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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yungeun Sung Oct 10. 2024

교수로 산다는 것 2: 일이 곧 삶

일이 삶이 된다

교수로 산다는 것은 본의 아니게 일이 삶이 되어가는 과정이 될 수도 있는 것 같다. 일을 정말 좋아하고 사랑하는 사람들이 가끔 텔레비전이나 다른 매체에 나와서 하는 말들을 들어보면, 본인은 딱히 취미 생활이라고 할만한 것이 따로 없다, 일이 제일 재밌다, 워크(work)-라이프(life) 밸런스(balance)가 아니라 라이프-라이프 밸런스다, 나에게 일은 라이프다, 뭐 이런 얘기들을 할 때가 있다. 20대의 나는 이런 말들이 전혀 이해가 되지 않았었다. 뭐야, 왜 저래, 미쳤나봐, 같은 반응을 했었던 것 같다. 40대인 지금은 왜 그런 말들이 나오는 알 것 같다. 알 것은 같지만 아직까지 격하게 공감까지는 하기 어렵긴 하다. 20대 때와 비교하면 현재 많이 변하긴 했지만, 지금도 그렇게까지 일을 정말 사랑하고 일이 전적으로 삶인 사람은 아닌 것이다. 지금 내가 하는 일들이 크게 체력을 쓰지 않으면서 지속적으로 재미있게 할 수 있는 일이라고 여겨지기는 하지만, 일은 어디까지나 일인 거지 그게 취미가 되거나 휴식이 된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개인적으로는, 취미 생활은 많을수록 인생이 풍요롭고 행복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휴식과 휴가는 일과 상관이 없어야 제대로 리프레시(refresh)가 된다고 생각한다.   


어쨌든 교수로 일을 하다 보면 딱히 내가 일을 대단히 좋아하는 사람이 아닌데도 불구하고, 어떤 식으로든 일중독자처럼 될 확률이 좀 있지 않나 싶다. 나는 원래 순수하게 노는 것을 참 좋아하는 사람인데(이었는데), 언젠가부터 일중독자 같은 어떤 금단 증상이 생긴 것을 알게 되었다. 정확히 언제부터였는지는 모르겠으나 몇 년 전부터 휴가 같은 때에 일을 하지 않고 몇 주 내내 놀고 있으면, 그렇게 쉬고 노는 것이 마냥 즐겁고 좋지가 않기 시작했다. 어느 정도 이상 놀고 있으면 노는 것에 집중을 하기가 어려워지고, 노는 것이 별로 재미가 없어지고 시시해지고, 차라리 일을 하면 더 재밌을 것 같은 그런 마음이 들어버린다. 주말에도 일요일 저녁이 되면 종종 월요일 아침이 기다려져 버린다. 회사 다닐 때는 출근하자마자 퇴근할 생각만 하고 살았던 것 같은데, 이게 대체 무슨 일인가 싶다. 너무 공부와 연구를 열심히 하다가 머리가 이상해진 게 아닌가요,라고 하고 싶은 분들이 있을지 모르겠다. 다른 더 열심히 하시는 교수님들이나 연구자분들과 비교해서 내가 공부와 연구를 아주 열심히 하고 있는 것 같지는 않은데, 확실히 머리는 좀 이상해진 것이 아닐까라고 나도 가끔 생각할 때가 있다. 박사 학위자들 사이에서 많이 도는 농담이 PhD causes permanent head damage (박사 과정은 영구적인 뇌손상을 일으킨다) 혹은 PHD stands for Permannent(P) Head(H) Damage(D) (PHD는 영구적 뇌손상의 약자다)이니까 박사를 하면서 정말 머리가 이상해졌을 수 있을 것만 같다. 하지만 울 엄마 명자씨가 그렇게 걱정은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엄마, 엄마 막내딸은 머리가 좀 이상해져 버린 것 같지만 그래도 그렇게까지 이상한 사람은 아니니 너무 걱정은 마쇼. 그래도 최소한의 정상의 범주 안에는 있는 것 같은 것이, 대략 아침 9시부터 저녁 5시까지 집중하여 열심히 일을 하고 나면 매일 저녁 피곤하고 쉬고 싶다. 금요일이 되면 주말이 되어서 반갑기도 하고, 학기가 끝나면 학생들의 방학 겸 나의 휴가가 시작되는 것이 아주 기쁘다. 다만, 휴식과 휴가는 어느 정도껏 해야지, 그 이상 넘어가면 그렇게 휴식이나 휴가가 많다는 것 좋은 것인지 잘 모르겠다. 어떤 이유나 목적 없는 한량스러운 자유 시간들을 제대로 즐길 수 없는 사람이 되어버린 것 같다.


