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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울증 가이드북(오지은, 반유화)

우울증 이야기

by 박조건형

우울증 가이드북(오지은, 반유화)


음악을 하고 글을 쓰는 오지은 작가님은 우울증 11년차로서 자신의 경험을 들려주신다. 우울증과 관련된 질문들을 자주 받다보니 어느날 요가를 하다가 주변에서 자주 받았던 질문들에 대해서 상세하게 글을 써봐야 겠다고 마음 먹는다.


우울감과 다르게 우울증은 일상에 큰 지장이 있어 그 힘듦이 오래가는 경우를 말한다. 내가 우울증인지, 정신과 치료를 받아야할지, 개인상담을 받아봐야 할지 고민하는 이들에게 좋은 가이드북이 되어줄 수 있는 책이다. 나도 약을 장기복용 해보긴 했지만, 그 효용을 잘 느끼지 못했고, 단약도 얼떨 결에 하게 된 경우라 정신과 약복용에 대해서는 드릴 말이 많이 없는 편인데, 정신과 약과 관련해서 상세한 이야기를 들려주신다. 네개의 파트로 구성이 되어 있고 그 파트 말미에는 전문의로서 반유화 선생님의 추가 답변이 담겨 있고 마지막엔 두 분 간의 대담이 실려 있다. 우울증을 11년동안 겪고 있는 사람으로서 전문의에게 궁금한 점을 구체적으로 묻고 답변을 자세히 해 주셔서 좋았다. 반유화 선생님은 여성주의 시각을 바탕으로(여성학도 전공하셨다) 개인상담을 하시는 분이라 <언니의 상담실><여자들을 위한 심리학>을 너무 좋게 읽었던지라 신뢰가 갔다.


나는 다행스럽게도 29년 우울증 기간동안 수면장애는 없었는데, 오지은 작가님은 늘 수면제를 복용하고 지내신다고 했다. 우울증으로 약을 장기복용하고 있는 분이라면 이 약을 평생 복용해야하는 것 아닐까하는 걱정과 회의감이 들게 마련인데 두 작가님이 그에 대해 상세하고 친절한 설명을 들려주시고 있다. 꼭 평생 먹는건 아니지만 평생 먹어도 괜찮고 안전하다는 말씀을 해 주셨다.


이 책에서도 개인상담 받은 경험을 해주시는데 우울증이 있는 분들에겐 나는 개인상담을 적극적으로 권하는 편이다. 오지은 작가님은 예술인으로 받을 수 있는 무료 상담과 정부에서 지원해주는 제도를 이용해 총 20회기 정도(10회기, 8회기)만 상담을 받으신것 같다. 나는 유료 상담으로 총 3년 정도 개인상담을 받았는데, 나의 우울증을 이해하고 그것을 어떤 방식으로 해석하고 바라봐야할지 내 관점을 가지는데 큰 도움이 되었다. 지금은 내가 나에게 개인상담자가 되어 일상 중 일어나는 힘든 감정들을 살펴보고 토닥이고 수용하고 잘 대화하고 있다.


오지은 작가님이 줄어든 자신의 능력을 받아들이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씀하신 점이 크게 와닿았다. 우울증이 심해지고 심리적으로 무기력해지면 자꾸 과거의 가장 빛났던 나와 지금의 나를 비교하게 된다. 기준점은 항상 현재의 내가 되어야 한다. 그게 좋든 나쁘든 상관하지 말고 그냥 조금씩 더 낫게 만드는 길을 생각하면 된다. 무리하지 않는 선에서, 실현 가능한 만큼.


112p - 첫번째로 드는 마음은 어쩔 수 없어요. 그건 이제까지 살아온 방식이 쌓인 그 사람의 특징 같은 것입니다. 그러니깐 그건 떠오르게 둔 다음 옆으로 치워버리면 됩니다.( 부정적인 생각만 들고 너무 무기력해지면 내가 한심하게 느껴지고 쓰레기처럼 느껴지던 때가 있었다. 그런데 그런 감정이 드는 것은 오랫동안 형성 된 기질이기에 그 감정이 드는 것은 막을수가 없다. 다만, 그때 ‘내가 또 쓰레기처럼 느껴지는 구나’ 라고 알아차리는 것부터가 시작이다. 상담을 받을 때는 상담가와 함께 그 생각을 합리적인 생각으로 바꾸는 작업을 해보는데 그게 인지행동치료적 접근인 것이다.)


130~131p - 상담치료는 나는 가만히 있는 상태에서 누군가 내 마음을 대신 읽어주는 것이 아니라 나와 전문가가 ‘함께’ 지하실에 들어가는 과정이니까요.(나 혼자 나의 지하실을 직면할 힘이 없고 방법을 모르기 때문에 전문가와 함께 지하실에 들어가는 것이다. 상담의 엔딩은 우울증의 극복이 아니라 나혼자서도 지하실을 적극적으로 탐험하고 직면할 수 있을 때이다.)


163p - 우울증은 상당히 막막해서 바다 위에 둥둥 떠 있는 기분이 들때가 있다. ‘널빤지 하나에 의존한 표류’에 가깝다. 파도가 크면 큰 대로 작으면 작은대로 계속 떠 있어야 한다. 해안에 도착했다 싶다가도 다시 바다 한가운데로 돌아간다. 우울증 환자에게 자주 일어나는 일이다.(그 막막함 때문에 세상 사람달은 다 잘 사는 것 같은데 나만 이렇게 힘들다고 느껴지고 고립감을 느낀다. 그러니 자꾸 주변에 나의 막막함을 이야기하고 알리고 날 응원해주는 동료들을 확보할 필요가 있다. 우울증은 혼자서는 극복하기 힘든 질병이다)


202p - 그렇죠. 변화가 없는 시간을 버티는 것이 정말 쉽지 않으니까요. (우울증은 형성된 시간만큼 곱절로 노력을 해야 조금은 괜찮아지는 질병이 아닌가 싶다. 슬프고 씁슬하지만 그런 각오를 해야 우울증이라는 병에 지치지 않고 살아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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