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글

고문관에서 일잘러가 되기까지 2년 6개월 생존기 - 대성쌤과 함께 하는

by 박조건형

지금 직장에 들어오기전 4년동안 일상드로잉 작가로 살아가기를 실험했다. 실험결과는 실패. 루틴 없는 프리랜서 생활이 내게 안맞기도 했고 코로나가 와서 드로잉수업기회는 줄어들고 그렇다면 화상강의 쪽으로라도 강의 방법을 변경해 볼려고 노력해야 하는데, 우울증이 심하니 그런 적극성도 생기지 않고 마냥 집에서 누워만 보내는 시간이 많았다. 이러면 안되겠다는 위기감에 결국 워크넷, 사람인에 이력서를 넣기 시작했다. 심한 우울증으로 가장 바닥을 찍고 있을때라 내가 일하기 가능한 근무 조건을 찾아야 했다. 주5일 근무, 잔업없음, 빨간날 무조건 쉼, 주말 근무 없는 곳을 우선으로 이력서를 넣었다. 그리고 집에서 가까운 회사 순서로 이력서를 넣었다. 다행히 이력서들을 넣은지 얼마되지 않아 한 곳에서 면접 보자는 연락이 왔다.


이력서를 손으로 적어서 품에 넣고 찾아간 회사는 간판이 보이지 않았다. 여기가 회사 맞나 하는 생각에 들어가 본 곳이 면접보러 오라고 전화받은 그 회사가 맞긴 맞았다. 젊은 사장님이 반갑게 맞아 주셨고, 어떤 일을 하는 곳인지 잘 설명해 주셨다. 운전을 해야하는 일인데 수동 운전을 해본적이 가물가물 했지만 운전 할 수 있다고 그냥 말해 버렸다. 면접 본지 몇일이 지나지 않아 출근하라는 소식을 받았다. 야호!!


1종 보통 운전 면허증이 있긴 하지만 아주 오래전에 친구차로 몇번 운전해 본 경험이 다인지라 나는 여기서 수동 운전하는 걸 배워야 하는 셈이었다. 1.2톤 1대, 2.5톤 2대, 5톤 트럭이 1대 있었다. 처음에는 선배 동료들이 납품갈때 옆에 동승해서 갔다. 차를 처음 움직일때 클러치를 밟고 기어를 2단으로 넣고 클러치 발을 살살 때면서 동시에 액설레이터를 밟아야 한다는 정도는 대충 알았지만 그 감각이 없어서 옆에 앉아 운전하는 사수 동료들의 발과 손을 주시했다. 운전이 가장 기본인 회사인데, 그런것도 모른다고 한소리 들을까봐 내색하지 못하고 그냥 곁눈질로 운전하는 것을 지켜봤다. 남품하는 곳은 내비키고 따라가면 되니 문제 될게 없고 자주 가다보면 길이 외어진다고 했다. 나는 늘 다니던 길만 운전하는 스타일이라 부산지리에 대해서 잘 알지 못했다. 과연 나는 거래처가는 길을 금방 숙지할 수 있을지도 자신이 없었다.


차는 1.2톤을 조심히 몰아보다가 익숙해지면 2.5톤을 그다음은 5톤으로 천천히 올라갔다. 퇴근할때가 되면 차를 작은 회사 안으로 차 네대를 집어 넣는데, 주차해서 넣는게 얼마나 긴장되는지 몰랐다. 5톤 트럭을 후진해서 넣다가 회사앞 우체통을 부셔버렸다. 소장님이 괜찮다며 새로운 우체통을 달아놓으시긴 했지만(소장님은 뚝딱뚝딱 못 만드는게 없는 맥가이버 셨다), 괜히 신경이 쓰였다. 조수석에 타서 사수 동료들을 보면 다들 한손으로 큰 핸들을 살며시 잡고 다른 한손은 호주머니에 넣거나 기어스틱에 턱하니 걸치며 여유스럽게 운전하는게 아닌가. 아니 어떻게 저렇게 한손으로 운전이 가능하지? 내가 운전할때 한손으로 여유있게 운전해 보려하지만 겁이나고 긴장이 되어 결국 두손으로 핸들을 꽉 잡고 운전을 했다. 2년 6개월이 지난 지금은 나도 그들처럼 여유있게 한손으로 운전이 가능해졌다.


