한다. 우울증 동료작가인 수미작가님도 그 힘겨운 시간을 잘 버텨오셨고, 아픔만큼 잘 성장해 오신것 같아 우울증 동료로써 참 기쁘다. 우울증 친구이기도 하고, 동료작가이기도 하다. 두가지 공통점이 있어서 나는 수미작가님이 참 좋다.


은유작가님이 생각이 난다. 이제 자녀들이 많이 장성해서 자녀가 어릴때에 비해 조금더 활동적으로 적극적으로 글을쓰시고 인터뷰를 하시는 모습이 좋다. 은유작가님도 글쓰기를 하며 그 힘겨운 시간을 지나왔다는 글도 어디선가 읽은 기억이 난다. 수미작가님의 두번째 책이 반갑다. 자꾸 글을 쓰고, 그 결과물이 나올수록 글쓰는 삶에 자신이 붙고 탄력이 붙으리라 믿는다. 나쁜 엄마가 되어도 게으른 엄마가 되어도 우울증 엄마가 되어도 괜찮으니 지금처럼 계속 글을 쓰는 삶을 살아가시길 응원한다. 아이들은 자신들의 몫만큼 알아서 커 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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