일중독이 되기까지

가진 능력에 과분하게 굴지의 대기업 S사와 L사에 다닐 때 (다분히 내가 한국에서 사회생활 부적응자였기 때문에) 극단적으로 말해서 세상에서 제일 싫은 것이 출근이었다. 학교 생활에 적응을 못해서 등교 거부를 하는 어린이10대 같은 느낌으로, 회사에 가는 것이 정말 좋지가 않았다. 이른 아침에 일어나는 것도, 출근 시간에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것도 너무 힘들었다. 만성피로에 시달렸고, 마음의 병을 얻을 것만 같았다 (진단만 하지 않았을 뿐, 실제로 마음의 병이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L사 다닐 때는 정말 죽지 않기 위해서 거의 매일 택시로 출근을 했었고, 그래서 매달 택시비로 몇십만 원을 썼었다. 그 당시 사 먹었던 피로회복제와 보약값도 어마어마했었던 것 같다. 월급을 받으면 절반 이상을 택시비와 약값으로 썼던 것 같다. 지금 생각해도 참 안타까운 그런 어떤 인생의 암흑기였고, 뭘 봐도 다 부정적으로 보였던 어둡고 슬 시절이었던 것 같다. 나의 개인적인 특수성으로 인해서 나만 특별히 적응을 못했었던 것 같은데, 그 당시 내가 너무 어둡우울해서 그 영향을 받았을 주변의 동료들과 지인들에게는 아직까지도 조금 미안한 마음을 가지고 있다. 인생을 다시 살 수는 없지만, 다시 살 수만 있다면 가장 돌아가고 싶은 시점들은 한국에서 사회생활을 할 때가 아니었을까 싶다. 돌아갈 수만 있다면 힘들고 즐겁지 않은 티를 조금 덜 내면서, 조금 더 긍정적이고 활짝하게 회사 생활을 하, 주변인들에게 좋은 영향까지는 주지 못해도 나쁜 영향은 안주는 그런 사람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영국에서 교수로 일을 막 시작했을 때에도 아침마다 학교에 가는 것이 그리 좋지는 않았다. 아마 우리 학생들보다 내가 더 학교에 가는 걸 싫어하지 않았을까 싶다. 2017년 교수가 막 되었을 때에는 그 당시 (박사 학위가 없는) 학과장이 수업 없어도 매일 학교에 나오라, 9시 출근이지만 8시 반까지 와 있어라, 5시 퇴근이지만 5시 반에 나가라,라고 해서 충격적이었던 기억이 난다. 아니 개인 연구실이라도 주면서 연구를 하라고 하든가, 열명 가까이 되는 교수들을 교무실 같은 곳에 다 모아놓고 어떻게 연구를 하라고 하는 건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교수실에 있으면 항상 누군가는 말을 하고 있었고, 학생들이 계속 들락날락하니 정신이 없었다. 그렇게 시장 바닥 같은 곳에서 책을 읽고 논문을 쓰고 연구를 하라니 말이 되지 않았다. 우리 학교는 연구 중심 대학이 아닌 교육 중심 대학이라 우리 과 전체에서 논문 쓰는 교수가 나 하나밖에 없는데, 그러니 '네가 하는 그 연구라는 것이 대체 뭐냐', '연구라는 것은 대체 어떻게 하는 거냐' 같은 분위기였다. 누구 한 명 나를 배려해 주는 느낌 같은 것은 전혀 없었다. 너무 시끄러워서 연구를 할 수가 없다고 했더니 그 당시 학과장의 대답은 그러면 귀마개를 하거나 이어폰을 쓰라는 것이었다. 귀마개를 하거나 이어폰을 쓰고 어차피 혼자 일하는 거면 왜 조용한 곳에 가서 나 혼자 일하면 안 되는 것인가? 왜 재택을 못하게 하는가? 교수로 임용이 된 첫 해에는 연구를 못하게 하는 연구 여건과 환경, 시스템과 나 혼자 외롭게 맞서 싸우는 느낌이었다.


