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리뷰
열여덟,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글: 서로)
서로(김도하)의 연주를 처음 봤던 건 제주도에서 있었던 <국어, 수학, 페미니즘>북토크 자리에서였다. 이임주 교장선생님은 <국어, 수학, 페미니즘> 북토크를 하면 일정이 맞는 한 가능하면 동백작은학교 교사,학생들과 함께 움직이셨다. <국어, 수학, 페미니즘>은 교장 자신 혼자만 쓴게 아니라는 생각에서였다. 서로는 북토크를 찾아와준 청중앞에서 기타를 치며 노래를 불러주었다.그때 서로의 연주와 노래는 조용하고 평화로웠던 기억이 난다.
동백작은학교 과정은 돌담과정과 너머과정이 있고, 너머과정에는 자서전쓰기와 인터뷰작업이 있는데, 서로는 싱어송라이터이자 그 꿈을 쫓고 있기에 음악을 하는 사람들을 만나서 인터뷰작업을 하기로 했다. 서로가 만난 사람은 세팀이었다. 여유와 설빈은 내가 잘 모르는 음악가라 서로의 인터뷰글을 읽으며 유튜브에서 여유와 설빈의 음악을 검색해서 들었다. 혼성 포크 듀오팀이다. 서로는 음악이라는 수단을 통해 본인뿐만 아니라 타인들에게 기쁨과 평화를 선물하는 삶을 사는 그들을 닮고 싶어 했다. 14살때 임은주 교장선생님을 통해 여유와 설빈을 알게 되었다. 이 인터뷰집이 마음에 들었던건 단순히 인터뷰를 해서 녹취를 풀어 그것을 옮기기만 한 책이 아니라, 인터뷰 질문들에 대해서 따로 자기 생각을 매번 정리를 해두었다는 것이다. 그들에게 영감은 어떻게 얻는지 물었더니 그냥 살아가면서 쌓이는 이야기라고 말씀해 주신다. 내 일상과 삶의 모든 것들이 이야기꺼리라고 생각하고 늘 블루투스 키보드를 챙겨다니며 틈만 나면 글과 그림으로 일상을 기록하는 내 모습도 비슷하다 느꼈다.
롤모델이 없냐고 질문을 했는데, 한분은 특별히 없다고 했고, 한분은 너무나도 많다고 했다. 다만 그들을 그대로 닮는다기보다 자신의 것으로 소화해서 다른 걸음으로 자신만의 집을 지어가려 하신다고 답했다. 서로는 15살때 음악을 하고 싶다고 생각했고 올해 서로의 나이 18살이다. 늘 타인을 쫓으려고만 했는데, 자신만의 속도로 자기답게 음악을 해야겠다고 마음먹는다. 서로를 잘 알지는 못하지만(2024년 가을과 겨울 동백소식지에는 서로가 INTP라고 써 있다. 서로가 궁금해 하진 않겠지만 나는 ISFJ) 내향인으로서 무언가를 시작하기까지 오래 걸리는 사람이라고 말한다.(그런데 오랜 생각끝에 마음을 먹으면 묵묵히 밀고 나가는 사람이지 않을까. 마음먹기까지 오래 걸려서 그렇지) 새로움과 도전에 지레 겁먹는 스타일이라고 한다. 그래서 ‘그래도 한번 해보자’가 잘 안되었다 한다. 내 정체성 중에 ‘프로딴짓러’가 있다. 딴짓을 자꾸 많이 해본다. 그리고 뭔가 좋은게 있으면 바로 해보는 편이다. 그게 내 장점중의 하나이다. 그 시도가 잘 안되고 반응이 없더라도 잘 안되는 경험을 ’얻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잘 안되면서 얻은 부정적인 감정을 내가 스스로 잘 살펴주려고 노력하면 된다. 뭔가 새롭게 해보는게 쉽지는 않겠지만 그래도 자꾸 시도해보고 몸으로 직접 부딪히는 서로가 되는게 아마 오랜시간을 두고 해결해야할 과제이지 않을까 싶다.
