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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타이준 Aug 12. 2024

로마제국 쇠망사 40 : 국가 재건과 지성의 몰락

부흥의 길, 쇠퇴의 그림자: 유스티니아누스 통치

The reign of Justinian was marked by a revival of the Roman Empire’s grandeur, but also by decisions that would forever change the course of intellectual and cultural history.


유스티니아누스의 치세는 로마 제국의 위대함을 되살린 시기로 기록되었으나, 동시에 지식과 문화에 영원히 영향을 미칠 결정이 있었다.


이 문장은 유스티니아누스의 치세 동안 로마 제국의 부흥이 이루어졌지만, 아테네 학당의 폐쇄와 같은 결정이 지식과 문화 전통에 얼마나 깊은 영향을 미쳤는지를 강조한다.


In the face of the Nika riots, it was Theodora's decisive intervention that ensured the survival of Justinian’s reign and the continued dominance of the Roman Empire.


니카 반란에 직면하여, 테오도라의 단호한 개입이 유스티니아누스의 통치와 로마 제국의 지속적인 지배를 보장했다.


이 문장은 유스티니아누스 통치의 위기 속에서 테오도라 황후의 역할과 리더십이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강조한다.



유스티누스 1세와 유스티니아누스 1세의 즉위


유스티누스 1세는 군인으로 시작하여 황제의 자리에 오른 인물로, 자신의 조카인 유스티니아누스를 후계자로 삼아 제국을 맡겼다. 유스티니아누스는 527년에 즉위하여 동로마 제국의 부흥을 이끌며, 군사적 확장과 법률 개혁을 통해 제국의 영광을 되찾기 위한 여러 정책을 시행했다. 그의 치세는 특히 영토 회복, 법률 정비, 그리고 문화적 재건의 시기로 기억된다.


유스티니아누스 1세의 업적과 실책


유스티니아누스는 동로마 제국의 영토를 다시 확장하고, '유스티니아누스 법전'을 통해 법률을 체계화하여 법적 유산을 남겼다. 그의 정복 전쟁은 옛 로마 제국의 영토를 회복하려는 의도에서 진행되었으며, 특히 북아프리카와 이탈리아의 상당 부분을 다시 제국의 영토로 회복했다. 또한, 문화적 재건의 일환으로 그는 하기아 소피아 성당을 재건하여 제국의 건축적 영광을 새롭게 일으켰다.


그러나 유스티니아누스의 치세에는 큰 실책도 있었다. 그의 대규모 정복 전쟁과 건축 프로젝트는 막대한 비용을 초래하여 제국의 재정을 심각하게 약화시켰다. 또한, 그의 종교 정책, 특히 529년 아테네 학당의 폐쇄는 고대 그리스 철학 전통의 단절을 초래하여 서양 지성사에 큰 영향을 미쳤다. 이러한 결정은 제국 내외의 반발을 불러일으켰고, 장기적으로 제국의 지적 및 문화적 쇠퇴를 가속화하는 결과를 초래했다.


황후 테오도라와 니카 반란


유스티니아누스 1세의 아내인 테오도라는 제국의 중요한 정치적 동반자로, 532년 니카 반란 당시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반란이 일어났을 때, 유스티니아누스는 도망가려 했으나 테오도라가 그를 설득하여 반란을 진압하게 만들었다. 이로 인해 동로마 제국은 다시 한 번 강력한 통치력을 회복할 수 있었다. 테오도라의 결단력은 제국을 위기에서 구해냈으며, 그녀는 제국 역사에서 중요한 인물로 남았다.


니카 반란과 하기아 소피아의 재건


니카 반란 이후 유스티니아누스는 콘스탄티노플의 재건을 시작했고, 그 결과물 중 가장 유명한 것은 하기아 소피아 성당의 재건이었다. 이는 동로마 제국의 위대함을 상징하는 건축물로, 유스티니아누스의 업적을 기념하는 기념비적인 건축물로 남았다.


유스티니아누스의 아테네 학당 폐쇄


유스티니아누스 1세는 529년에 아테네 학당을 폐쇄했는데, 이는 고대 그리스 철학의 중심지를 종교적 이유로 닫은 사건이었다. 이로 인해 서양 지성사는 큰 전환점을 맞이했으며, 그리스 철학 전통의 단절이 이루어졌다.


위대한 업적과 실책의 이중성


유스티니아누스 1세는 로마 제국의 영광을 되찾기 위한 여러 가지 업적을 이루었지만, 그의 결단들이 지적 및 문화적 전통에 치명적인 영향을 미쳤다. 이는 지도자가 내리는 결정이 단순히 단기적인 성공이나 실패로 평가될 수 없으며, 그 이면에 숨겨진 장기적 영향을 신중히 고려해야 한다는 점을 시사한다. 그의 군사적 업적과 법적 개혁은 로마 제국의 위상을 높였으나, 경제적 부담과 문화적 쇠퇴를 초래한 그의 실책은 그 업적의 빛을 바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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