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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타이준 Sep 06. 2022

러시아를 구한 대역전승 : 모스크바 국방 박물관

모스크바 공방전 : 나치 독일의 첫 패배이자 몰락의 시작

내가 모스크바에 지내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겨울의 추위였다. 겨울이 되면 어김없이 눈이 엄청나게 내렸고 잠시 바깥에 나가려고 하면 살을 에는 추위가 장난이 아니었다. 물론 한국에서도 중부지방에 기록적인 한파가 찾아오면 영하 두 자리 이상 내려가는 것은 기본이지만 이곳은 그런 기록적인 한파가 겨울 내내 거의 빠지지 않고 찾아온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다행이었던 점은 러시아는 산유국이라 그런지 건물 내부에서는 난방을 아낌없이 틀어놓는다는 것이었다. 바깥은 눈이 쌓이고 매서운 칼바람이 불지만 기숙사 안에서는 학생들이 반팔을 입고 다닐 정도였으니까. 만약 자신이 외출을 극도로 꺼리는 집돌이, 집순이라면 러시아에서 사는 것도 나쁘지 않을 듯싶다.


혹한의 추위에서 격돌한 수백만의 대군 : 모스크바 공방전


어쨌든 바깥에서는 서 있기도 힘든 이 날씨에 81년 전 이곳에서 수백만 대군이 격돌한 전투가 있었다고 한다. 바로 2차 세계대전 중의 모스크바 공방전인데 그것을 기념하기 위한 박물관이 있다고 해서 찾아가 보기로 하였다.


박물관 이름은 번역하면 대략 '모스크바 국방 박물관'이다.


모스크바 국방 박물관 러시아어로는 Государственный музей обороны Москвы이고 주소는 улица Мичуринский Проспект, Олимпийская Деревня, 3에 위치하고 있다.




모스크바 8A 호선의 Мичуринский Проспект 역과 Озёрная 역 사이에 위치하고 있어 역에서 내린 후 1.5km 정도 걸어가거나 버스를 (17번 트롤리버스 등) 한번 타면 도착할 수 있다.

박물관 입구 근처로 가니 전쟁 때 사용한 각종 무기들 차량이 전시되어 있었다. 그중에는 카츄샤 다연장로켓도 있다. 소련군은 2차 세계대전 중에 부족한 포병 화력을 보충하기 위해 트럭을 개조해서 다연장로켓 발사기로 활용했다. 특유의 울리는 발사음으로 독일군 사이에서는 '스탈린의 오르간'이라는 별명으로 불리기도 했다.

국방 박물관 입구이다. 매표소에서 표를 끊고 안쪽으로 들어가면 된다. 입장료는 성인 250 루블. 참고로 매주 셋째 주 일요일은 입장료가 무료였다. 나는 그날에 맞춰서 구경하였다.

매표소 바로 옆 입구에는 소련군 최고의 명장 게오르기 주코프의 모습이 보인다. 게오르기 주코프는 1차 세계대전 시절 사병으로 군에 입대하여 사관학교에 진학했고 진급을 거듭하여 최고 계급 원수까지 오르는 입지전적인 인물이다. 전쟁 내내 사실상 소련군을 이끌며 특히 레닌그라드, 모스크바, 스탈린그라드의 포위망을 뚫고 반격의 기회를 제공하였고 마침내 전쟁을 승리로 이끌었다. 최고 권력자 스탈린과의 잦은 충돌로 불편한 관계를 유지하면서도 스탈린은 그의 능력을 인정하지 않을 수가 없었는데 소련 영웅 4회 최다 수훈, 소련군 원수 진급, 최고사령관 대리, 승전 기념일 사열 지휘 등 군인으로서 이룰 수 있는 모든 것을 이룬 인물이라 할 수 있다.


주코프의 판화를 시작으로 박물관이 시작되는데 박물관의 주제는 짜임새 있게 나누어져 있었다.


전쟁 발발 배경과 소련의 반응


히틀러의 저서 '나의 투쟁' 이 입구부터 전시되어 있다. 이 전쟁의 배경을 설명하고자 전시한 듯하다. 히틀러는 자신의 저서에서 "유럽의 새로운 땅이라면 우리는 맨 먼저 러시아와 그 주변 국가들을 떠올릴 수 있다."라고 했다. 이는 히틀러가 젊은 시절부터 주장했던 말로 지금으로 치면 인터넷에서 이상한 소리 하는 키보드 싸움꾼이었다면 아무 문제 되지 않았을 텐데 불행하게도 히틀러는 당시에 독일의 총통이었고 그의 젊은 시절 망상을 실행하기에 충분한 힘을 가지고 있었다.

그렇게 전운이 감돌던 유럽 대륙에 독일의 폴란드 점령을 시작으로 불가침 조약을 맺은 소련까지 공격하며 전쟁이 시작되었다. 이른바 독일의 '바르바로사 작전'으로 총병력을 3개의 집단군으로 나누어 북부, 중부, 남부로 나누어 소련 영토 로진 격 하였다.