제목에서 말한것처럼 나는 고문관이었다. 사고를 끊임없이 쳤다. 물론 큰 사고는 아니지만, 작은 접촉사고나 실수를 끊임없이 했다. 소심하게 부장님에게 사고친것을 어렵게 고하면 부장님은 ’또 박주임이가‘ 라는 탄식을 하셨다. 자기 선에서 마무리되는 사고도 있었고 윗선(사장님)에 보고를 해야하는 사고도 있었는데, 자꾸 나만 실수를 하니깐 보고하기에도 좀 민방한 상황이 계속 생겼다. 이제부터 박조주임이 어떤 사고들을 계속 쳤는지 한번 살펴보자.


부산에 있는 거래처 케이스에 갔을때이다. 입구에 들어가 사무실 앞에 주차를 해놓고 사무실에 들어가서 송장을 끊는데, 나와보니 내차가(1.2톤) 앞으로 굴러가 새 드럼에 쳐박혀 있었다. 사이드를 땡기지 않은 거였다. 심한 경사는 아니어서 살살 굴러가서 쿵 하고 받친 모양이었다. 백몇십만원 되는 드럼 하나가 찌그러져 있었다. 다행히 드럼값을 변상하지 않고 그 드럼과 같은 드럼을 쓰는 거래처에 가져가서 내용물을 옮겨 담아 처리가 되었다.


덕계쪽에 납품하고 있을때 신호가 바뀌었는데, 지나가기도 그렇고 서기도 애매한 그 타이밍이라서 정지선을 한참을 지나 차가 섰다. 다른 차 진행에 방해가 될까봐 비상깜빡이를 켜고 살살 후진을 했다. 각 트럭마다 후방카메라가 설치되어 있는데, 그때는 5톤 트럭 후방카메라가 고장이 나 있을때였다. 사이드 미러로 봤을때는 차가 없는 걸 확인 했고 내 뒤에 차가 있는지 몰랐다. 신호가 다시 바뀌고 차를 몰고 떠나는데, 사이드 미러로 보니 뒤에서 경차를 타신 분이 차에서 내려 내게 뭔가 호소를 하는게 아닌가. 차를 갖길에 새우고 달려가보니 내가 후진하면서 사이드 미러로 보이지 않던 내 차 뒤에 정차해 있는 경차를 살짝 쿵 박은 모양이었다. 차주에게 보험처리 하시라고 하고 연락처를 주고 죄송하다고 사과 하며 그자리를 떴다.


이 사고도 덕계쪽에서 일어난 일이다. 거래처에 납품을 하고 우회전 해서 내려오다가 내가 왜 그랬는지 모르겠는데 내 차 사이드 미러가 가만히 주차해 놓은 카고트럭 뒷옆면을 긁고 지나간 것이다. 한눈 판것도 아니고 옆에 지나가는 차도 없었는데 긁은 나도 황당했다. 내가 왜 그랬지? 당황해서 차에서 내려 운전석으로 갔는데 사람이 없었다. 이걸 모른척하고 가면 뺑소니가 되는건 아닌가 걱정이 되고 우왕좌왕 하다가 결국 연락처를 남겨 놓기로 하고 간단히 사고 경위를 적어서 차문을 열고 운전석에 메모를 남겨두었다.(차 문이 잠겨 있지 않았다.) 회사에 복귀해 부장님께 보고해 드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그 차주에게서 전화가 왔다. 어디를 긁었는지 물어서 설명을 해 드렸는데, 표시가 나지 않는지 차주께서 그 부분을 찾지 못했고 결국 그냥 알겠다고 하시며 마무리 되었다.(속으로 얼마나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는지 모른다.)


주유와 관련된 실수 두개. 1.2톤 트럭을 호포역쪽에서 주유하고 회사로 복귀하면서 다른 거래처에 들렸는데, 주유 뚜껑이 없는게 아닐까. 아무일도 없었던 것처럼 하기 위해 부리나케 운전해서 그 주유소에 갔더니 다행히 사장님이 뚜껑을 챙겨 두셨고 차에 주유 뚜껑을 닫고 다시 회사로 복귀했다. 한번은 장거리를 갔다가 복귀하는길에 주유를 했는데, 복귀하고 보니 카드가 없는게 아닌가. 아뿔싸!! 혹시나 싶어서 내가 주유했던 휴게소 주유소를 검색해서 전화하니 다행히 주유기에 꽂혀 있던 회사 카드를 챙겨 두신것 같고 감사하다고 말씀드리고 퇴근후 내 차를 몰고 경주 근처 주유소까지 가서 카드를 찾은 적이 있다.


