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후기
오춘실의 사계절(김효선 에세이)
내일 후기를 써야지 하고 잠을 청했는데, 이불속에서 온통 <오춘실의 사계절>이 떠올라서 불을 켜고 이불을 걷고 책상 앞에 앉았다. 2023년 내게 최고의 책은 <에이징 솔로>였다. 그 책 덕분에 울산 비건빵집겸 책방 자크르를 알게 되었다. 2024년은 기억이 나지 않는데, 조승리 작가님의 에세이 책이 내게 특별했던거 같다. 2025년이 아직 두달 반이 남았지만, <오춘실의 사계절>을 올해 내게 최고의 책으로 선정하고 싶다.
책을 읽으며 너무 많이 눈물이 났다. 두 모녀가 사랑스러워서. 김효선 작가님이 다치고 굳고 유연하지 못하고 배움이 느리고 어깨가 뻣뻣하고 발차기가 힘이 약한 엄마를 따뜻하게 안아주는 그 말과 시선 때문이었다. 초등학교 이후부터 노동시장에 뛰어들어 50년을 노동하며 살아온 오춘실 선생님이 이제서야 수영을 하며 자유로워지고 밝아지고 호탕하게 웃는 장면들을 볼때 마다 눈물이 났다. 눈물이 자꾸 나서 독서 진도가 나아가지 못했다. 조금 읽고 울고, 눈물 닦고 또 좀 읽으니 눈물이 나고.
자녀들의 부모에 대한 인터뷰책이나 인생구술사 책에 특별히 흥미가 있진 않다. 그 시절을 어디 쉽게 살아온 분이 있을까, 다들 힘겨웠고 가난했고 부당한 일들이 많았으니깐. 그런데, 이 책은 편집자가 전략적으로 글을 배치한 것인지 작가님의 생각인지는 몰라도 책의 시작이 수영장에서의 모녀의 이야기이고 글을 읽다보니 금방 오춘실 선생님과 김효선 작가의 매력이 빠져 버렸다. 내가 아는 사람, 내가 좋아하는 사람의 역사는 내게도 특별해 지기 때문에 그 뒤에 중간중간 등장하는 어머님의 삶의 이야기에도 깊이 몰입이 되었다. 친한 친구의 어머님 이야기를 듣는 것처럼. 도박에 빠지고 자기만의 기술에 대한 자신감 때문에 일을 금방 그만두고 오래 쉬었던 아버지 덕에 어머님은 계속 일을 할 수 밖에 없었다. 초등학교 이후부터 노동일을 하셔서 중고교 시절 익혀야 하는 사람들속에서의 관계 맺는 법에 서툰 어머니는 사람이 많은 직장을 힘들어했고, 잘 넘어지고 자주 다쳐서 직장을 오래 다니지 못하셨다. 그래도 늘 직장을 찾아 노동하셨다. 그나마 혼자 하는 일이 몸은 힘들어도 마음이 편해서 청소일을 20년 넘게 하셨다.
김효선 작가님도 한때 매일 술을 달고 살고 잠을 못자고, 병원에서 적응 장애라는 우울증 진단도 받고, 이상한 관리자를 만나 직장에서 힘든 시간을 보낸적이 있다. 자녀들은 20살이 되면 다들 부모 곁을 떠나고 싶어한다. 갓 청춘이 되어서는 신나게 세상을 즐기지만, 세상이 그렇게 호락호락 하지 않다는 걸 알게 되면 그제야 부모의 삶이 눈에 들어오기도 하고, 부모와 같이 다시 살게 되기도 한다. 특별한 가족사 덕에 각자의 우울증으로 힘들어하던 엄마, 여동생, 나는 최근에 되어서야 가까워지고 떨어져 있는 동안 몰랐던 서로의 삶에 대해서 알게되고 이야기도 깊이 할 수 있는 가족이 되었다. 아버지때문에 늘 생계를 책임져야 했던 어머님의 힘듦에 마음 아팠다면 김효선 작가님도 아버지를 미워할법도 한데, 40대가 되어서 그런지 아버지 또한 자기 나름의 어려움속에서 살아온 사연이 있음을 이해하는 나이가 되어 그 너그러움이 참 따스해서 좋았다.
책을 읽는 내내 두 모녀의 이야기가 나를 따스하게 어루만져 주는 느낌이 들었다. 엄마의 어깨는 다시는 전처럼 유연해지지 않을 것이고, 엄마의 다리에서는 근육이 빠지게 될 것이지만 그것이 슬프지 않다라는 작가님의 이야기가 29년동안 힘들었던 우울증의 삶을 응원해 주는 것 같았다. 최근에는 인지증 진단을 받아 모녀가 심각해졌지만, 옆레인의 작가님의 수영 친구가 건너와서 어머님을 꼬옥 안아주던 장면은 우리가 사람들과 함께 서로 위로하고 안아주고 함께 웃고 슬픔은 나누며 살아가야 한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확인시켜주는 장면이었다.
평생을 종종거리며 살아온 엄마에게도 낭비하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말씀이 좋았다. 엄마와 목표 없이 낭비하는 시간을 보내고 싶고 물잡는 기쁨을 나누고 싶다는 말씀이 좋았다. 29년의 우울증의 시간동안 너무 많은 시간을 누워서 잠으로만 보냈던 그 시간이 낭비처럼 느껴져 평범한 삶에서 너무 뒤쳐진 낙오자 같다고 생각한 적이 길었다. 우울증 없이 5년을 지내면서 그 낭비한 시간 만큼 앞으로 더 시간을 알차게 쓰고 열심히 살아야 겠다는 생각은 내게 없다. 우리는 낭비하며 의미없는 시간을 우리에게 선물해 줄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우린 모두 너무 치열하게 열심히 사니깐. 내가 열심히 해봐야 뭐 얼마나 대단한 걸 하고, 얼마나 많은 걸 할 수 있겠는가. 그냥 내가 할수 있는 걸 소박하게 집중해서 즐겁게 하면 될 뿐이다. 우울증 때문에 대학을 중퇴했고 탱고 배우는 것도 6개월 밖에 못했고, 누드모델도 6개월 밖에 못했고, 무언가를 오래 해 본 경험이 없는 나는 그래서 무언가를 오래 하는게 중요한 사람이 되었고 무엇을 하든 많은 것을 하기보다는 한 두가지를 꾸준하게 묵묵하게 그런데 즐겁게 오래하는 사람이 되었다. 그게 또 내 장점이라고 말해주는 사람들이 많다.
6개월 넘게 그림을 그리지 않다가 이 책을 읽으니 오랜만에 모녀를 그리고 싶었고 그림 그리는 시간이 즐거웠다. 나는 인물 그리는 걸 좋아하고, 그의 인생이나 삶을 생각하며 그린다. 그 디테일이 그림에 묻어나려고 애쓰며 그린다. 오춘실 선생님은 아직 자유형을 마스터 하지는 못하셨지만, 천천히 천천히, 동네 목욕탕 가듯이 쉬엄쉬엄 오래 즐겁게 수영을 즐기셨으면 좋겠다. 두 분의 수영이야기를 읽으니 참 감사한 마음이 든다. 나를 수용해주고 꼬옥 안아주고 응원해 줘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