독일의 예상치 못한 공격에 당황한 소련은 국가 총동원령을 실시하여 병력을 모으기 시작했다. 독일군은 빠른 진격 속도로 우크라이나와 벨라루스를 점령한 뒤 러시아의 주요 도시 레닌그라드, 모스크바, 스탈린그라드를 압박하기 시작했다. 절체절명의 위기에 빠졌던 것이다.


그중 모스크바의 중요성은 말이 필요 없었다. 소련의 수도이자 정치, 문화의 중심지이고 러시아 전역으로 통하는 길목이기 때문이었다. 독일은 일찌감치 수도를 점령해서 소련을 굴복시키겠다는 목적으로 모스크바 점령에 모든 총력을 기울였다.

이때 남성들은 물론이고 여성들 또한 전투에 참가하고 도시와 전선의 요새화를 위해서 대거 투입되었다.


생각보다 견고했던 모스크바의 대공방어


독일 공군은 모스크바의 대공방어가 취약할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그래서 대대적인 폭격 공격을 시도하면 모스크바에 지상군이 투입되기 전에 항복을 받거나 무력화시킬 수 있을 거라 믿었다.



하지만 그들의 판단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모스크바의 대공 방어망은 아주 튼튼했고 갓 배치된 신형 전투기들이 폭격기를 저지하였다. 그래서 독일 공군은 모스크바에 별다른 피해를 주지 못하고 다수의 폭격기를 잃게 되어 역으로 소련군에게 기세를 뺏겨버렸다.


모스크바 지상전 : 그 치열했던 전투의 현장


전투 지도뿐만 아니라 병사들의 장비들 그리고 전시에 물자를 생산하던 공장의 모습까지 모스크바에 있던 전투와 관련된 모든 것들이 전시되어 있다. 나의 에너지, 나의 힘, 나의 삶을 모스크바를 (지키기) 위하여!라는 문구가 공장에 걸려있는데 이 말 그대로 국가의 모든 역량이 전쟁을 위해서 사용되던 시기였다. 독일 소련 전쟁은 2022년 지금까지도 국가 간 최대 규모의 총력전으로 기록되어 있는데 이 기록이 앞으로 깨지는 일이 없어야 하겠다.

일반 시민들 또한 전쟁 중에 고초를 겪었는데 대규모 공습이 시작되고 폭격을 피해 지하철역 안쪽으로 들어가 생활하였다.

소련군은 어려운 상황에서도 분전하여 모스크바 함락을 허용하지 않았고 독일군의 공세는 무뎌지게 되었다. 설상가상으로 겨울이 찾아오자 러시아의 겨울에 익숙하지 않은 독일군들은 싸우기도 전에 병을 얻고 동사하기 시작하였다. 이에 사령관 주코프는 대대적인 반격작전을 개시하여 독일군을 모스크바 수백 킬로미터 밖으로 독일군을 몰아내는 데 성공하였다. 불과 모스크바 앞 30 킬로미터까지 진격한 독일군 입장에서는 정말 아쉬운 후퇴였고 소련군 입장에서는 기적의 승리였다.


오래도록 기억될 그들의 위대한 승리 '승리의 날'


소련은 모스크바 전투와 스탈린그라드 전투의 승리로 균형을 맞추고 쿠르스크 전투에서는 전세를 역전하여 무서운 속도로 독일로 밀고 들어가 역으로 독일 수도 베를린에 소련의 깃발을 꽂는다. 지금 러시아에서는 2차 세계대전을 '대조국 전쟁'이라고 부른다. 소련 러시아 국민들에게 있어 전쟁의 승리의 의미는 정말 남달랐다. 침략자인 나치독일을 몰아내는 것에 끝나지 않고 독일을 점령하였으며 전쟁 이후 소련은 강대국으로 급부상하였다. 나중에는 미국과 함께 세계질서를 양분하는 한 축이 되었는데 그것은 다 2차 세계대전 승전의 영향이었다. 슬라브 민족 전체를 통틀어서 가장 영광스러운 역사이기에 그들에게 있어 '대조국 전쟁'이라는 명칭은 자존심의 상징일 것이다.


전쟁 중의 사람 못지않은 동물들의 활약


 

소련은 독일과의 전쟁에서 사람뿐만 아니라 동물까지 적극 투입하여 전투를 하였다. 무전기를 메고 있는 개, 구급 물자를 운반하는 개, 방독면을 착용한 개 등의 모습을 볼 수 있다.

그리고 비둘기를 이용하여 서신을 전달하고(전서구) 지뢰탐지에는 쥐를 훈련시켜 활용하기도 했다.


이곳은 러시아 국립 전쟁박물관 (승리 공원)처럼 한국인에게 많이 알려진 곳도 아니고 해서 가기 전에는 큰 기대를 하지 않았지만 생각보다 박물관의 구성이 알차게 되어 있었다. 가기 전에 소련의 대독일 전쟁에 대해서 알고 간다면 더 재미있게 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다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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