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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yungeun Sung Oct 01. 2024

교수로 산다는 것 1: 모르는 것을 알아감

모르는 것을 알아간다

교수로 산다는 것 무언가 내가 모르는 것을 알아가는 배움의 과정의 연속인 것 같다. 요즈음은 세상이 워낙 빠르게 변하고 발전하니 뭐 교수만 그럴 것 같진 않고 직종과 상관없이 다들 비슷하지 않을까 싶다. 어떤 형태로든 일을 하는 사람들은 모두가 매일 모르는 것을 알아가며 열심히 살고 있을 것 같다. 어느 직장/직군에서나 새로운 정보나 지식을 습득하지 않으면 매년 새로워지는 시스템을 사용할 수 없다거나, 특정 업무들을 처리할 수 없다거나 하는 경우들이 있을 거라 생각한다.  아무튼 개인적으로는 교수로 일하는 하루하루, 종종 몰랐던 것들을 알게 되거나, 가끔 모르는 것들을 찾아보고 공부도 하면서 살고 있다. 교수로 이런저런 일들을 하다 보면 특히 사는데 크게 도움 안될 것 같은 정보와 지식들을 많이 접하게 된다. 예를 들어 디자인 인식론(design epistemology)에 대한 논문을 검토해야 한다거나, 영국 크리켓(cricket) 시장의 쓰레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연구 제안서를 평가해야 하는 식이다. 모든 정보/지식의 돈으로의 환산 가치를 생각하는 사람들은, 거 참 시간 낭비스럽군, 하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나는 다행히 이런 일들에 시간이 아깝다 여겨본 적은 별로 없고, 몰랐던 것을 알게 되는 것 자체에서 나름의 재미와 즐거움을 느끼고, 뭐든지 알고 있으면 언젠가 어딘가에는 유용하게 쓰일지도 모른다는 작은 희망과 기대감을 가지고 있는 편이다. 그리고 실제로 그렇게 도움이 되는 정보와 지식들이 있었다. 세상 일이란 어떻게 될지 모르는 것이다. 비단 나만 이런 것은 아닐 것 같고 대부분의 교수들이 비슷할 거라 생각한다. 교수들이란 세상과 사물들과 현상들에 대해 평균 이상의 호기심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일 확률이 높으므로, 몰랐던 것을 알게 되고 알아가는 과정을 나보다 더 좋아하면 좋아했지 덜 좋아할 리 없다.

 

모르는 것은 부끄러운 게 아니다

문자가 생긴 이래 인류가 축적한 지식의 양의 방대함과 매일 쏟아져 나오는 새로운 정보와 지식의 양을 고려할 때, 내가 뭘 모른다는 사실은 전혀 부끄러워할 일이 아니다. 뭐든지 당연히 몰랐을 수 있고, 대부분의 정보와 지식들이란 몰라도 사는데 큰 지장이 없으며, 사는데 중요한 영향을 준다면 언제라도 알면 되는 일이다. 지금은 이렇게 자명한 사실인데 몇 년 전만 해내가 뭘 모르고 있었다는 것을 아는 것이 어쩐지 좀 부끄럽고 민망했었다. 새로운 지식 창출의 최전방에서 일을 하다 보니 지식의 흐름과 트렌드를 다 알고 있어야 할 것 같은 어떤 책임감 내지는 부담감 같은 것이 있어서 더 그랬던 것 같다. 뭘 몰랐었다는 것을 알게 되면, 마땅히 내가 알고 있어야 하는 것인데 모르고 있었던 아닐까, 다들 아는데 나만 몰랐던 아닐까, 내가 이걸 몰랐다는 동료 교수들이나 내 학생들이 알면 나를 무능한 교수라고 보는 것은 아닐까, 여러 가지 우려들이 많았었다. 그런데 영국에서 교수로 일한 지 몇 년이 지나면서 깨달았다. 마땅히 내가 알고 있어야 하는 정보나 지식 같은 것은 없는 걸. 새로운 수업에 들어가야 하는데 잘 모르는 내용을 가르쳐야 되면 교수들은 다 책을 읽고 공부를 하면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미팅을 하다 모르는 질문이 나오면 미팅 후에 찾아보고 이메일로 자료를 보내겠다고들 하고, 어느 미팅에서나 특히 경력이 많은 교수들일수록 질문들을 많이 다. 교수가 된 지 얼마 안 되었을 때는 각종 미팅에서 어떤 용어나 축약어 같은 것들을 모르겠으면 내가 학교에서 시작한 지 얼마 안 되어서 나만 모르고 다른 교수들은 아는 것인가 싶어서 질문을 못했었는데, 나이 많은 교수들이 먼저 질문들을 많이 해주시니 고맙고 속이 시원했었다. 모르는 것은 부끄러운 게 아니라 모르는데 질문을 안 하고 모르고 넘어가면 그냥 좀 자기 손해 일인 거 같다.


