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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타이준 Aug 30. 2022

모스크바 맥도날드 1호점을 기억하며

탈냉전의 상징 하지만 이제는 신냉전 시작의 상징이 되어버린 곳

대학생들이 농담 삼아서 이렇게 말하곤 한다.


"대학 조별과제를 하다 보면 공산주의가 왜 망했는지 알 수 있다."


농담으로 하는 말이지만 이런 단체 활동에서는 공산주의의 병폐가 그대로 드러나는 경우가 많다. 우선 조별과제 같은 단체의 결과물은 구성원 전체가 공유하고 그 사이에 개인의 활약은 결과적으로 드러나지 못한다. 모두가 같은 결과를 공유할 텐데 적게 일하고 많은 결과를 가져가고 싶은 게 당연할지도 모른다.


어떻게 보면 인간의 본성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을 거스른 공산주의라는 이념을 국가의 가치로 삼고 탄생한 소련은 어떻게 발전했고 어떻게 망했을까? 오늘은 모스크바에 있는 소련 붕괴의 상징인 곳을 소개하고 싶다.


모스크바 맥도날드 1호점


맥도날드 모스크바 1호점 모스크바 중심가인 푸쉬킨 광장에 위치하고 있다.

바로 맥도날드 점포이다. 한국에만 수백 개 전 세계에 수만 개가 넘게 있는 그냥 흔한 패스트푸드 점포를 왜 찾아갔냐고 할 수도 있지만 나름 역사적 의미가 있는 곳이기에 이렇게 글을 올린다.  


이곳은 바로 모스크바 맥도날드 1호점으로 1990년 1월 31일에 개점하였다.

맥도날드 1호점 오픈 당시 3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방문했다고 한다.

이 장소는 냉전의 끝을 상징하는 것으로 모습이 전파를 타자 전 세계가 충격에 빠졌다. 개업하자마자 모스크바 시민뿐만 아니라 러시아 각지에서 자본주의의 맛을 보기 위해 수많은 러시아 국민들이 밤낮을 줄 서가며 햄버거를 사 먹었다. 개점 당일에만 3만 명이 넘는 인파가 몰려들어 식사를 했는데 당시 전 세계 맥도날드 점포 중에서 최고 매출 기록을 경신하였다고 한다. 햄버거를 사기 위해 온 인파들 그리고 그 사람들에게 자릿세 운운하며 돈을 뜯으려는 마피아들까지 몰려들어 한동안 아수라장이었다. 자본주의의 상징이나 다름없는 점포가 공산주의의 심장인 모스크바에 들어섰다는 것은 공산주의가 이념적으로 완전히 패배하였음을 의미했고 개방과 개혁은 더 이상 피할 수 없는 것임을 시사했다.


모스크바 맥도날드 1호점 이후 찾아온 공산주의 국가들의 변화


덩샤오핑의 '흑묘백묘론'은 공산주의냐 자본주의냐에 관계없이 인민들이 당면한 문제인 생활수준 향상을 목표로 삼는다는 것이었다.

중국 덩샤오핑의 흑묘백묘론, 베트남의 도이모이 등 1980년대부터 논의되어 오던 공산국가들의 개혁개방은 1990년 모스크바의 맥도날드 1호점을 시작으로 급물살을 타고 자본주의 시장경제 체제의 이행을 시작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북한은 개혁을 표방하며 주체사상을 주장하였는데 실상은 김 씨 일가의 독재를 정당화하는 체제로 변질되었다.

 하지만 모든 공산국가들이 개혁개방을 추구한 것은 아니다. 북한, 쿠바 등 일부 국가들은 자신의 체제가 외부로 노출되면 체제 붕괴의 위험이 생긴다 판단하여 더 심한 쇄국 정책을 시작한 나라들도 생겼다.

1991년 12월 8일 벨로베즈스카야 조약 이후 25일 고르바초프는 대통령직에서 사임하였고 다음날 소련은 해체되고 러시아 연방이 새로 출범하였다.

맥도날드 1호점이 생긴 후 이듬해 1991년 8월에 공산주의 각료들은 자본주의로 물들어가는 공산주의 소비에트 연방을 지킨다는 명분으로 뭉쳐 8월 쿠데타를 일으켰으나 고르바초프와 옐친에게 진압되었고 1991년 12월 26일 사실상 간판만 달고 있던 소비에트 연방은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어쨌든 이런 역사적 한 장면이 된 맥도날드에서 자본주의의 맛이 어떤지 한번 느껴보기 위해 빅맥 세트를 시켜서 먹어보았다. 맛은 한국에서 먹었던 것과 큰 차이가 없었다. 그만큼 메뉴 제조의 표준화가 잘 되었다는 것일까? 맛은 크게 차이가 없었지만 나름 역사적인 장소에서 맛보는 햄버거라 더 각별하게 다가왔던 거 같다.


신냉전의 상징이 되어버린 맥도날드 점포 철수


맥도날드 1호점 자리에 현지 브랜드가 재개장하였는데 개장 당시에 엄청난 인파가 몰려들었다. 과거 1990년대 모스크바 1호점의 모습과 흡사하다.


하지만 이렇게 성업 중이던 러시아의 맥도날드 1호점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한 달 뒤인 2022년 3월에 일시 폐쇄되었다가 5월에는 러시아 시장 완전 철수를 선언하였다. 냉전 종식의 상징이었던 맥도날드 1호점이 영업 중단된 것은 냉전이 다시 시작되는 이른바 신냉전의 시대가 된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지금은 현지 외식 브랜드 '브쿠스노 이 토치카'에서 인수하여 6월에 재 개장하였지만 예전 맥도날드의 그 품질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는 게 중론이다. 현지 브랜드가 인수하며 러시아 경제 제재가 끝나면 다시 맥도날드가 복귀하는 옵션을 걸었다고 하니 아직 러시아 국민들은 맥도날드의 맛을 보고 싶어 하는지 모른다.


나도 스스로 이제 총부리를 겨누며 싸우는 시대는 끝이 났고 경제 전쟁의 시대가 도래했다고 생각했지만 내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가 버렸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대대적으로 침공하며 국가 간 전면전이자 진영 간 대리전이 다시 시작되었고 대러 경제 압박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러시아는 전쟁을 수행 중이며 장기화되고 있다.


언제 다시 러시아 국민들이 맥도날드를 다시 만날 수 있을까? 역사는 정(正)과 반(反)의 대립으로 합명제를 찾아낸다고 한다. 끊임없는 대립을 통하여 점점 나은 방향으로 나간다는 말이다. 하지만 그 대립으로 인하여 사람이 목숨을 잃고 재산을 잃고 하고 싶은 것을 갑자기 못하게 된다면 그게 과연 좋은 것이라고 나중에 떳떳하게 이야기할 수 있을까? 모스크바의 맥도날드의 흥망성쇠를 보며 많은 생각이 든다.


다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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