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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라는 세계(김소영 에세이) 두번째 읽음

by 박조건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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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반송에 있는 책방 “미지의 세계”라는 곳에서 <어린이라는 세계>를 가지고 이야기 나누는 독서모임이 있다. 그래서 다시 읽어보았다. 처음 읽었을때도 마찬가지이지만, 다시 읽어도 좋다. 오늘은 이 책을 읽고 이야기 나눌거라 이야기 나눌 거리들을 읽으면서 아래에 체크해 두었다. 읽으면서 이번에도 또 눈물이 나는 장면들이 있었다. 그 근원은 아마 <어린이라는 세계>가 어린이를 대하는 태도가 남다르기 때문이다. 상대를 존중하는 존엄의 태도가 느껴져서이기 때문이다. 마치 어린 나가 존중 받는 느낌. 못난 나가 수용되는 느낌이 드는 책이기 때문이다.


나는 소수자성의 가시화 문제에 대해 관심이 많은데, 어린이들은 늘 우리 사회의 구서원으로 인정받지 못하고 아직은 부족하고 어린 존재로 취급받았다. 하지만 그들도 이 사회에서 함께 살아아기 위해 그방법을 익히고 훈련하는 사회의 구성원이다. 우리는 지금까지 그들을 우리 사회의 구성원으로 인식하고 대한 적이 있는가. 존종울 받아본 사람이 스스로를 존중되고, 그걸 체화해서 큰 어린이는 어른이 되어 또 다른 약자나 소수자나 어린이를 조심하고 배려하는 태도를 기본으로 장착하고 대하는 사람이 된다.


다양성이 존중 받고 그 다양한 개성이 ‘고유함’으로 인정받는 세상이 살맛나고 재미난 세상이라고 믿는 사람이다. 그래서 그 다양성을 구성하는 소수자성을 계속 공부하고 발견하고 목소리를 내고 그래서 우리와 함께 사는 구성원임을 계속 강조하고 있고 그런 발언들을 하며 살아갈 것이다.


책방 ”미지의 세계“는 늘 관심을 가지고 있던 책방인데, 주로 평일 낮에 모임을 하시는 경우가 많아 아쉬워만 하다가 오랜만에 시간을 내어 첫방문을 하는 셈인데, 그 책방과의 만남과 책방지기 사장님과의 만남이 기대가 된다. 그리고 <어린이라는 세계>라는 책을 읽어온 독자분들과 함께 나눌 이야기도 기대가 된다.


<어린이라는 세계>는 어린이 대신 소수자, 약자 라는 말을 넣어도 이야기가 가능한, 존재에 대한 존엄을 이야기 하는 책이라서 궂이 어린이에게 관심이 없는 분이 읽어도 배울게 참 많은 책이다.(내가 어린이에게 큰 관심이 없는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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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책 편집자, 어린이 독서교실 선생님 이십년 남짓 일하심.

어린이도 우리 세계의 어엿한 구성원.

어린이에대한 이해가 부족한 사회이기에

이 책은 더 필요함.

어린이는 신발을 신는데 오래걸림. 왼쪽 신발과 오른쪽 신발 구분을 힘들어하는 어린이도 있음- 나도 한참동안 왼쪽 오름쪽을 구분 못했었음.

어린이에게 빨리 하라고 눈치주는 어른들- 좀 기다려주는 어른이 되어보는 건 어떨까.

어린이들의 허세증. 좀 들어두는 건 어떨까.어려운 말 써보고 싶어하는 아이들.

어린이들의 허세는 진지하고 낙관적.그래서 멋지다.

어린이에게 ‘착하다’ 는 말을 쓰기가 늘 조심스러움.- 아이들에게 착한 어린이가 되어야 한다고 압박하는 것 같아서.어른들의 요구를 거절 못하는 어린이가 되지 말았으면 한다.부모를 실망시키지 않으려고 착한 어린이가 되려고 애쓰다 멍드는 어린이가 어딘가에 늘 있다.