주입식 교육의 영향         

나는 왜 30대 중후반까지 뭘 모른다는 것에 대해 부끄러움을 느꼈을까 잠시 생각을 해봤다. 이것은 나의 개인적인 경험일까, 교수라는 직종의 문제일까, 아니면 전 인류의 보편적인 경험일까. 직종의 문제는 아닌 것 같은 것이, 회사를 다닐 때도 비슷한 느낌이 있었었다. 인류의 보편적인 경험을 논하기엔 영국 사람들이나 다른 나라 사람들이 어떻게 느끼는지는 잘 모르겠다. 그렇지만 평균적인 한국인들의 반응은 왠지 비슷할 것 같다. 이게 다 우리가 자랄 때 받은 주입식 교육 때문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요즈음 한국 교육 얼마나 바뀌었는모르겠지만, 내가 학교를 다닐 때는('라떼는'을 구사하여 죄송) 대부분의 시험에 정답이 있었고, 답을 모르면 혹은 답을 기억해내지 못하면 렸었다. 틀리는 문제가 많으면 당연히 낮은 점수를 받고 낮은 등수가 되었다. 그러니 뭘 모른다는 것은 틀리는 것이 많은 사람, 낮은 점수와 낮은 등수의 인간이 되는 것만 같아서 부끄러움과 연결이 된 것이 아닐까 싶다. 한국에서 학창 시절에 똑똑함의 기준이란 것은 보통 얼마나 많은 지식을 머리에서 바로 끄집어낼 수 있느냐, 시험에 나오는 문제들에 얼마나 많은 정답들을 주어진 시간 안에 빨리 다 쓸 수 있는가였던 것 같다. 모범 답안에서 벗어난 답을 쓰면 '다르게 생각'한 게 아니라 '틀린 답'이 되고, 새로운 시각과 관점을 제시하는 가치를 알아주는 선생님들이란 딱히 있었던 것 같지 않다. 교수가 된 지금은 아이러니하게도 모범 답안에서 벗어나 다르게 생각하기, 정립된 이론과 모델을 답습하지 않고 새로운 시각과 관점을 제시하기를 기대받고 요구받고 있는 중이다. 아무튼 요는, 내가 뭘 몰랐구나 하고 깨달았을 때  어떤 부끄러움에는 한국의 주입식 교육의 영향이 있었던 것 같다. 학교와 사회가 우리에게 정답을 암기하게 하고 시험 문제를 잘 푸는 연습을 반복적으로 시켰으며, 시험을 잘 못 보면 점수가 낮은 인간, 등수와 등급이 낮은 인간, 좋은 대학교에 가지 못하는 인간으로 낙인을 찍어왔다. 대부분의 우리는 높은 점수, 높은 등수와 등급을 받아 좋은 대학교 원하는 과에 가기 위해 자발적으로 더 열심히 정답을 암기하고 시험을 잘 보는 연습을 하는 것에 10대를 바쳤다. 돌이켜보면 좀 서글프고 안타까운 일이. 물론 그 시간이 있었으니 지금의 내가 (그리고 지금의 여러분들이) 있다고 생각한다. 나는 특히 한국 교육 시스템의 특혜를 받은 수혜자 중의 한 명이기도 하니 불평불만을 하면 안 된다고 생각하기도 한다. 많은 돈을 들이지 않고 양질의 교육을 받을 수 있었던 환경에 대해 항상 감사한 마음을 가지고 있다. 렇더라도 미래에는 뭘 모르는 것에 대해 부끄러움을 느끼는 사람들이 훨씬 더 적어지는 날이 오면 좋겠다. 인공지능(Artificial Intelligence, AI)이 거짓말을 하거나 이상한 말을 하지 않고 정말 똑똑해지는 때가 곧 올 것이고, 그러면 무슨 정보와 지식이든 다 인공지능이 필요할 때마다 알려줄 테니, 누구나 뭘 모르고 사는 것이 아주 당연한 시대가 열릴지 모르는 일이다.