다행히 2년 만에 새로운 (박사 학위가 있고 연구를 열심히 하던) 학과장이 연구 중심 대학인 옆학교 롭보로 대학(Loughborough University)에서 오면서 새로운 시대가 열렸다. 수업이나 미팅이 없으면 학교에 오지 않아도 되었고, 주로 재택을 하니 하루 중 길거리에서 버리는 시간이 부쩍 줄었으며, 어떤 식으로든 일에 방해를 받는 일이 없으니 일효율이 올랐다. 매일 해낼 수 있는 절대적인 업무의 양이 늘어났다. 그러나 내가 재택을 많이 하기 시작하자 연구 시간이 없고 교육 활동만 하는 다른 교수들로부터 시기질투 어린 시선과 불평불만 늘어났다. 그러다 코로나와 함께 모두가 재택을 하면서 평화로운 시대가 열렸다. 2024년인 지금까지도 계속 대체적으로 평화로운 재택을 많이 하고 있다. 딱히 나를 괴롭히는 사람이 있는 것도 아니고, 대부분의 일들은 내 컨트롤 안에 있는 일들이고, 그러다 보니 혼자 열심히만 하면 다 할 수 있고, 그래서 매일 혼자 열심히 효율적으로 일하고 그럭저럭 많은 일들을 해내고 있다. 다른데 신경 쓸 것 없이 내가 해야 하는 일들만 잘하면 되고, 일이 나름 잘 되는 편이니까 성취감이 있고 보람이 있고 재미가 있어지기 시작했다.


사람이나 환경 스트레스가 거의 없는, 일에서 느껴지는 순수한 성취감, 보람, 재미 등의 긍정적인 느낌들과 경험들의 반복이 일중독의 시작이었던 것 같다. 모든 중독은 기분이 좋아짐에서 시작되지 않는가 (예를 들어 술을 마시니 기분이 좋아짐, 쇼핑을 하니 스트레스가 풀리고 기분이 좋음 등등). 그리고 원래 뭐든지 시간을 들여 꾸준히 하다 보면 습관이 되기 마련인 것이다. 일을 열심히 효율적으로 많이 쳐내는 것이 습관이 되어서, 이제 그렇게 하지 않으면, 그렇게 하지 못하게 되면 스트레스를 받는 것 같다. 이를테면 어떤 날은 미팅이 하루 종일 빼곡하게 있어서 중간중간 이메일이나 확인을 하고 답장만 보내다 하루가 다 지나가 버릴 때도 있는데, 그럴 때는 끝낸 일이 하나도 없는 것 같아서 좀 스트레스를 받기도 한다. 누가 혹시라도 평생 먹고살 돈을 줄 테니 대신 조건은 평생 어떤 생산적인 일도 하면 안 되고 무조건 편하게 놀고먹고 쉬어야 하는 것라고 한다면, 과연 내가 고민하지 않고 그 제안을 덥석 받아들일 수 있을까 싶다. 내가 그런 어려운 일을 감당할 수 있을까. 어떻게 일을 하지 않고 지속적으로 재미나게 몇 달, 몇 년을 잘 살 수 있을까, 상상조차 잘 되지 않는다. 평생 먹고살 돈을 줄 테니 그 돈을 굴려서 10배, 100배로 만들어라,라고 한다면 차라리 훨씬 더 신나고 재밌는 인생을 살 수 있을 것 같다.   


게임중독 같은 일중독

일이 적당히 많고 적당히 어려울 때의 즐거움은 많은 분들이 좀 공감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인간이란 원래 간사해서 일이 너무 없으면 심심하고, 일이 너무 쉬우면 시시하고, 그렇다고 일이 감당하지 못하게 너무 많고 어려우면 또 피곤하고 힘들고 지치고 좌절감을 느끼기 마련이지 않은가. 분명 돈을 벌기 위해 하는 일임에도 불구하고 적당한 양의 적당히 어려운 일을 하고 있다 보면 어쩐지 즐겁다고 느껴져 버리는 스스로에게 가끔 깜짝 놀랄 때가 있지 않은가. 적당히 바빠서 허투루 쓰는 시간이 없이, 루즈(loose)하게 보내는 시간이 없이, 하루를 아주 꽉 차게 잘 쓰고 나면, 쓰나미처럼 밀려오는 만족감 같은 것이 있지 않은가. 물론 결론이 없는 미팅들만 줄줄이 하다가 성과가 없이 하루가 다 지나갈 수도 있지만, 그렇지 않고 무언가 해결되는 것들이 있고 끝나는 일들이 생긴다면 더할 나위 없이 보람차고 뿌듯한 하루라 생각하며 꿀잠을 잘 수 있을 것이다. 소중한 나의 인생을 허비하지 않고 보람차게 잘 썼다, 나의 능력을 유용한 곳에 잘 발휘했다는 그런 깊은 만족감이 들 것이다.


