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글, 그림

29년의 우울증을 지나 2년 6개월의 긴 회복의 시간(대성쌤과 함께하는

by 박조건형




요즘 나는 47년 인생중 가장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있다고 자주 말하고 다닌다. 15살부터 44살까지 29년의 우울증을 경험했다고 말했으면서 나는 어떻게 그 답이 없어보였던 우울증에서 나와 이렇게 회복을 할 수 있었을까.


그 회복의 시간이 어떻게 흘러왔는지 알아채기 위해서 인스타를 쭉 살펴보는데, 우울증과 관련된 글은 거의 없다. 2년 6개월전까지는 일상드로잉작가로 정체성을 잡았을때여서 그런지, 그림들로만 피드가 가득채워져 있고, 지금의 회사에 다닐즈음부터는 그림과 담을 쌓았는지, 그나마 책을 읽은 기록들로 가득채워져 있다. 뭔가 집중할게 필요해서였을까. 책에서 위로를 받고 싶었던걸까. 인스타에서는 내 변화의 단서들을 발견하기 어렵고 그러면 그냥 그 시간들을 떠올리며 추측해 보자.


내가 지금 회사에 입사한 것이 2020년 10월 말경이다. 그 즈음의 나는 기억하기로 그림 작업도 못하고 집에서 늘 누워만 있고, 코로나로 수업이 거의 없어졌어도 적극적으로 방법을 타개할 의지를 내지 못하는 상태였던거 같다. 짝지도 낮에는 거실에서 소설작업을 하는데, 나는 내방에서 짝지 눈치 보여 누워 있지는 못하고 마음 졸이며 무기력하게 있었던 거 같다. 우리집은 내방을 열어 놓고 지내는데, (문을 닫으면 관계가 단절된 느낌이라 짝지가 열어놓으라고 하셨다.) 짝지가 소설을 쓰는 곳에서 안보일만한 위치에 짱박혀 몰래 누워있곤 했다. 그러다 인기척이 나거나 짝지가 나를 부르면 아닌척 다시 책상에 앞에 앉아 있곤 했다. 짝지도 내가 그렇게 몰래 누워있는 걸 알고 있었다고 한다.


지금은 쇼파가 없지만, 쇼파가 있던 벽지 부분에 누런때가 남아 있다. 우울증으로 무기력할때 늘 그 쇼파에서 핸드폰으로 유튜브를 보며 머리를 벽지에 기댔던 것이다. 몇달동안 그렇게 머리를 대고 있었더니 그 부분의 벽지만 노랗게 되었고, 짝지는 내게 기운을 주려 했는지, 과제를 안겨줄 셈이었는지 벽지에 내 모습을 그려보라고 했고, 벽지에 그때의 흔적이 기록되어 있다.


2년 6개월즈음 전의 나는 하는 것이 별로 없고, 그나마 가는 곳이 한달에 한번 있는 문학의 곳간 독서모임과 화명동에 있는 결혼한 친구 소라네가 다였다. 그래서, 소라네 첫째인 하진이를 자주 보게 되었고, 하진이 그림을 그림으로 많이 기록해두었다. 소라네에 갔어도 나는 무기력한 상태라 대화도 제대로 나누지 못했지만, 소라는 아무렇지 않게 나를 언제나 반겨주었다. 문학의 곳간도 마찬가지이다. 그곳에 만나는 친구들은 말없이 모임에 참석하는 나를 질문없이 수용해 주었다.


이렇게 지내면 더이상 안되겠다는 위기감에 여러곳에 지원서를 넣었고, 넣은지 얼마되지 않아 면접을 보고 지금의 납품운전하는 회사에 바로 입사했다. 입사지원을 하면서 우선순위로 둔 것은 일찍 마치고, 잔업 없고, 빨간 날 다 쉬는 회사였다. 몸도 적당히 쓰는 곳을 원했던 것 같고. 나는 1종 보통운전면허증을 가지고는 있지만, 수동 대형화물차 운전을 여기서 배우고 익혔다. 그러니 들어가서 얼마나 가벼운 접촉사고를 많이 냈겠는가. 그런데도 나의 2주 선임인 전주임 형님은 사고 칠때마다 힐난 없이 말없이 어깨를 두드려 주며 마음에 담아두지 말라는 말로 위로해 주었다. 형님의 말로는 운전은 잘하지 못하지만, 그래도 열심히 하고 성실한 모습에 호감이 갔다고 한다.


입사하고부터는 퇴근하고 집에와서 쉬고 한달에 한번 곳간가고, 한번씩 소라네 가서 있다오는 것이 다였다. 인스타 기록을 보니 그림과는 담을 쌓고 책들을 읽어나가기 시작한 것 같다. 그게 그때 생활의 다였다. 우울증 약은 몇년째 계속 먹고 있었다. 솔직하게 말하자면 우울증약이 나랑 상성이 맞는 것 같지는 않았지만, 뭐라도 노력하는 모습을 보여야할 것 같아 약은 빠지지 않고 챙겨 먹었다. 누군가가 아직도 나를 작가님이라고 부르면 그게 그렇게 부담스러운 호칭이었고, 나는 2년 3개월정도는 그림과 담을 쌓고 살았다. 그림은 앞으로도 그리지 않을것 같았다. 그림보다는 책읽기가 그나마 내게 와닿는 텍스트 였던 거 같다. 그림 그리는게 재미있지 않은데 내가 왜 계속 그려? 하는 심뽀였다. 나의 그림을 놓지 못하는 짝지가 몇달에 한번씩 그림그리러 가자고 하면 억지로 가서 억지로 같이 그림을 그린 정도 뿐이었다. 그림을 그리면서도 나는 앞으로 그림 안그릴꺼야 이런 생각을 했다.