학생들로부터 가장 많이 배운다

교수로 일을 하면서 업무 자체(논문 읽고 쓰기 등)에서 모르는 것들을 많이 발견하고 깨닫기도 하지만, 주변 사람들로부터 배울 기회들도 참 많다고 느낀다. 같은 과(제품 디자인과)나 같은 단과대(인문 디자인 예술대)의 교수들과 커리큘럼(curriculum)을 같이 짜는 미팅을 하면, 다들 어떤 과목을 어떻게 가르치고 있나 알게 되어서 아주 배울 것이 많고 유용하다. 전혀 다른 과(공학, 경영 등)의 교수들과 공동 연구를 하면, 내가 잘 모르는 분야에 대해서도 같이 논문을 쓸 수 있을 만큼 많이 배우게 다. 일을 잘하는 행정직원들과 같이 일을 하다 보면, 일을 할 때 어떤 태도와 행동을 취해야 일이 수월하게 잘 되는가를 배울 수 있었다. 7년째 내 리서치 멘토인 가브리엘 교수님으로부터는 무슨 연구 활동을 할 때든 항상 많은 도움을 받고 배우고 있다. 이외에도 나에게 배움의 기회를 주는 사람들은 셀 수 없이 많은데, 그중 내가 가장 많이 배우는 사람들은 단연 우리 학생님들이 아닌가 싶다. 훌륭한 학생들은 내가 1을 가르쳐주면 10을 해내니 오히려 내가 더 배우고 있을 때가 많다. 부족한 학생들을 보면 내가 뭘 잘 못했을까, 뭘 더 해줘야 하는 것일까, 어떻게 하면 더 잘하게 만들 수 있을까 고민하고 노력하게 되니 뭐라도 하나 더 배우게 된다. 학생들 중에서도 특히 박사생들로부터 가장 많이 배운다. 우리 박사생들은 원래부터 똑똑하고 훌륭한 학생들을 뽑기도 했지만, 내가 아주 성심성의껏 최선을 다해 열심히 지도해 왔기 때문에 보통 1년만 지나면 다들 나보다 낫다. 우리 박사생들을 통해 잘 모르는 새로운 연구 분야나 내가 써보지 않은 연구 방법들에 대해서 항상 많이 배우고 있다. 졸업할 때가 가까워지는 박사생들을 보면 정말 내가 더 가르쳐 줄 것이 없다는 느낌이다. 막바지에는 지도 미팅을 거의 하지 않아도 다들 알아서 마무리를 잘들 한다. 박사를 시작할 때는 연구제안서 쓰는 것도 서툴렀었는데 어느덧 독립적인 연구자가 된 우리 박사생들을 보면 아주 뿌듯하고 보람차다. 연구 역량을 보면 나보다 훨씬 더 가능성이 많은 박사생들이 있어서 과연 몇 년 뒤에 얼마나 훌륭한 학자가 될까 기대가 되고 설렌다. 어서 우리 박사생님들이 더 훌륭한 사람이 되고 잘 되어서 나를 기억해 주면 좋겠다.

 