5톤 트럭을 몰면 꼭 화물차 하이패스를 통과해야하는데 그렇지 못하면 벌금을 문다고 들었다. 얼마를 무는지 한번 잘못지나가면 바로 벌금이 나오는지는 회사 동료들도 알지 못했다. 차를 돌아가면서 운전을 하다보니 내가 5톤 차를 몰고 있다는걸 깜빡하고 승용차 하이패스를 통과한 것이다. 화물하이패스 미통과 통지서가 날라왔고 부장님은 누가 그때 5톤 트럭을 몰았는지 알아보기 위해 회사에 설치된 그때의 CCTV 찾아 돌려보았다. 하이패스를 통과한 시간 전후로 회사에 들어온 차를 찾아보니 5톤 트럭을 몬 사람이 나였던 것이었다. ㅠㅠ 얼마지나지 않아 경찰에 호출받아 사건 경위를 진술하고 몇달이 지나서 울산지방법원에서 범칙금이 날라올거라는 통보를 받고 또 몇달이 지나 50만원의 벌금이 날라왔다. 피같은 돈 50만원을 벌금으로 물게 되었다.


남양산 IC에서 물금 IC 옆 고속도로를 1.2톤을 몰고 지나갈때 였다. 단속경찰이 갑자기 나타나 차를 세우라고 하더니 벌금을 맥였다. 마침 그때 내가 1차선으로 잠시 달렸기 때문이다. 벌금을 받고 난뒤로 그 구간에서 잠복 경찰(일반 승용차. 경찰차가 아님)이 위반한 차를 따라붙어 차를 세우는 걸 몇차례 봤다. 평소에는 2, 3차선으로 가는 편인데 그날따라 왜 1차선을 달렸는지…. 화물트럭은 1차선으로 달리면 안된다. 내가 회사에 연속으로 사고를 치는 고문관이라 이 소식마저 알리면 안되겠다는 생각에 그냥 조용히 개인적으로 벌금을 입금해 처리했다. 회사로 1차선으로 화물차가 지나갔다고 벌금이 날라왔다. 경마 공원 근처였는데, 내가 왜 1차선에 있었을까. 회사에 현장 직원들 회식할때 쓰는 돈으로 벌금을 대신 내주었다.


이렇게 나열하면 한도 끝도 없어서 이걸 마지막으로 마무리 하자. 나의 마지막 사고이기도 하다. 회사앞에 주차된 5톤 트럭을 뒤로 땡겨야 해서 차를 타면서 5톤 트럭 뒤에 빈공간이 있는걸 확인하고 타고 후진을 했다. 그런데 부우욱 하는 소리가 들렸다. 후진을 할때 마침 볼일을 보시고 복귀하던 소장님의 스타렉스가 그 빈공간으로 들어왔던 것이다. 소장님은 뒤에 차가 있어서 비켜줄려고 그 빈공간으로 들어오셨고, 나는 뒷공간에 차가 없는 걸 확인하고 후진을 한 거였는데, 그렇게 5톤 트럭으로 소장님 스타렉스 옆면을 패이게 긁어버렸다. 부장님에게 보고드리고(ㅠㅠ) 사고차량 수리하는 곳을 단골로 알고 있는 김대리와 함께 스타렉스를 맡기러 갔고 수리비가 150만원 정도 나온다는 말을 들었다. 이것도 내가 물어야지 하는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소장님께서 왜인지 자신이 알아서 하겠다며 현금으로 150만원을 찾아와서 결재를 해 버리셨다. 몸이 불편하셔서 몇달전에 퇴직을 하셨지만 소장님께 정말 감사했다.


아이고 많다 많어. 이러니 제목에 고문관이라고 달 수 밖에. 이밖에도 자잘한 실수들이 너무 많았고, 늘 실수 안하려고 긴장하고 신경쓰는데 내가 왜 이러는지 나에게 무지 실망스러웠다. 너무 자주 큰 사고를 쳐서 “다음에 한번만 더 실수 하면 회사 그만두겠습니다” 라는 말을 내 뱉고 싶은 마음이 들기도 했다. 하지만, 그럴수는 없었다. 회사에서 먼저 그 소리를 하지 않는 이상 내가 알아서 그만둘 필요는 없었다. 짝지와 나의 생계가 달린 직장인데 그렇게 쉽게 그만둘 수 없지. 내게 일단 그냥 버티자 라는 말을 하며 버텼다.


