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이나 현지 친구가 추천한 역사 여행지
오늘 소개할 곳은 리비우 근교에 있는 유적지인 올레스코 성이다. 올레스코 성은 리비우 시내에서 차로 약 1시간 10분 정도 걸린다. 저번 여행기에서도 말했듯이, 리비우에서는 한국인은 물론 다른 동양인을 거의 볼 수 없었다. 그래서 어딜 가나 눈에 띄어 조용히 다녔던 기억이 난다. 리비우 서부에서는 러시아어가 잘 통하지 않지만, 이곳에서는 여전히 러시아어가 잘 통용된다. 러시아어나 우크라이나어를 모르면 길을 찾거나 관광할 때 어려울 수 있다.
1시간 10여 분을 달려 올레스코 성 입구에 도착했다. 성 입구에는 기념품 가게들이 있다. 간단한 간식이나 지역 기념품을 파는데 그렇게 비싸지 않았다. 성 내부를 구경하는 데는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미리 화장실을 다녀오는 것이 좋다.
성 입구에 낡은 서양식 건물과 동상이 서 있었다. 세월의 흔적이 그대로 느껴지는 건물이다. 올레스코 성은 약간 언덕 위에 위치하고 있는데, 올라가는 길이 잘 나 있어서 언덕이라고 느껴지지 않았다. 조금만 올라가면 성 입구로 들어갈 수 있다. 멀리서 보면 유럽의 오래된 고성의 느낌이 확실히 난다.
성 안쪽으로 들어가니 작은 마당이 있었는데 생각보다 넓지 않았다. 지금은 박물관으로 활용되고 있는 성 내부를 들어가 보았다. 성 내부에는 성과 관련된 유적과 기독교 유적들이 많이 전시되어 있었다. 이 성의 기원은 대략 10세기로 추측되지만, 역사적으로 처음 기록된 것은 14세기 후반이다. 올레스코 성은 우크라이나 서부 갈리시아 지방의 오래된 건축물 중 하나로 여겨진다. 몽골 타타르의 침공 이후 지어지기 시작했고, 1390년 로마 교황 보니파시오 9세가 주교를 이곳에 파견하여 머무르게 했다는 기록이 있다. 그러다 폴란드 리투아니아의 귀족의 성이 되었다.
오랜 세월을 거치면서 역사에 기록된 내용만 해도 이곳의 주인이 최소 10번 이상 바뀌었다. 그래서 이곳도 갈리시아 지방의 굴곡진 역사를 대변하는 장소가 아닐까 생각된다. 이곳을 지배했던 사람 중 가장 유명한 사람은 폴란드-리투아니아 연방의 왕 얀 3세 소비에스키이다. 그는 1674년 이곳에서 태어났다. 갈리치아 지방의 카자크인 봉기, 폴란드 주변 여러 나라의 침략과 내전을 정리한 뛰어난 군 사령관이자 국왕으로 이름이 높았다. 특히 1683년 신성로마제국과 오스만제국의 전쟁 중 가장 대규모의 전투였던 '빈 전투'에서 신성로마제국 편에 가담하여 오스만제국을 몰아내는 데 큰 공헌을 한 것으로 유명하다. 오스만제국군에게는 공포의 대상이었다고 한다.
주인이 여러 번 바뀌고 여러 전쟁을 거치면서 파괴되고 다시 건축되었지만, 건물의 바깥 부분은 거의 예전 모습 그대로 보존되고 있다.
올레스코 성, 파드가레체스키 성, 졸로체프스키 성은 리비우의 황금 편자라고 불린다. 세 개의 성의 위치를 지도에서 이어 보면 말의 편자 같은 모습이 된다고 해서 지어진 이름이다. 처음에 이곳에 도착하기 전 우크라이나 현지의 친구가 추천해 준 곳이다. 리비우 시내로부터 떨어져 있고 가기도 복잡했기 때문에 갈까 말까 망설였지만 힘들게 방문한 보람이 있다. 우크라이나의 굴곡진 역사 그리고 아름다운 중세의 흔적이 모두 남아있는 곳에 방문한 의미가 있다.
올레스코 성을 둘러보며, 이곳이 단순한 관광지가 아니라 많은 역사를 품고 있는 장소라는 생각이 들었다. 여러 시대를 거치며 다양한 주인이 바뀌었고, 많은 전쟁과 변화 속에서도 그 자리를 지키고 있는 성의 모습이 인상 깊었다. 특히 얀 3세 소비에스키와 같은 역사적 인물이 이곳에서 태어났다는 사실이 이 성의 중요성을 더욱 실감하게 만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