되게 좋았는데 또 가고 싶지는 않은 도시
포르투에 여행 갔던 것이 벌써 한 달 전이었다. 일하느라 바쁘고 다른 글들을 쓰느라 바빠서 마지막 여행 기록이 늦어졌다.
포르투에서 셋째 날에는 시장 Mercado Ferreira Borges을 가봤다. 항해왕자 엔히크 기념상 Monumento ao Infante Dom Henrique이 있는 엔히크 왕자 공원 Jardim do Infante Dom Henrique 뒤쪽에 시장이 있다.
이 시장 건물은 19세기 후반 포르투 산업시대의 철골 시장 건축을 대표하는 사례라 한다.
안에 들어가 보니 밖에서 보이는 철제 구조가 이어진다. 층고가 높군, 여기는 아직 크리스마스네, 시장이라기엔 뭘 많이 팔진 않는군, 등의 인상을 받았다.
공원을 끼고 시장 옆에는 증권거래소 궁전 Palácio da Bolsa이 있다. 여기는 시간대별로 그룹 투어로만 들어갈 수 있다. 앉아서 기다릴만한 곳이 따로 없으니 미리 티켓팅을 해놓고 시간 맞춰서 가시길 바란다.
건물 안에 들어가면 투어 시작하는 곳이 로비인데 여기가 좀 멋졌다.
여기저기 다양한 공간들이 다 멋졌지만 제일 인상적이었던 곳은 아랍의 방이었다. 이 건물에서 가장 유명한 공간이라 한다. 금박의 아라베스크 Arabesque 장식 (끝없이 이어지는 식물 덩굴, 잎, 꽃 형태의 반복 패턴)이 아주 아름답다. 이슬람 궁전 장식을 모방했다 한다.
복도와 계단도 인상 깊었다. 부와 권력의 냄새가 난다.
증권거래소 궁전에서 길건너에 작은 교회 Parish Church of St. Nicholas가 있어서 들어가 봤다.
교회에 들어가서 조용하니 앉아 경건한 마음을 가져보려고 하는 찰나 갑자기 아저씨 한 명이 나와서는 바이올린을 켜기 시작했다.
뭐지? 갑자기? 이렇게? 살짝 당황했지만 수준급 연주가 마음에 들었다. 한참 앉아 있었는데도 메들리처럼 연주가 끝날 생각을 하지 않아 적당히 일어났다. 원래 어디 교회든 관광으로 가서 헌금하는 사람이 아닌데 왠지 여기서는 좋은 공연을 본 값어치는 내고 가야 할 것 같아서 좀 냈다.
점심을 먹고 증권거래소 궁전 옆의 큰 교회 Church of Saint Francis에 갔다. 오른쪽이 교회 본당이고 왼쪽이 교회 박물관인데 본당은 사진 촬영이 안되었다. 사실 가장 사진을 찍고 싶었던 교회여서 안타까웠다. 이를테면 목이 잘린 세례 요한의 동상이랄지, 전반적으로 시커멓고 칙칙한 느낌 등 뭔가 적나라하고 그로테스크하고 다른 교회들과 다른 특별한 다크다크함이 있었다.
교회 박물관 쪽은 본당과 대비되게 또 되게 화사하고 하얗고 금박이 많은 것이 어딘가 동남아스럽기도 했다.
꽃장식 색감이나 장식의 과도함이 살짝 촌스러운 것도 같았는데 이런 게 포르투의 지방색인지도 모르겠다.
회의실 같은 공간의 화려함에 좀 놀랐다. 어둡고 칙칙하고 살짝 무섭기까지 한 교회 본당에서는 사람들 모아놓고 겁주고서 성직자들 본인들은 이런 데서 하하 호호하고 있었던 건가.
그 와중에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님은 엄청 리얼하다. 포르투의 여러 교회들에서 반복적으로 느끼는 건데, 포르투 사람들은 예수님의 신성보다는 인간으로서 고통받았음에 되게 집중하는 느낌이다.
지하에는 또 다양한 조각상들이 있는데 퀄리티나 느낌이 약간 롯데월드 어드벤처 신밧드의 모험스러웠다.
지하 공간의 대부분은 카타콤 catacomb (지하 공동묘지)이다.