음악을 하다보면 노래가 잘 만들어지지 않을 때도 있을 것이고 처음과 같은 열정이 옅어질때도 있을것인데, 그 질문에 여유와 설빈은 노래를 만드는게 잘 되지 않는 게 자연스러울 수 있다는 이야기를 해주고 그 대답에 서로도 마음을 편하게 내려 놓는다. 나또한 우울증 29년 경험자. 우울증이 있는 사람이 약도 먹고 상담도 받으며 열심히 노력을 하지만, 어느날 갑자기 상태가 안좋아지기도 하고 예전처럼 무기력해지는 사람들을 자주 보는데 우울증이라는 병이 원래 그렇게 질기고 질긴, 쉽게 괜찮아지는 병이 아니라는걸 알기에 그들에게 그런 모습이 자연스러운거라고 말하곤 한다. 이상한 일이 아니다. 마음은 많이 속상하겠지만, 일단은 다시 무기력과 우울증에서 빠져나가는걸 목표로 잡고 납작하게 엎드려 이 시간을 지나가자고 말하곤 했다.
권나무와 하림은 그래도 이름도 들어보고 음악이나 영상도 예전에 찾아 들어봤던 사람이었다. 권나무는 현재 초등학교교사이기도 하고 싱어송라이터이다. 권나무는 자신의 색깔을 어떻게 만들어가냐는 질문에 계속 무언가를 찾아가는 과정일뿐이라고 답한다. 위에서 여유와 설빈이 말했듯이 슬럼프 또한 이상한게 아니라 당연하고 자연스럽게 나타나는 현상이라고 말한다. 한가지를 오랫동안 묵묵히 길을 걸어와서 그럴까 여유와 설빈, 권나무, 하림의 하는 이야기가 내가 생각하는 지점과 비슷한게 참 많았다. 많은 이들이 터닝포인트를 묻곤 하는데, 매순간 생각에 머물지 않고 행동으로 무언가를 하게 되면 그게 터닝포인트가 될수 있다고 했다. 권나무는 EBS 공감에 출현하게 되면서 인지도를 얻게 되었는데 거꾸로 거슬러 올라가면 그가 늘 노래를 만들고 사람들앞에서 노래를 부르던 사람이었기에 신청을 하고 루키상에 뽑혔을때 그 무대에서 바로 노래를 부를 수 있었던 것이다. 또 거슬러 올라가면 기타를 가지고 즐겁게 음악을 만들기 시작했기에 가능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니 지금 바로 행동하면 그게 터닝포인트가 될 수 있다라는걸 많은 이들이 알았으면 좋겠다. 생각에만 머물지 않고 바로 해보기.
예술하는 사람은 늘 경제적인 부분이 걱정일 것이다. 권나무도 여러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초등학교교사일을 병행하는 것이 안정적으로 음악활동을 오래하는 조건이 되고 있는게 아닐까. 경제적인게 걱정이면 늘 부업을 하며 음악을 하면 되고, 부업을 하다보니 음악에 소홀해지는 것 같으면 음악으로 돈을 버는 쪽으로 방향을 잡으면 된다(대중성있는 방향으로 음악을 하라는 말이기도 하지만 어떤 일이든 전업예술가로 사는 길은 원래 극히 드물다) 경제적인 불안이 늘 발목을 잡고 마음이 쓰이면 생계 일을 전업으로 하고 음악을 취미로 하는 것도 방법일 것이다. 취미로 음악하는 시간을 많이 가지고 싶으면 생계일의 시간을 줄이거나 최소한의 수입의 일에 맞추는 것도 방법일 것이다.
49 페이지에 보면 ‘노래가 세상을 바꿀 수 있을까?’ 라는 서로의 질문이 있고 하림은 그에 맞는 대답을 들려준다. 하림의 대답을 읽기 전에 나는 이렇게 메모를 해뒀다. 음악으로 꼭 세상을 바꿔야 할까? 꼭 대단한걸 해야할까. 음악을 하며 내가 즐겁고 그 음악이 누군가를 기쁘게 하고 평화를 주는 것도 무언가 영향을 주는게 아닐까. 즐거운 마음으로 오래하면 실력은 조금씩 나아지게 마련이고 그렇게 오래하다보면 세상에 여러가지 영향을 미치는 기회들도 생길꺼라고 생각한다. 하림은 워낙 사회적인 잇슈에 대한 관심이 많고 그것을 소재로 음악만드는 작업을 많이 했던 사람이기에 그런 영향을 미치는 사람이 된 것 같다.