박사라고 다 척척박사 아니다

박사 학위자라고 해서 뭐든지 다 잘 아는 척척박사들은 아니다. 내가 잘 아는 것들이란 내가 박사 전공을 한 굉장히 좁디좁은 내 세부 전공 분야에 한정된다. 이를테면 나는 친환경 디자인 안에서 더 좁고 특수한 세부 전공인 업싸이클링(upcycling, 새활용)에 대해서 연구를 해왔기에, 이 세부 전공 안에서 지금까지 어떤 연구들이 이루어져 왔는가 잘 아는 수준의 전문성을 가지고 있을 뿐이다. 연구 방법론도 전반적으로 어떤 옵션들이 있는지는 알지만 내가 써봤던 특정 연구 조사 방법들이 아니면 자세한 사항들을 세세히 다 알지 못한다. 휴가 때가 아니면 딱히 독서를 하지 않고, 휴가에 하는 독서도 취향이 확실한 편이며(심리, 경제, 자기 계발 서적 위주), 신문을 읽지 않고, 다큐멘터리보다는 영화나 드라마를 좋아하는 사람이라, 백과사전 같은 지식은 전혀 가지고 있지 않다. 내 박사 전공 분야 이외에는 아는 것들보다 모르는 것들이 훨씬 더 많은, 그냥 어디에서나 만날 수 있는 보통의 사람들 중의 한 명이다. 물론 다른 박사님들보면 무엇이든 묻는 대로 척척 대답을 해내는 척척박사 같은 사람들이 없는 건 아니다. 그런 사람들을 보면 기본적으로 호기심이 상위 1%에 가깝게 왕성하고, 궁금한 것이 있으면 당장 찾아봐야 하고, 본인이 모르는 것이 있다는 걸 아는 순간 그걸 알아야만 하며, 단기 기억과 장기 기억이 다 탁월한 사람들인 것 같다. 그런 척척박사님들을 보면 나는 신기할 따름이다. 나 같은 경우는 호기심이 없는 건 아니지만 그렇게 많은 편도 아니고, 궁금한 것이 있어도 귀찮아서 안 찾아볼 때가 있으며, 모르는 걸 알아도 딱히 내 관심사가 아니면 굳이 알고 싶은 욕구도 없고, 단기 기억이고 장기 기억이고 그렇게 좋은 것 같지 않다. 조금 다른 얘기로, 박사를 이미 해버린 사람들은 다들 공감하실 텐데, 박사를 하면서 얻은 가장 큰 깨달음 중의 하나는 우리가 얼마나 모르는 것이 많은가였다. 내가 아는 것들(what I know)이 돌멩이 하나 크기라면, 내가 모른다는 걸 아는 것들(what I know I don't know)은 그 돌멩이가 있는 산 정도 크기이고, 내가 모르는지도 모르는 것들(what I don't know I don't know)은 아마도 지구만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세상에 내가 모르는 것들이 아주 많다는 걸 잘 알게 되고, 그러면 그때부터 어떤 지식과 정보를 대하는 태도가 갈릴 수 있는 것 같다. 어떤 박사님들은 그래서 더 전투적으로 지식과 정보를 습득하기 위해 노력하고, 나 같은 사람들은 정보의 홍수와 지식의 바다에서 허우적거리는 노력도 하지 않으면서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로다, 하고 득도한 사람처럼 마음의 평화를 누리고 있다. 어차피 아무리 노력해도 다 알 수 없고, 다 알아야 할 필요도 없으며, 꼭 필요한 것들은 언젠가 다 알게 된다고 생각한다. 개인적으로는 뭘 아는 것보다 훨씬 더 중요한 것은, 개개인의 건강과 행복, 마음의 평화, 주변 사람들을 향한 선한 영향력 등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니 혹시 나를 어디에서 우연히 만나게 된다면 내가 척척박사가 아니라는 것을 미리 아시고 어려운 질문들은 자제해 주시기 바란다.


