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양성과 다채로움의 힙스터 도시
점심을 먹어볼까 하고 식당가를 어슬렁거려 봤다.
한식당에 가보려 했는데 한국 음식은 요새 인기가 많은지 웨이팅이 길어 보여 그 옆에 베트남 쌀국숫집 포 Pho에 가서 얼큰한 쌀국수를 먹었다. 포는 뭐 실패는 없다.
밥 먹고 브라이튼 박물관과 미술관 Brighton Museum & Art Gallery에 갔다. 입구의 고양이가 마음에 든다.
전시의 시작이 탈식민화 decolonise다. 요새 탈식민화가 영국에서 문화와 교육의 큰 화두 중의 하나가 아닌가 싶다. 항상 백인들 작품들만 많이 보다가 다양한 나라들의 예술을 보니 신선하고 좋다.
특히 유화 초상화 같은 경우 99.9999%가 백인들인데 흑인 초상화 처음 봤다. 그림 설명은 제대로 안 읽어봤지만 아마도 옛날 그림풍으로 현대에 그려진 것이 아닐까 싶다. 흑인의 존재가 삭제된 유럽 미술사를 비판하는 누군가가 흑인 인물을 전통적 유럽 초상화 스타일로 재현했을 거라 추정한다. 혹시 정확한 사실을 알고 계신 분은 연락 주시기 바란다.
거리 공연 관련된 전시도 특이하고 재미있다. 인도의 그림자 인형극용 납작한 인형들이랄지, 베트남의 물 인형극용 목각 인형들이랄지 등등 특이한 것들이 많다.
브라이튼은 "영국의 게이 수도" Gay Capital of the UK라고 불릴 정도로 영국에서 가장 LGBTQ 친화적인 도시라 그런지 무지개 색깔 혹은 다양성을 표현하는 다채로운 색감들도 눈에 띈다. 어떤 작품들은 약간 한국의 전통 문양과 조각보를 떠올리게 한다.
복도의 벽면 한 면에는 무지개색으로 브라이튼의 다양성을 표현한 벽화도 있다.
박물관/미술관 건물 자체는 평범한 편이긴 한데 복도를 보면 말발굽 아치와 녹색 타일을 붙여 놓은 것이 이슬람식이다.
기념품샵에는 예쁜 것들이 많은데 특히 마음에 든 것은 귀여운 인형 시리즈다. 나도 언젠가 이런 귀여운 거 하고 싶다.
박물관/미술관 구경을 다 하고서 서쪽 해안 서쪽 부두 Brighton West Pier를 보러 갔다. 현재 철골 구조만 남아 있는 이유는 화재와 폭풍 피해로 다 붕괴되었기 때문이란다.
서쪽 부두 맞은편에는 뒤집어진 집 Upside Down House이 있다. 다들 들어가서 그냥 인증샷 찍고 나오는 느낌이라 굳이 들어가진 않았다.
뒤집어진 집 옆에는 움직이는 전망대 Brighton i360가 있다. 런던 아이 London Eye (런던에 있는 랜드마크인 움직이는 전망대)가 꾸물꾸물 돌아가는 것처럼 얘도 꾸물꾸물 올라간다 했더니 역시나 같은 설계자들이 만들었다. 비싼 돈 주고 런던 아이 갔을 때 실망이 컸던 것을 기억해 굳이 타진 않았다.
호텔에 돌아가서 캐리어를 픽업할 시간이 되었다. 호텔 방향으로 걷다 뒤를 돌아보니 서쪽 부두와 경치가 멋지다.
왠지 뭔가 사고 싶어져서 길거리 기념품 가게에서 작고 사랑스러운 곰돌이 인형을 하나 샀다.
캐리어를 끌고 기차역으로 가는 길에 보인 태국 식당에 들어가서 저녁을 먹었다. 코코넛 밀크에 카레 넣고 각종 해산물들과 야채를 요리한 거였는데 딱히 내 취향은 아니었다.
기차역 바로 옆에는 뱅크시 Banksy의 '키스하는 경찰들' Kissing Coppers이 있다. 이 또한 아주 브라이튼스럽다.
아주 알차고 즐거운 1박 2일 브라이튼 여행이었다. 2014년에 박사 논문 쓸 때 인터뷰하러 한 번 왔었고, 2016년에 학회차 또 왔었으니까 이번이 세 번째 방문인데 관광은 처음 했다. 10년 전 왔을 때는 좀 더 해변가가 차분하고 한적한 느낌이었는데, 지금은 아주 모두의 관광지가 되어버린 느낌이다. 나는 이제 또 올 것 같진 않지만, 런던 여행 길게 오시는 분들이 계시다면 하루 정도는 브라이튼도 가보시라고 추천드리고 싶다. 다양성과 다채로움이 가득한 이 힙스터 도시의 멋짐을 좀 느껴보시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