일이라는 것은 또 어떻게 보면 (컴퓨터/모바일/온라인) 게임 같기도 하다. 무슨 게임이든 시작할 때는 아주 쉽지만 게임을 할수록 점점 난이도가 높아지고 높은 난이도의 레벨이나 보스를 깰 때 느끼는 어떤 희열이 있지 않은가. 게임을 계속하는데 난이도가 변하지 않고 똑같으면 분명 시시해져서 더 하고 싶지 않아 질 것이고, 게임을 시작하자마자 말도 안 되게 난이도가 어렵다면 중도 포기를 하게 될 것이다. 아주 적당하게 시간을 써서 게임을 하는데 적당하게 레벨이 오르고 난이도가 오른다면, 꾸준히 게임을 재미나게 계속할 수 있을 것이다. 일도 비슷하다고 생각한다. 적당히 시간을 써서 일을 하는데 적당하게 업무 난이도가 올라가고 새로운 직책을 맡고 새로운 프로젝트를 하고, 맡은 일들을 잘 끝내고 또 업무 난이도가 조금 더 올라가고 또 잘 해내고, 그것이 반복되면서 내가 좀 더 많고 어려운 일들을 잘 해낼 수 있는 사람이 되어가는 과정 자체가 재밌어질 수 있다. 들이는 시간과 노력 대비 어떤 성과가 나오고, 새로운 일, 과제, 프로젝트를 하는 것이 새로운 퀘스트(quest)를 하는 것과 같이 느껴지고, 새로운 사람들, 팀들과 같이 일하는 것이 게임에서 새로운 파티(party)를 형성하여 게임을 하는 것처럼 느껴진다면, 일이나 게임이나 큰 차이가 없게 여겨질 것이다.  


그리고 꾸준히 게임을 재미나게 하다 보면 중독자마냥 게임을 계속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 기분이 드는 것처럼, 일중독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틈만 나면 게임을 하고 싶어지는 것처럼 틈만 나면 업무 이메일을 확인하고 싶어질 수 있고, 얼마간 게임을 못하는 상황이 되면 자꾸 게임 생각이 나는 것처럼 일을 한동안 안 하고 있으면 자꾸 일 생각이 날 수 있다. 누가 게임을 못하게라도 하면 몰래라도 하고 싶은 마음이 드는 것처럼, 일도 하지 말라고 하는데도 몰래라도 하고 있는 이상한 사람이 될 수 있다. 정말 나만 이상한 사람일까 싶어서 좀 찾아봤더니 요새 한국의 직장인들 사이 업무 도파민(dopamine, 행복 호르몬)에 중독된 사람들이 전체 직장인들의 절반에 육박한다고 한다. 직장인 과반수에 가까운 인구가 업무를 통해 긍정적인 보상, 경험, 기분들을 받고 있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이렇게 일을 부정적이기보다는 긍정적인 경험으로 느낀다는 것은 나쁜 일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이렇다 할 보상이 없이 일을 한다거나, 항상 부정적인 피드백을 받는다거나, 일을 열심히 해놓고도 성과나 업적이랄 것이 생기지 않고 시간만 지나간다거나, 일을 아무리 해도 별 보람과 가치를 느끼지 못한다거나 한다면, 그래서 일을 하는 행위가 전혀 도파민을 생성시키지 않는다면 그것만큼 또 안타까운 일이 없을 것이다. 어쨌거나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뜨고 있는 시간 동안 가장 많은 시간을 쓰는 것은 일인 것이다. 그렇더라도 즐겁게 일을 하고 일에 중독이 되는 것도 정도껏 해야 한다. 여러분들도 모두 나처럼 어느 정도 저질 체력이라 저녁 5시만 되면 기진맥진하여 휴식을 취해야만 하기를 바란다. 이렇게 써놓고 보니 나의 저질 체력도 건강한 삶을 사는데 나름 유용한 것이었다. 하하.  


