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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글, 그림

다음소희가 생기지 않도록 하는 것이 우리 어른의 의무(30일 드로잉 시즌

by 박조건형



노동절을 맞아 부산 영화의 전당에서 정주리 감독님의 <다음소희>를 보았다. 공고 상고 출신들이 현장실습생이라는 미명아래 어떤 처우를 받고 있는지 적나라하게 그리고 있는 작품으로 영화 초반은 그걸 직시하는 것이 많이 힘들었다. 영화는 소희의 죽음으로 두개의 부분으로 영화가 나뉜다. 그림은 소희가 죽음을 선택하기전에 허망한 표정으로 하늘을 바라보는 장면이다.


소희는 담임이 대기업이라고 우쭐대며 콜센터에 꽂아주고 근무를 하게 된다. 해지방어팀이란 고객들이 해지를 하지 못하도록 계속 전화를 돌리는 방식을 취하는데, 고객은 열이 엄청 받은 상태. 그러니 고객으로부터 어떤 모욕적인 상황들을 경험하겠는가. 사회초년생이 이런식으로 일을 배워야 하는게 너무 화가 나고 눈물이 났다. 회사는 주지도 않을거면서 인센티브를 줄거니깐 열심히 야근하라고 독촉한다. 인센티브를 바라보며 열심히 근무했건만 회사는 사회초년생이라는 이유로 여러핑계를 대며 인센티브를 지불하지 않는다. 회사 내부고발자는 자살을 하고 대기업은 그것을 덮으려고만 한다. 경찰도 그 사건을 덮어버리고 그 사건을 파헤치지 않은 결과로 소희는 죽음을 선택한다. 내부고발자의 수사를 제대로 했더라면 소희의 죽음을 막을수 있지 않았을까.


너무 부당한 회사의 처우에 회사를 그만두고 싶어 소희는 담임에게 이야기 하지만, 돌아아는 것은 원래 사회생활이 그러하니 힘들더라도 버티라는 말 뿐이다.(힘들면 일단 살기 위해서라도 잠시 쉬라고 말해야 하지 않을까?) 소희는 담임에게 “내가 거기서 무슨 일을 하는지 알아요?” 라고 슬픈 표정으로 묻는다. 담임은 자신의 학생들이 어떤 열악한 직장에 들어가 일을 하게 되는지 모르고, 알려고도 하지 않고 취업률을 핑계삼아 무조건 취업시킬려고만 한다. 선생들이, 학교가 학생들이 일을 하게 될 회사의 열악한 상황들을 파악하고 있었더라면 이 시대의 많은 소희들의 죽음을 막을수 있지 않을까. 장학사 조차 취업률이 낮으면 지원금을 많이 받지 못한다며 학생들의 존재를 도구처럼 여긴다. 학생들의 존엄은 여기서 들어설 자리가 없다.


배두나가 맡은 유진 형사는 소희 주변의 사람들을 한명씩 만난다. 부모는 자기 살기 바빠서 아이를 살펴볼 여유가 없어서 소희가 춤추는 걸 얼마나 좋아했는지 알지 못하고 소희가 춤을 좋아했다는 이야기를 유진으로부터 전해 듣자 오열을 한다. 소희의 친구와 선배들을 만나며 소희의 죽음이 너희들의 책임이 아니니 더 이상 괴로워 하지 말라고 말한다. 이 사회의 책임이지 옆에 있었던 너희들의 책임이 아닌 것이다. 그러면서 소희랑 친했던 1년 선배인 태준에게 많이 힘든 상황이 생기면 이제는 자신에게 이야기 하라고 말한다. 그 말을 들은 태준은 고맙습니다 라고 말하며 오열한다. 나도 그 장면을 보는데(많은 분들이) 나도 눈물이 터져나왔다. 사회에 먼저 나왔던 어른들은 사회초년생들에게 그런 존재가 되어 주어야 하는게 아닐까. 이 사회는 MZ 세대라는 묶음으로 대충 퉁치며 요즘 젊은 사람들이 문제라며 그들을 힐난 한다. 얼마나 다양한 결이 있는데, 그냥 MZ세대라는 말로 퉁친다. 얼마나 게으른 접근인가. 그들에겐 젊은 사람과 소통할 의사가 있는가. 그들을 알기 위해 얼마나 노력하고 소통하기 위해 시도 했는가. 소통과 관계맺기에 게으른 자신들을 문제시 삼지 않고 젊은 사람들이 문제라고만 한다.


다음소희가 더이상 나오지 않기 위해서 과연 우리는 무엇을 해야할까. 워낙 이 사회가 공고해서 모두가 사건 연루자이자 가해자이기에 세상은 변하지 않을것이라는 회의적인 생각을 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더라도 젊은 사람들의 죽음의 선택을 이렇게 방관만 하고 있어야 할까. 작은 무엇이라도 내가 할 수 있는 지점들을 찾아보는 것이 이 시대를 먼저 산 어른으로써의 의무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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