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리뷰
죽이고 싶은 엄마에게(한시영 에세이)
27년간 알콜중독증이 있는 엄마의 딸인 저자가 시간이 흘러 엄마에 대해 회상하며 적은 글이다. 나름 좋은 직장에 다니고 두 아이의 엄마로서 남편과 잘 지내면서도 시간이 흘러 엄마에 대한 아픈 기억을 궂이 떠올려 글을 쓴 이유는 무엇일까. ‘이영숙 죽어라!!’라고 다이어리에 쓸정도로 미워하는 마음도 있었지만, 엄마가 돌봐주었던 좋았던 그 시간이 함께 존재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딸의 결혼식에 온다고 했지만, 결국 술을 먹느라 오지 못한 엄마. 10년간 정신병동에 들락날락했던 엄마. 애증의 존재였을 것이다. 물론 물리적, 정신적 폭력이 심했다면 엄마를 아예 매몰차게 잊고 지냈겠지만, 자신을 살뜰이 챙기던 그 마음들은 진실이었기에 엄마를 복합적으로 이해해 보려고 했다.
남편은 양육비도 주지 않고 어디 가서 무얼하며 사는지 알수 없고, 여자 혼자 자녀를 키우는 일이 녹녹치 않고 힘들었을 것이다. 자신을 구속해서 키웠던 엄마(저자에겐 외할머니)와의 경험도 힘들었을 것이다. 술을 마시는 여자에 대한 눈빛(편견)도 많이 힘들었을 것이다. 저자의 어머니는 매번 새롭게 잘 하려고 애썼다. 그간의 잘못을 만회하기라도 하려는 듯 더 크게 말하고 과장되게 행동했을 것이다. 엄마는 안타깝게도 지속하고 잘 마무리하는 힘이 없었다. 엄마는 알콜중독자였으니깐. 이 세상을 살아가는 법을 제대로 배워본 적이 없는 사람이기에 술로 매번 도피를 했고 세상 사는 것이 서툰 엄마에겐 그 도피가 너무나도 매혹적이었을 것이다.
나도 어린시절과 청소년 시절 세상을 살아가는 법을 누구에게도 제대로 배우지 못했다. 작은 성취를 반복하고 작은 시련에서 일어나는 법을 경험하면서 이 세상을 어떻게 살아가는지 익혔어야 하는데, 그걸 배워본적이 없어서 20살 대학을 갔을때 모든 것이 다 망막하고 어렵게 느껴졌었던 것이다. 성취의 경험들이 없다보니 우울증에서 빠져나오면 매번 잘하려고 더 애쓰고 노력하고 늘 긴장해 있었다. 그러다가 무엇이 되었든 사소한 걸림돌에 와르르 무너져 내 방으로 숨어버리는 것의 반복이었다. 29년동안 수십번 반복을 했지만, 그 오르내리는 반복속에서 우울증을 가지고 살 방법을 나 나름대로 좌충우돌하며 익혀나갔다. 유년 시절, 청소년 시절 익혔어야 할 경험을 20대, 30대, 40대 동안 오랜 시간동안 나만의 방법으로 천천히 익혀 왔다. 그래서 무언가 오래하는 것이 내게 큰 의미가 있는 행동이 된 것이다.
저자의 어머니가 잘 하고 싶었지만, 매번 술의 유혹에 넘어갔던 그 마음이 충분히 헤아려져서 참 슬펐다. 자기 딸과 손녀가 이쁘지 않은 어머니가 어디있겠는가. 사랑스럽지만 그 앞에서 늘 미안하고 당당하지 못하던 그 마음. 알콜중독 세미나에도 저자와 함께 참여하지만, 허기가 지면 알콜의 유혹이 더 커지니 밥을 챙겨 먹으라는 딸의 말을 뒤로하고 짐을 가지러 간다고 떠난 모습이 마지막이 되었고, 알콜중독으로 인한 쇼킹으로 돌아가셨다는 연락을 경찰로부터 받는다.
책의 마지막은 에필로그 대신에 ‘엄마의 사과편지’로 맺는다. 이브 엔슬러의 <아버지의 사과 편지>를 모티브로 엄마가 사과 편지를 쓴 것처럼 저자가 쓴 것이다.
나는 아버지와는 연락을 끊고 살고 있다. 아주 가끔 연락이 문자나 전화로 오지만 회신하지 않는다. 아버지와의 어떤 좋았던 추억이 많았다면 모를까 나는 아버지의 기억이 별로 없다. 내가 10살까지는 원양어선을 오래 타셔서 함께 보낸 시간이 총 몇달이 되지 않는다. 그 뒤로는 대순진리회라는 종교때문에 가족과 불화해서 아버지에 대한 어떤 상 자체가 없다. 두번정도 아버지를 이해하고 아버지와 가까워지려고 시도했던 적은 있지만, 신뢰가 가지 않는 사람이 좋아지지는 않아서 관계를 개선하려는 내 마음을 그냥 접어 버렸다.
애증의 관계인 부모를 이해하려는 그 노력과 마음들이 느껴져서 좋았다. 두 아이를 키우면서 짬을 내서 책을 읽고 글쓰기 작업을 하는 것은 정말 쉽지 않은 일임을 안다. 그래서, 그 귀한 노력이 너무 너무 고맙다. 어머니에 대해서, 어머니에 대한 감정에 대해 입체적으로 이해하려는 노력이 내게 큰 위로가 되었다. 참 감사한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