글을 쓰면서도 내 우울증에서 회복된 타이밍이나 원인을 잘 모르겠다. 회사에 입사하고 1년 8개월정도 지난 후부터는 무사고를 기록하기 시작해서 현재 9개월정도 무사고이다. 운전하는 것도 조심하면서도 잘하게 된 부분도 있고, 내 사수 전주임 형님으로부터 일을 잘 배워서 일을 잘하게 된것도 나의 자존감을 높이게 된 원인중의 하나였다. 언제부터인지 모르겠지만, 내게 여유가 생기기 시작하고 삶에 대한 호기심이 생겼다. 하고 싶은 것들이 하나둘 생겼고, 사람들 만나는 것도 재미있었다. 독서모임을 여러개 참여하고, 양산 등산밴드에도 가입하기도 했다.


지금은 네개의 정체성으로 재 정체화 해서 살고 있다. 인스타, 블로그, 페이스북의 프로필을 아래와 같이 수정했다.


일상을 글과 그림으로 기록하는 노동자, 남자 페미니스트, 29년 우울증 경험자. 최근에 하나더 추가한 것이 프로딴짓러 이다.


일상을 글로 기록해온 것은 오래되었다. 팟캐스트 “큰 일은 여자가 해야지”가 내게 큰 영향을 미쳤는데, 프리랜서인 두 진행자 중 한분이 쓴 <딴짓 좀 하겠습니다>를 읽고 딴짓하기의 의미를 새삼 인식하며 직장을 안정적으로 오래 다니며 딴짓을 많이 해보며 나를 알아보는 시간을 가져야지 마음 먹었다. 팟캐스트에서 N잡러의 삶에 대해 자주 이야기 했는데, 그게 내 삶에서도 가능하리라는 확신을 갖게 되어 이제는 그렇게 살고 있다. 박조건형이라는 이름을 브랜당해서 납품운전 일도 재마나게 하면서 그 이후의 시간에 글과 그림으로 내 삶을 기록하면서 전시도 하고, “30일드로잉 시즌”도 운영하고 드로잉 축제에도 참석할 준비도 하고 예전에 책을 냈던 김영사에 다시 연락도 했다. 30일 드로잉 단톡방은(시즌1 은 28명이 나와 함께 하고 계시다) 시즌제로 운영하면서 계속해나갈 생각인데, 한달동안 30개의 글과 그림 한 세트의 작업물을 나는 완성하게 된다. 시즌3이 마무리 될 즈음에는 90개의 글과 그림이 내게 생기고 그걸 바탕으로 김영사 혹은 다른 출판사에 출판의뢰를 할 계획도 하고 있다. 일간 이슬아 작가님을 롤모델로 해서 메일링서비스도 처음 시도해 봤고(여섯명이 메일링 서비스를 받고 있다) 온라인 드로잉 수업도 준비중이다. 다른 사람은 웃기게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헬쓰장에서 유산소 운동하며 뉴퀴즈를 보며 들었던 생각인데, 나아중에 유명해 져서 뉴퀴즈에 나가야지 하는 생각도 속으로 조심히 먹어보기도 했다.


너무 행복하게 재미나게 살아가는 요즘의 내 모습이 짝지에게는 조금은 걱정스러움으로 다가가고 있는 것 같다. 과거에 바쁘게 지내다가 갑자기 와르르 무너져 무기력해지는 모습을 자주 봤기 때문이다. 그런데, 요즘은 그때의 수많은 반복의 모습과는 전혀 달라진 것 같다. 내가 진화하고 확장되었다고 해야할까. 다시 우울증이 올지에 대한 두려움이 거의 없다. 혹시 오더라도 다른 사람들에게 도움도 청하고 다시 잘 컨트롤해서 그 우울증의 시간을 잘 지나가리라는 믿음 같은 것이 있다. 그리고 지금의 모습을 잘 유지하는 것의 가장 중요한 것이 밸런스라는 것을 계속 상기한다. 그래서, 잠 푹자고 쉬어주는 시간을 잘챙기고 있고 잘 챙기려 한다. 내가 말로 이런 변화를 설명하는 것 보단, 그냥 내가 지금처럼 행복하게 재미나게 1년정도 더 지내면 그것으로 나에 대한 불안을 잠식할 수 있을거라 믿는다. 짝지의 걱정에 기반한 잔소리가 약간 짜증이 나긴 하지만, 그래도 그 걱정의 근원을 이해하기에 많이는 투덜 되지 않으려 한다.


6월 7일부터 또 다른 글쓰기 동료들과 함께 여섯번의 우울증에 대한 이야기들을 따로 다루어 보려고 한다. 29년 우울증의 시간을 정리하는 시간이 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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