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후기
나의 화원(글 그림 박지원)
몇일 전에 동백작은학교를 다니는 다올의 책이 택배로 도착했다. 동백작은학교는 제주에 있는 아주 작은 대안학교이다. 내가 이 학교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이임주 교장선생님이 쓰신 <국어, 수학, 페미니즘>이라는 책을 통해서였다. 페미니즘 과목이 있어 매주 페미니즘을 공부하는 학생들이라니…..너무 반갑고 기뻐서 제주에 갔을때 학교도 방문해 보고, 내가 읽었던 페미니즘 책들을 학교로 기증하기도 했다. 교사들 뿐만 아니라 학생들도 나의 좋은 페미니스트 동료들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그들의 삶에 관심이 가고 그들이 배우는 것들이 궁금하고 어떻게 성장해 나갈지 기대가 된다. 그래서 정기후원도 하고 있다.
동백에는 돌담과정과 너머과정이 있는데, <나의 화원>은 너머과정에서 하는 자서전 쓰기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완성된 결과물이자 책이다. 다올은 오랫동안 숨겨오고 타인들에게 이야기 하지 않았던 이야기를 이 책에서 밝힌다. 어린시절 양육자의 두번의 이혼은 큰 혼란과 상처로 자리잡을 수 밖에 없다. 두명의 엄마가 있고, 두번의 이혼이 있었다. 그래서, 다올은 어릴때부터 ”비정상적이다“라는 시선을 자주 느꼈다고 한다.
다올은 밝고 따뜻한 친구이다. 그렇지만, 어린시절 겪었던 불안정 애착의 경험때문에 타인들에게 싫은 소리 하기를 힘들어하고 늘 꾹참고 살아왔다. 자신의 행복과 타인의 행복을 적극적으로 추구하기도 하지만 그래서 그 관계가 깨지거나 마찰이 생길때 많이 힘들어 하는 것 같다. 그러나 이제는 그렇게 감정을 꾹꾹 눌러두지만 않고 적당한 방식으로 표현하려고 노력을 한다. 숨기고 싶었던 이 이야기도 자신이 사랑하는 교사와 아이들에게 이야기를 해 보는데, 반응들이 걱정만큼 특별하지 않았다. 충분히 이해하고 공감을 해주거나 자신의 아픈 이야기를 털어 놓는 친구도 있었고, 크게 신경을 쓰지 않는 친구도 있었다.
내가 우울증에 대해서 외부인에게 털어 놓은 것이 20대 중반이었다. 누구는 거리감을 두고 부담스러워 했지만, 누구는 우울증이 어떤병인지 이해하지 못하면서도 옆에 있어주고 내게 뭔가 도움을 주려고 애썼다. 그때의 경험으로 인해 자신의 힘듦을 이야기했을때 떠날 사람은 떠나지만 남을 사람은 또 남는다는 걸 알았다. 49년의 인생중 29년이 우울증의 시간이었으니 나를 설명하기 위해서 초면에도 타인들에게 내 우울증을 이야기한 특수성은 다올과는 다르지만, 다올 옆에 있어주는 사람은 분명있다는 걸 이야기 하고 싶었다.
아픈 이야기도 털어 놓았지만, 유년기 시절의 행복하고 즐거웠던 시간에 대한 묘사도 많다. 나는 초등학교 4학년 전에는 기억도 나지 않는데, 어떻게 그 시간들을 다 기억하나 싶어 신기하긴 하지만, 성격이 밝고 따뜻한 친구라 어느 곳에든 잘 적응하고 어울렸다. 106페이지에 보면 다올이 사랑하는 것들이 적혀 있다. 다올은 일기장에 자신이 사랑하는 것을 차곡차곡 적어 두는 것을 좋아한다고 했다. 다올이 사랑하는 것들을 읽으며 내 마음도 흐믓해졌다. 자신이 사랑하는 것을 이렇게 구체적으로 인지하고 기록해두는 사람이라는게 참 멋져보였다. 나도 지인들에게 나의 장점 세가지를 가끔 물어보고 얻은 답들을 내 블로그에 계속 누적해서 기록해두고 있다. 내가 취약해졌을때 상황이 힘들어 마음이 많이 다운되었을때 타인들이 보는 나의 장점 목록을 한번씩 보곤한다. 아, 나에게 이런 장점이 있었지, 나는 이걸 잘하지, 그러니 나를 너무 낮추고 부정적으로만 보지 말자고 새로 마음 먹곤한다.
98페이지에 보면 다올이 ”나랑 친구할 사람 구합니다~“ 라고 적었는데, ”저요!!“ 하고 손들고 싶다. 최근에 김달님 작가님의 <뜻밖의 우정>을 보면 삼십대 중반의 작가님과 70대 선생님간에 우정의 관계가 가능하다는 걸 배우게 되는데, 다올과 나도 그런 우정의 관계가 가능하지 않을까 싶다.
1년동안 자서전을 쓰는 과정이 쉽지는 않았을 것 같다. 힘들었을 것이다. 그래도 성실히 끝까지 완주해서 이렇게 책으로 엮어낸 것을 진심으로 축하하고 싶다. 2022년에 뮤지컬 체험 학습을 하고 2023년에는 제주 4.3을 공부하고 김홍모 작가 원작 만화책 <빗창>을 뮤지컬로 무대에 올렸다고 했다. <빗창>에서 련화 역할을 맡았다고. 학생들이 펼치는 <빗창>이라는 작품도 보고 싶어졌다.
다올이 너머과정을 잘 졸업하고 어떤 길을 걸어갈지 궁금하다. 동백에서 좋은 교사들과 친구들을 만나 신나고 재미있게 주체적인 교육을 받는 모습이 참 좋아보인다. 동백을 졸업하고 세상에 나아가면 동백과는 달리 친절하지 않은 세상, 친절하지 않은 시스템을 만날텐데 그 어려움의 시간들을 자기만의 속도로 잘 헤쳐나가길 응원하고 싶다. 아직 졸업까지는 시간이 남았으니 먼 미래까지 응원하는 건 오바인 것 같고. 그냥 지금처럼 하루하루 다올답게 살아가며 행복하길 빌어본다. 첫 책 진심으로 축하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