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곱번째 정체성 추가: “프로다정러”
일곱번째 정체성 추가: “프로다정러”
자다가 화장실 가려고 깨서 sns를 잠시 열어 봤는데, 지인과 대화를 나누었다. 그분이 네게 “프로다정러” 라는 정체성을 칭해주셨다. 좋은 단어다 싶어 바로 sns 프로필 정체성에 일곱번째로 “프로다정러”를 추가했다.
나는 우울증을 29년간 겪고 살아오며 나자신에게 스스로 얼마나 가혹했던가. 늘 루저라고 생각했고, 주류와는 너무나도 뒤떨어졌다고 생각했다. 워낙 뒤떨어지다보니 따라잡을 생각도 못하고, 그냥 낙오해버렸다. 그리고 그냥 그렇게 뒤떨어진채로 살아야지 마음먹었다. 죽고 싶어 옥상에 올라갔던 순간에, 이런 형편 없는 나라도 살고 싶다는 욕망이 있음을 느꼈다. 이런 나라도 말이다.
그래서, 이런 형편없는 나로써 살방법을 모색했다. 나의 롤 모델이 필요했다. 성공스토리나 극복스토리 말고 그냥 주류와 다르지만, 그냥 살아가고 있는 이야기. 그것이 나에겐 롤모델이었다. 나는 30대초 까지 책을 거의 읽지 않던 사람이다. 그때부터 도서관을 찾았다. 처음엔 도서관에서 책을 고르는게 드넓은 사막에서 바늘찾기 같았다. 에세이 서가를 서성였다. 몇권 빌려서 잘 읽히는 책만 읽고 나머진 다시 반납했다. 그렇게 나의 취향을 넓혀갔다. 지금도 나는 주로 에세이 책들을 읽는다. 사람들은 에세이 장르를 낮춰보는 경향이 많은데, 나는 에세이 장르를 가장 높이 친다. 인문장르나 소설장르보다 더 좋아한다. 지금도 나는 에세이 책들을 계속 찾아 읽는다. 내가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이 다양해 질수록 나를 들여다보는 시선도 관대해진다.
한편으로 나는 짝지로부터 전폭적인 지지를 받아왔다. 나는 괜찮다라는 피드백을 끊임없이 받았다. 좋은 가스라이팅을 받은 셈이다. 이제는 나 스스로 나에게 다정해졌다. 나에게 관대해질수있어야 타인에게도 관대해질 수 있다. 물론 자신에게 관대해지는 일은 쉽지 않다. 오랜 시간과 훈련이 필요한 일이다. 그래서, 주변에 스스로를 낮춰보거나 못났다고 하는 사람이 있으면 나는 항상 그들에게 다정하게 반복적으로 말한다. 그들이 스스로에게 다정해질때까지 나는 끊임없이 그들에게 다정함을 표현한다. 당신은 괜찮다고. 우수하지 않아도 괜찮다고. 우울증이 있어도 괜찮다고. 일단 조금만 더 버텨보고 생존해보자고. 당신이 이래도 저래도 난 항상 당신편이 되어줄 거라고. 당신이 스스로에게 당신편이 되어줄때까지 난 항상 당신 편 할거라고.
이 늦은밤, 나에게 그 친구는 “프로다정러”라고는 별칭을 선물해주었다. 일곡번째 정체성 탄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