지금은 마지막 사고로부터 9개월이 흘렀다. 그 많은 사고의 경험이 내게 귀중한 선물이 되었다. 운전을 잘하고 있고 기분이 좋아도 그럴때 일수록 나에게 ‘정신차려라. 멘탈 잡아라’ 라는 말을 수시로 한다. 주차를 할때도 후방카메라, 사이드 미러를 수시로 확인하고 천천히 차를 움직인다. 차에서 내릴땐 사이드브레이크를 채웠는지 여러번 확인한다. 운전을 한손으로 할수 있는 여유도 생겼고, 퇴근하려고 회사에 차를 넣을때도 안전하게 천천히 차를 넣는다. 사무실 안에는 보드판에 거래처 납품일정이 빼곡히 적혀 있는데 수시로 그걸 확인하며 내가 무슨 일을 하고 어떤차에 어떤 드럼들을 실어야 하는지 빨리 파악한다. 회사의 지게차가 다른 회사 지게차에 비해 드럼 집기가 어려운 편인데 이제는 그 감각을 익혀서 회사의 지게차 모는 것도 종종한다. 거래처에 가면 늘 큰 소리로 인사하고 거래처 직원에게 이런저런 말도 걸고 내가 도울수 있는 일은 먼저 나서서 돕는다. 그래야 거래처 직원이 내게 호감이 생겨 바쁠때도 우리회사 껀을 먼저 챙겨주기 때문이다. 거래처에 갔는데 거래처 앞에 큰 콘테이너가 주차해 있고 지게차 두대가 물건을 싣고 있었다. 차를 비상깜빡이를 켜고 옆에 주차해 놓고 사람들에게 양해를 구하고 우리 회사차를 먼저 집어넣고 물건을 내린다. 유도리라는게 생겼다고 할까. 멍하니 기다리는게 아니라 상황을 살펴보고 일을 바로 처리할수 있는 상황을 만들기 위해 적극적으로 나선다.


다른 글에서 따로 쓸 내용인데, 내게 우울증이 나타나지 않은지 2년 6개월이 되었다. 이 회사에 들어오고나서 부터인데, 그 시간이 내게 긴 회복의 시간이었다. 우울증으로부터 내가 회복되고 내가 안정적이 되니깐 내 삶에 자신감이 붙었다. 9개월전 부턴 사고도 치지 않고 묵묵하게 성실히 일하는 직원 코스프레를 잘 하고 있다고 느낀다. 같이 일하는 내 편인 형님도 요즘에 일 잘한다고 인정해 주시고, 나도 스스로 내가 일잘러가 된 느낌이 든다. 최근에 반려운동 헬쓰에 재미를 붙였는데, 운동을 꾸준히 하다보니 몸에 힘이 붙어 드럼을 굴리는 일도 훨씬 수월해졌다. 이것도 다른 글에서 따로 쓸건데, 현장 직원들 사이에 앙금이 있는 문제가 있다. 그런데 내가 일잘러 로써의 자존감과 정체성이 커지니 그들을 대할때도 좀 더 당당해지고 어떻게 대처해야할지 자신감이 생겼다. 거래처에서도 인사잘하고 일을 먼저 나서서 도와주는 사람으로 인정받고 있고, 운전은 늘 안전운전하고 조심히 신경쓰고 있고 그러면서도 그 앙금있는 두 사람에 비해 일처리 능력도 커져서 일을 잘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연속으로 계속 사고를 치던 그 당시의 나로써는 지금의 일잘러의 모습을 전혀 상상하지 못했다. 짝지와 나의 생계를 책임지는 곳이라는 생각으로 묵묵히 성실히 일하며 고문간의 시간을 버티니 이렇게 일잘러가 되는 순간이 오는구나 싶어 감회가 새롭다. 그렇지만, 늘 정신차리자는 구호를 내게 외치며 안전운전하고 있다.


작은 회사이지만 지금 회사가 그리 쉽게 망할 회사는 아니다. 그래서 최소 10년은 이곳에서 일할 생각을 가지고 있다. 지금까지는 일잘러의 정체성이 9개월이지만, 앞으로 일잘러의 정체성의 시간은 더 늘어날 것이고 나는 이 회사에서 대체 불가의 인물이 될 것임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그래서 요즘은 일하는 것도 재미있고 즐겁다. 앙금이 있는 동료직원들과의 갈등관계도 내가 여유가 있고 힘이 있으니 대처 능력도 생긴것 같고 한번 붙을 타이밍을 찬찬히 기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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