여전히 모르겠는 것들

학부를 졸업할 때는 내가 디자인을 다 깨우쳤으니 이제 대단한 슈퍼 디자이너가 되는 일만 남았다며 의기양양하게 취업을 했었다. 가진 능력에 넘치게 굴지의 대기업 S전자에서 제품 디자이너로 일을 하면서 깨달았다. 나는 생각보다 디자인을 잘하는 사람이 아니구나, 세상엔 디자인을 나보다 훨씬 더 잘하는 사람들이 넘쳐나는구나, 노력을 한다고 디자인 감각이 하루아침에 생기는 것은 아니구나, 제품 디자인 실무를 내가 평생 할 수는 없을 것 같구나, 그리고 무엇보다 한국 사회생활이 나랑 잘 맞지 않는구나. 그래서 2년 정도 일하고 그만두고서 유학을 갔고, 디자인 실무가 아닌 디자인 전략 공부를 했다. 유학을 다녀와서 또 가진 능력에 과분하게 굴지의 대기업 L전자에서 디자인 리서치를 하고 UX(User eXperience, 사용자 경험) 디자인 일을 좀 했었는데, 그때 또 깨달았다. 아, 업무의 성격이 중요한 게 아니라 그냥 한국 사회생활이 나랑 잘 맞지 않는 것이었구나. 그래서 나에게 석사도 약간은 도피성이었지만, 박사는 특히 더 도피성이었던 것 같다. 그래도 다행히 전화위복이 되어서 박사를 마치고 교수가 되어 7년이나 장기근속 중이다. 교수로 일하는 나름의 어려움들이 있기는 하지만 그래도 지금껏 해본 일들 중에 가장 적성에 잘 맞는 것 같다. 우여곡절 끝에 영국에서 교수로 직장생활을 나름 잘하고 있는 중이긴 한데, 지금까지 내가 걸어온 길이 최선이었는지는 모르겠다. 내가 살아보지 않은 인생에 대해 말할 순 없지만, 이를테면 회사 생활을 더 노력해서 열심히 하면서 나름 적응을 하고 살아낼 수 있었다면, 한국에서도 지금 즈음 더 편안하고 즐겁게 잘 살고 있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내가 살아온 길을 누군가에게 추천할 것이냐면, 물론 나는 내가 살아온 인생이니까 나에게 다 의미가 있는 여정이었다 생각하기는 하지만, 다른 사람들에게도 추천을 해야 할까는 잘 모르겠다. 웬만하면 굳이 왔다 갔다 하지 말고 한길을 걸을 수 있다면 한길을 걷는 것(회사를 주욱 다니든 공부를 계속해서 바로 교수가 되든)이 더 빠른 사회적 성공을 위해서는 더 나은 것 같다. 나 같은 경우는 내가 뭘 정말 원하는지 좋아하는지 찾는 것이 쉽지 않아서 시행착오를 특별히 많이 한 케이스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그런 나를 보면서 우리 엄마가 했던 표현은 '너는 왜 똥인지 된장인지 꼭 먹어봐야 아느냐'였다. 여러분은 현명하게 똥인지 된장인지 먹어보지 않고도 알 수 있기를 바란다. 유학추천하냐면 그것도 잘 모르겠다. 나는 유럽으로, 영국으로 유학을 나와서 좋았는데, 내가 미국으로, 혹은 어느 다른 나라로 유학을 갔었다면, 혹은 유학을 가지 않고 국내에서 석사나 박사를 했었다면, 그것도 그것 나름대로 좋았을 수도 있었을 것 같다. 원래 인간이란 본인이 지금 대단히 불행하지 않은 이상 과거를 대체적으로 긍정적으로 기억하기 마련인 것이다. 그리고 어항에 사는 물고기는 어항에서 계속 행복할 수 있다. 우물 안 개구리도 우물 안에서 얼마나 편안하고 안락한 생활을 하겠는가. 굳이 거친 바다에 나가고 우물 밖에 나가서 큰 세상을 봐야 하는 건가 잘 모르겠다. 석사나 박사를 하는 등 공부를 많이 하고 가방끈이 길어지는 것도 꼭 좋은 건지 잘 모르겠다. 물론 교육업계 종사자로서 세상 사람들 모두가 공부를 좋아해서 석사나 박사 과정을 하러 학교에(특히 우리 학교에) 오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고, 나도 석박사 학위를 하는 동안 많이 배우고 좋은 경험들을 많이 하긴 했다만, 공부는 역시 그냥 공부를 정말 정말 아주아주 좋아하는 사람들만 하는 것이 맞지 않나 싶다. 특히 요새는 공부를 많이 하는 것의 투자 대비 수익률(Return on Investment, RoI)이 그렇게 높은 것 같지 않아서, 집이 부자이거나 하지 않는다면 함부로 우리 학생들에게도 석박 과정을 추천하기가 망설여진다. 이렇게 써놓고 보니 나는 나의 고용주에게도 얼마나 도움이 되는 사람인가 잘 모르겠다 (쉿. 학교에는 말하지 말아 주세요). 박사 연구 주제인 업싸이클링에 대한 연구도 10년이 넘게 계속하고 있기는 한데, 여전히 내가 연구 주제를 잘 선택한 건지 잘 모르겠고, 내가 하는 연구가 소중한 국민의 세금을 쓸 만큼 충분한 가치가 있는 일인가도 가끔 확신이 서지 않을 때가 있다. 이 연구비를 가난하고 아픈 사람들에게 밥 사주고 약 주는데 쓰는 것이 더 사회를 위해 유용한 일이 아닐까, 내가 쓰는 연구비를 모아서 사람을 살리는 의학 연구 같은 데에 보태주는 것이 더 의미가 있는 것은 아닐까. 연구 주제를 좀 바꿔보고 싶은 마음도 있는데, 잠시 이런 마음이 드는 건지 진짜 바꾸고 싶은 건지도 모르겠다. 여전히 확실히 모르겠는 것들은 많은데, 지금 당장 판단을 내려야 하는 긴급한 사항들이 아니기에 판단을 유예한 채로 살고 있는 중이다. 좀 더 나이가 들고 더 현명해지거나 더 객관적으로 상황을 볼 수 있게 된다면, 뭐든 더 명확하고 명백하게 알게 되고 자연스레 판단이 서는 때가 오지 않을까 기대하고 있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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