어린이를 대접하는 작가님- 선생님이 이렇게 하는 건 네가 언젠가 좋은 곳에 갔을 때 자연스럽게 이런 대접을 받았으면 해서야.

어린이들이 좋은 대접을 받아봐야 계속 좋은 대접을 받을 수 있다고 믿는다.정중한 대접을 받는 어린이는 점잖게 행동한다.어린이들이 이런데 익숙해지면 점잖음과 정중함을 관계의 기본적인 태도와 양식으로 여기게 된다.

어린이도 사회생황을 하고 있으며, 품위를 지키고 싶어한다.

어린이의 품위를 지켜 주는 품위 있는 어른이되고 싶다.

어린이들이 마음 놓고 진짜로 놀 권리를보장하자는 것- 어린이가 놀 수 있는 환경만은 어떻게든 만들자는 뜻.

어린이들 덕분에 개성이라누‘고유성’에 가깝다는 것을 알게 됐다.

사람들이 각자 자기 방식으로 살아가는 우주는 활기차다. 서로 달라서 생기는 들쭉날쭉함이야말로 안정적인 질서다.

아버지들이 아이를 돌보는 리얼리티쇼- 육아가 거의 전적으로 어머니에게 떠맡겨지는 현실에서 아버지가 아이를 돌본다는 이유만으로 대중의 관심을 받는게 불편하다. 그리고 그들의 집은 너무 크다.

어린이도 볼 수 있는 프로그램이라면, 가장 외로운 어린이를 기준으로 만들어지면 좋겠다.

다양한 아이들의 개성을 존중 하는 것처럼, 다양한 부모들의 개성도 존중해야 한다.

“어린이에게 존댓말을 써야 할 이유는 분명했다. 일단 업무상의 만남이라는 점. 나는 일터로서 독서교실을 차렸다. 어린이는 내게 의뢰를 하러 찾아온 사람이다. 적절한 책을 추천하고 잘 읽는 법을 가르쳐 달라는게 의뢰의 내용이다. 나는 그 일을 하고 보수를 받는다. 오히려 어린이가 어려운 처지니 존댓말을 쓰는 게 옳았다“(p178~179)

‘얌전한 어린이‘ 를 선별해서 손님으로 받아들이겠다는 것 자체가 혐오이고 차별이라는 데에 어떤 논의가 더 필요한 걸까?

이런 태도가 차별과 혐오의 소산이라는 것을 안 뒤에는 의식적으로 어린이의 소음을 무시했다. 더 많이 알고 더 많이 누린 사람이 잘 모르고 경험 없는 사람을 참고 기다려 주는 것. 용기와 관용이 필요하지만, 인간으로서 할 수 있고 해야 하는 일이다. 어린이는 공공장소에서 예의를 지켜야 한다는 것을 배워야 한다. 어디서 배워야 할까? 당연하게도 공공장소에서 배워야 한다. 좋은 곳에서 좋은 대접을 받으면서 그에 걸맞은 행동을 배워야 한다.

언제나 절망이 더 쉽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얻을 수 있고, 무엇을 맡겨도 기꺼이 받아 준다. 희망은 그 반대다. 갖기로 마음먹은 순간부터 요구하는 것이 많다. 희망은 늘 절망보다 가차 없다. 그래서 우리를 걷게 된다.

아동을 놀리기 좋은 상대로 바라보는 시각은 시청자뿐 아니라 우리 사회가 아동을 대하는 태도에 영향을 끼칠 수 있다.

어린이를 감상하지 말라, 어린이는 어른을 즐겁게 하는 존재가 아니다.

어린이 날이 어린이의 소원을 들어두는 날에 그치면 안된다고 생각한다. 그보다는 어린이가 ‘해방된 존재’가 맞는지 점검하는 날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나는 이제 어린이에게 하는 말을 나에게도 해 준다. 반대로 어린이에게 하지 않을 말을 스스로에게도 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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