기차역 가는 길에 옛날의 공공분수 Chafariz Municipal Mouzinho da Silveira가 보였다. 나름의 문화재라 복원 후 유지는 하고 있는 것 같은데 건축만 남아있고 실제로 쓰이는 분수가 아니라 그런지 노숙자들이 비를 피하는 곳으로 쓰이는 것처럼 보인다.
여기 상 벤투 São Bento 기차역이 아줄레주 azulejo(포르투갈과 스페인에서 널리 사용되는 채색 장식 타일)가 유명하다 그래서 보러 갔다. 건물 바깥쪽이 공사 중이라 좀 정신이 없었다.
기차역 안에 들어가니 진짜 벽을 둘러싸고 있는 아줄레주가 멋졌다.
아줄레주 그림들은 다양했는데 주로 역사의 한 장면, 혹은 옛날의 풍경들이었다.
걷다 보니 시청 Porto City Hall 구경도 했다. 시청 광장 쪽 길만 예외적으로 되게 넓다. 시청 정면 사진만 찍고 굳이 더 가까이 가진 않았다.
카르모 성당 Igreja do Carmo도 유명하다 그래서 가봤다. 여기도 측면에 아줄레주가 있다.
안에 들어가니 여기 또한 금장식이 화려했다.
이 성당은 특이하게 돌아가신 예수님이 누워 있는 조각상이 있다.
곳곳에 서있는 예수님 조각상들은 죽기 전 공포에 질린 표정이랄지 또 아주 인간적으로 묘사되어 있다.
성당의 한 구석에는 돔형상의 특이한 공간이 있었는데 들어가 보니 십자가를 메고 길에 엎드린 예수님의 뒷모습 조각상이 있다.
이 성당 지하에도 카타콤이 있다. 지하에 내려가자마자 바닥에 해골이 보인다.
오른쪽으로는 은촛대 등등 물건들을 보관하는 곳이 있고 왼쪽 공간에도 이런저런 것들이 있었는데 그중에 손 조각상들을 모아놓은 게 신기하고 무서웠다.
위층에 올라가니 또 다양한 조각상들이 있고, 화려한 응접실/회의실이 있다.
위층에서 아래층으로 내려가는 좁은 나선형 계단이 인상 깊었다.
아래층으로 내려와서는 서재가 있는데 내 워너비 서재에 가까운 모습이다. 언젠가 더 큰 집으로 이사를 가서 서재를 만들면 이런 식으로 만들고 싶다.
시내 쇼핑가에서 랜드마크인 교회가 보여서 현대식 건물들과 옛날 건물이 같이 보이는 게 운치가 있다 생각했다. 잘 보이진 않지만 건물들 지붕이 작은 정원인 것도 멋졌다.
재작년 말에 파로 Faro (https://brunch.co.kr/@8df7531fef574a5/23)가면서 포르투갈에 처음 가봤다. 그때 파로가 너무 좋았어서 이번에 포르투도 좀 기대를 했다. 기대한 만큼 도시 자체가 전반적으로 풍경이 아름답고 다리, 서점, 교회, 성당, 등등 관광할 곳들, 볼것들이 많아서 좋았다. 음식도 싸고 맛있고 숙박과 이외 물가가 싼 것도 마음에 들었다. 한국인들이 생각보다 되게 많아서 반가웠는데 동시에 좀 불편하기도 했다. 오르락내리락 경사가 높은 길들이 많고 계단도 많아서 운동이 많이 된 한편 평소 주말여행들에 비해 좀 더 힘들다는 느낌이 있었다.
사람들이 담배를 길에서 진짜 많이 펴서 (심지어 버스 정류장 기다리는 곳에서도) 비흡연자로서는 좀 싫었다. 어떤 골목길들은 아무도 담배를 피우고 있지 않은데 담배에 쩔은 냄새가 났다. 흡연자들이 많아서 그런지 길에서 가래침 뱉는 사람들도 많이 봤다. 여기 집들이 환기가 잘 안 되고 습기에 취약한지 숙소도 그렇고 버스 안도 그렇고 특정 건물들에서도 약간의 물비린내, 곰팡이 냄새 같은 것이 나서 좀 불쾌했다.
되게 좋았는데 또 불쾌하고 불편한 기억도 크다. 파로는 또 가고 싶은데 포르투는 또 가고 싶지는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