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리뷰
화장실 VIP 멤버십(고윤아) - 독립출판
작년에 제주책방에서 구입해 읽었던 <병실로 퇴근합니다>가 너무 좋았다. 15년동안 크론병과 함께 살아왔던 이야기를 담은 책이었다. 크론병은 아직까지는 희귀성 난치병이고 소화기관 전체에 발생할수 있는 만성 염증성 질환이다. 주요 증상은 설사와 복통이고 화장실을 자주 가다보니, 언제 증상이 나타날지 몰라 자주 긴장하고 먹는 음식들은 항상 신경쓰고 조절해야하는 질병이다. 먹을수 있는게 한정되어 있고, 먹고 싶은 것이 있어도 컨디션이 좋을때 시도해서 괜찮기도 하지만 자주 화장실을 들락하거나 응급실에 실려가야 하는 어려움과 불편함이 있다. 이동이나 짧은 여행을 할때도 늘 화장실 위치를 확인해두어야 조금은 마음이 편안해진다고 한다.
언제 찾아올지 모르는 증상은 사람을 위축하게 만들고 자꾸 집에 머물게 된다. 그나마 감사한 일은 범블비라는 좋은 파트너를 만나서 조금씩 멀리 떠나는 도전을 해보며 자신을 확장시켜나고 계시다는 점이다. 작가님은 제주도에 살고 계신데, 좋아하는 카페나 책방에도 다니고 북페어에도 도전해 본다. 육지 여행도 범블비와 함께라면 조금씩 시도해 보는 도전.
이번에 두번째 나온 책 <화장실 VIP 멤버십>은 첫 책에서 생활적으로 심화된 이야기를 담았다. 화장실을 자주 애용(?) 할수 밖에 없는 몸이다보니 제목을 위와 같이 위트있게 지으셨다.
우울증도 그렇지만, 육체적 정신적으로 힘든 상황으로 보이는 환경속에서 살아온 분들을 보면 대체 저분은 어떤 힘으로 그 어려움들을 지나오고 버텨오고 살아온 것일까 궁금함이 생긴다. 저 사람을 버티게 살아가게 하는 것들이 무엇일까 하는. 두번째 장에 보면 작가님을 응원해주는 주변의 사람들이 등장한다. 카페 사장님이기도 책방사장님이기도 미용실 사장님이기도 한다. 10년차 주치의로 만나고 있는 의사 선생님을 슈퍼맨이라고 책에 쓰셨는데, 그 의사 선생님이 이제 점심약을 하나 빼보자고 말씀하실때 내일처럼 기뻤다. 우울증 약을 먹는 친구가 정신과 의사의 제안으로 약을 조금 줄여보자고 말씀하셨을때의 반가움처럼.
이렇게 힘든 상황이 일상적으로 수시로 내 삶을 덮치는 삶임에도 불구하고 1년중 360일이 행복하다고 말할수 있는 마음은 어떤 것일까. 거대한 아픔과 슬픔을 오랜시간 견디며 살아온 사람들을 보면 그 일상적 힘겨움을 인정하고 받아들인다. 하나의 정체성인 셈이다. 물론 그 수용이 쉬운게 아니라서 오랜시간이 걸린다. 억울함과 분노, 좌절이 반복되는 과정속에서 이걸 부인할 수 없는 현실이구나 받아들이게 된다. 그 받아들임이 새로운 출발이되고 그 수용 속에서 그 힘든 상황을 기본값으로 내 삶을 살게 된다. 그 적극성이 행복의 출발점이다. 크론병을 가지고 산다는 건 많은 걸 포기해야 하지만, 시선을 돌리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누릴수 있다는 것 또한 많다는걸 발견하는 일이다. 그 단계가 되면 하루하루 참으로 감사한 일이 많고 행복한 일이 많다. 작가님의 책을 읽으며 펑펑 많이 울었던 것도 과거의 아픈 시간이 떠올라서 이기도 하고, 작가님이 감당해야 했던 그 지난한 시간이 상상되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365일중, 360일 정도 대체로 행복하다는 말씀이 무엇인지 이해가 되고 내일처럼 기뻤다. 세상을 보는 시선이 달라지면 소소한 것들만으로도 행복한 일이 하루에도 넘쳐나게 된다. 많이 아프거나 힘든 상황을 겪었던 사람들의 장점이라면 장점이, 세상을 바라보는 새로운 시선을 가지게 된다는 것이다. 내가 최근의 3년간 매일 매일 신나고 재미난 일 투성이고 너무 행복하다는 말을 하는 것도 그런 시선을 가지게 되었기 때문이다.
두번째 책이 나오는 전에 고간호사님 인스타가 조용해서 가끔 많이 아픈신가 걱정도 되고 궁금해서 연락을 드린적이 있다. 역시나 힘든시간을 버티며 지나가고 있을때라고 전해 주셨다. 최근에 우울증이 다시 와서 힘들다는 근황을 전해준 동료작가님에게 납작엎드려 생활을 최소화 하고 일단 하루하루 버티기에만 집중하라는 조언을 했던 것처럼(요즘의 나에게도 했던 조언) 그 시간을 버티고 지나가시는데만 집중하시라고 응원의 문자를 드렸던 것이 생각난다.
책속에 부모님께서 이런 말을 한다. 건간한게 니가 할 일이고, 살아있으면 충분하다고 말씀하신다. 맞다. 누군가는 하루하루 살아냄만으로도 충분하기도 하다. 아프지 않으려고 애쓰며 건강할려고 노력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사람도 있다. 페미니즘을 오래 공부하며 내가 받은 큰 위로는 그냥 내 생긴대로 내 존재로 괜찮다는 메세지였다. 그냥 나로 사는것만으도 충분하다. 우울증으로 힘든 시간에는 납작엎드려 하루하루 생존하는 것만으로도 그게 할 일이고, 자신감이 떨어져 직장에 다니는 것이 두려운 사람에게는 그냥 다니는 것만으로도 큰 일을 한 셈이다. 직장생활에서의 스트레슥와 관계가 힘들어 그만둔 사람에게는 일단 휴식만으로도 충분하고 컨디셔닝을 올리기 위해 여행도 하고 맛있는 것도 먹어주고 때론 아무것도 안하고 하루하루 보내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것이다.
우리 다들 너무 애쓰지 말고 살았으면 좋겠다. 너무 애쓰지 말고 사는 사람들이 많아져야 끊임없이 자기를 증명해야 인정받는 세상도 조금은 달라질 것이다. 휴식조차 스펙이 될만한 휴식을 취해야 한다고 믿는 청춘들에게 증명하지 않아도 괜찮다고 말해주고 싶다. 왜 우리는 끊임없이 성장해야한다고 스스로를 몰아부칠까. 성장 좀 안하면 어떤가. 때론 뒤쳐지는 거 같으면 어떨까. 그럴때도 있는거지. 느린 사람은 느린 사람대로 살고, 아픈 사람은 아픈 상태를 감당하며 사는 법을 적극적으로 찾으며 살면 되고, 컴플렉스가 많은 사람은 그 컴플렉스를 이해하는 공부에 집중하면 되는 것이다.
크론병에 대한 에세이도 거의 없는 현실에서 크론병을 가지고 사는 삶을 구체적으로 기록해 주시는 고간호사 작가님이 나는 참 멋지다고 생각하고 의미있는 일을 하고 있다고 믿는다. 이런 책들이 자꾸 나와야 소외되는 사람들이 적어지는 세상이 된다고 나는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