현재진행형

교수라고 모두가 다 일이 게임같이 여겨진다거나, 일중독이 된다거나, 아니면 일과 삶의 경계가 희미해지거나 없어지는 것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교수인 다른 친구들이나 지인들을 봐도 일하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기본적으로 많은 것 같고, 막 좋아하지는 않더라도 다들 일에서 손을 떼지 못하는 것 같다. 나는 약간의 일중독 증상을 느끼고는 있지만, 그렇다고 일과 삶의 경계가 아예 없는 정도는 아니다. 지금의 느낌은 어떤 정도냐면... 다이어리에 해야 할 일들이 가득 있으면 하나도 없는 것보다 살짝 즐겁다. 일을 잘 해내면 즐겁고, 일의 성과가 있으면 보람차고, 무슨 일이든 잘 끝내고 나면 수고한 나를 위해 작은 상을 주는 것이 좋다. 무슨 프로젝트든 끝이 나면 시원섭섭함에서 시원함보다 섭섭함이 살짝 더 큰 것 같고, 새로운 일이나 안 해봤던 일이 들어오면 좀 신이 난다. 심심하면 습관적으로 자꾸 업무 이메일을 확인한다. 나에게 업무 이메일과 인스타그램은 아주 똑같지는 않지만 얼추 비슷한 느낌이다. 남는 자투리 시간(이를테면 버스를 기다리는 시간)에 인스타그램을 열어보기도 하지만, 그보다 더 자주 업무 이메일을 열어본다. 내가 컴퓨터 앞에 앉아있지 않는 동안 어떤 흥미로운 이메일들이 왔을지 모르는 일이다. 가끔 놀면 좋은데 놀다가 일을 하면 그보다 조금 더 즐겁다.      


딱히 좋아하는 일도 아닌데 일중독이 된다면 어쩐지 좀 억울한 마음이 들것도 같은데 (마치 술이 맛없는 알코올 중독자처럼), 나는 다행히 내가 하는 일의 대부분을 좋아하는 편이긴 하다. 논문을 쓰고 책을 집필하고 이외 다양한 연구 활동들을 하는 것은 몰입(flow)하기에 좋고, 학생들을 가르치는 일은 인간적 만남의 즐거움과 지식 전수의 보람이 있으며, 특히 학생들이 나날이 일취월장하고 청출어람하는 것을 가까이서 지켜보는 것은 선생으로서 가장 보람찬 순간들이 아닐까 싶다. 다른 교수들과 행정 직원들과 같이 학교 운영 관련 일들을 할 때는 또 학교의 핵심 인력이라는 사명감을 가지고 모두에게 유익하고 도움이 되는 일을 한다는 기쁨과 뿌듯함이 있다. 다른 교수들과 공동 연구를 하면서 항상 무언가 누군가로부터 배울 수 있어서 좋은 것도 있고, 기본적으로 같이 일해서 즐겁고 재밌고 신나는 경우들이 많다. 함께 일을 하다 보면 든든한 업무 동반자를 넘어서서 믿을 수 있는 친구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항상 아름답고 따뜻할 수만은 없는, 어쩔 수 없는 그런 업무 환경 안에서도 믿을 수 있는 친구들을 얻을 수 있는 것은 큰 행운이라 생각한다.


어찌 되었든 내가 교수가 되자마자 일중독이 된 것이 아니고, 시간이 지나면서 서서히 그렇게 되어가고 있는 것이기에, 이 모든 것은 아마도 현재진행형인 것이 아닌가 싶다. 앞으로 5년 혹은 10년 즈음 지난다면, 내 일이 삶이고 내 삶이 일이지 뭐, 이렇게 말하게 되는 순간이 올지도 모르겠다. 아니면 오히려 정반대로 일이라면 이제 지긋지긋하고 왜 하는지 모르겠다, 어서 그만두고 싶다고 느끼게 될지도 모르겠다. 내가 20년 전에는 유학을 가거나 교수가 될 거라는 상상도 해보지 않은 것처럼, 10년 전에만 해도 내가 영국에서 박사를 끝내고 이 나라에서 자리를 잡을 것이라는 생각을 안 했던 것처럼, 5년 전에만 해도 출근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고 일중독이 되는 사람들 이해가 잘 되지 않았던 것처럼, 앞으로도 나는 내가 지금 상상하지 못하고 내 이해의 범주 안에 있지 않은 어떤 방향으로 계속 변하지 않을까 싶다. 10년 뒤에는 또 내가 어떤 더 이상한 말을 하면서 지금을 회상하게 될까, 미래의 나조우하게 될 때가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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