2021년 작은 음악인문학콘서트에서 하림을 처음 만났다고 한다. 하림은 ‘정신적으로 고양시키고, 마음을 좀 풍요롭게 해주고, 좀 더 깊이 있는 생각을 하게 만드는 것이 예술의 역할이자 목적인데’ 라고 말하며 음악과 음악산업을 구분하는걸 여러번 강조한다. 음악산업이나 문화산업은 태생적으로 승자독식의 산업이고 실제보다 화려해 보이고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갖고 있는 음악을 오염시키기 쉽다고 말한다. 그냥 만들고 부르고 나누는 그 세개의 기쁨이 가장 기본적인 것이자 그 세개에 충실할때 가장 음악답다고 말했고 그것을 지키는게 굉장히 어려운 숙제라고 했다.
책 후반에는 ‘그들의 발자취를 따라서’ 꼭지가 있다. 영화 좋아하는 사람들이 그 영화 촬영지를 직접 찾아가서 영화의 여운을 더 깊게 즐기는 것처럼 하림이 노래했던 버스키의 성지 홍대 수노래방 앞에 가본다. 타인들에게는 평범한 곳이겠지만 서로에게는 그 장소가 특별할 것이다. 하림이 사람들앞에서 떨리는 마음으로 즐겁게 음악을 했을 그 마음을 아마 잠시 느껴봤을 것이다. 여유와 설빈의 노래 “개미마을”의 무대인 홍제동 개미마을도 갔다. 권나무 2집 앨범에 수록된 ‘너를 찾아서’를 만든 서천 선도리에 위치한 이름 모를(지도에 검색해도 나오지 않았다고 한다) 해변에도 가본다.
음악을 하는 사람으로서 음악을 하며 가지는 생각과 고민, 미래에 대한 불안들을 선배음악인들을 섭외하고 인터뷰하러 직접 만나러 가는 것은 큰 행동이다. 큰 딴짓이다. 이런방식의 자신에 대한 탐구작업을 지금의 청소년들이 충분히 할 수 있는 환경이라면 그들이 이렇게까지 불안해하지는 않을 것 같다. 동백작은학교라는 대안학교의 장점이자 특수성이지만 많은 청소년들이 자신이 가고 싶어하는 대학과 학과에 가서 직접 인터뷰도 해보고(대학을 가지 않는 선택지도 많이 고려해봤으면 좋겠다) 선배들에게 이야기를 들어봤으면 좋겠다. 나또한 29년 전에 점수 맞춰 대학과 과를 선택했었고 어느 과를 목표로 하더라도 그곳에서 무엇을 배우고 나랑 잘맞을지에 대한 탐구는 없이 대학에 들어가기에 많은 대학생들이 방황을 하거나 대학입학 하자마자 미래에 대한 불안때문에 취업을 위해 스펙을 쌓으며 끊임없이 자기계발의 공부를 한다. 자기 탐구는 늘 뒷전인 것이 그게 과연 그들만의 책임일까. 우리 어른들이 그런 사회를 만들었다고 생각한다. 자기탐구로 시선을 돌리면 그건 대학에 가서 하라고 말하지 않았던가. 연애 또한 타인과 사람에 대한 큰 공부(갈등과 이별 또한)일 수 있는데 입시공부에 방해된다는 이유로 대학입학후로 유보시키게 만든 건 우리 어른들의 책임이다. 1년간의 인터뷰작업과 책작업을 통해 서로는 조금은 더 단단한 싱어송라이터가 되었을 것 같다. 음악을 만들고 부르고 그 과정을 즐기고 나누는 그 본질을 잊지 않고 즐겁게 오래 음악을 했으면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