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여행 내용은 2019~2020년을 기준으로 다녀온 내용이라 현재 시점과는 다를 수 있음
러시아 대학에서 공부하면서 어느덧 방학을 맞이 하였다. 러시아의 겨울방학은 그렇게 길지가 않고 대신 여름방학이 긴 편이다. (겨울방학 2~3주 , 여름방학 2~3 개월) 짧은 방학이지만 알차게 보내고 싶다는 생각에 러시아에서 가까우면서 조금 신선한 여행지를 찾다 발트 3국에 가보는 게 어떨까 생각했다.
모스크바 북쪽에 위치한 셰레메티예보 공항. 대한민국에서 모스크바로 가는 항공기의 거의 90퍼센트 이상이 이쪽으로 도착한다.
모스크바 셰레메티예보 공항에서 티켓팅을 하고 출국 심사를 받았다. 출입국 심사는 언제나 긴장된다. 나는 출입국 심사할 때는 대답은 무조건 단답으로 말한다. 출국심사대에서 대화가 길어진다는 것은 좋지 않은 징조이다. 혹시나 말실수를 할 수 있기 때문에 조심한다. 어떻게 보면 여행에서 가장 긴장되는 순간이다.
러시아 심사관 : (여권을 보더니) 러시아어 할 줄 아세요?
나 : 예
러시아 심사관 : 학생입니까?
나 : 예.
러시아 심사관 : 어디 가세요?
나 : 에스토니아 탈린.
러시아 심사관 : 유럽연합 비자가 왜 없죠?
나 : 한국인은 필요 없어요.
러시아 심사관 : 그럴 수도 있겠네요 (?) 예 잘 다녀오세요.
나 : 감사합니다.
단답으로 말했는데도 불구하고 대화가 조금 길어진 느낌이 든다. 이번에도 비자 관련 질문이 있었는데 러시아에서 한국이 아닌 제3 국에서 출입국을 할 때 간간히 듣는 질문인 거 같다. 뭔가 심사관에게 한국 여권의 유용함을 설명할 때마다 뿌듯해지곤 한다.
간단한 스낵 종류의 기내식인데 놀라웠던 것은 사과가 통째로 들어있다. 사과를 통으로 들고 먹는 건 실로 오랜만이었다.
비행기에 탑승하고 간단하게 기내식을 먹고 2시간 정도 지나니 탈린 공항에 도착했다.
러시아를 떠나 본격적으로 유럽연합에 발을 들이기 위해 기다리는 입국심사! 또 한 번 긴장하고 그냥 아무 말 없이 여권만 확인하고 보내줬으면 했지만 질문 몇 가지가 쏟아졌다.
에스토니아 심사관 : 영어 할 줄 아세요?
나 : 예
에스토니아 심사관 : 에스토니아 처음 방문이세요?
나 : 예
에스토니아 심사관 : 에스토니아 구경하고 또 어디 갈 거예요?
나 : 라트비아, 리투아니아에 갈 겁니다.
에스토니아 심사관 : 그다음에는?
나 : 모스크바로 돌아갈 겁니다.
에스토니아 심사관 : 그렇군요 에스토니아에 온 것을 환영합니다.
질문은 여전히 많았지만 무사히 입국에 성공하였다. 별거 아니지만 기쁜 순간이다. 이렇게 입국 성공!
에스토니아 지도 에스토니아는 동쪽으로 러시아 남쪽으로 라트비아와 접해있는 나라이다.
에스토니아는 발트해 연안의 발트 3국 최북단에 있는 나라로 면적은 대한민국 실효지배 면적의 45% 정도 인구는 130만 정도의 나라이다. 울창한 삼림이 펼쳐져 있는 자연이 아름다운 나라이자 전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인터넷 메신저 스카이프를 개발한 인터넷 강국이기도 하다.
짐을 찾으러 가니 벌써 사람들이 기다리고 있다.
벤츠 차량이 여기 왜 전시되어 있을까?
수하물 찾는 곳 오른쪽을 보니 멋진 차 한 대가 전시되어 있었다? 뭘까?
다가가 보니 벤츠의 삼각 별 마크가 보인다. 벤츠는 벤츠인데 신차는 아니고 그러니 홍보용 전시는 아닌 거 같은데 뭘까?
옆에 설명을 보니 에스토니아의 2대 대통령인 렌나르트 메리가 대통령 재임 시절 사용하던 관용차라고 한다.
렌나르트 메리는 에스토니아의 작가, 영화감독 출신의 정치인으로 에스토니아 독립운동의 지도자였다. 1980년대부터 그는 반 소련 독립운동의 지도자로 소련 치하 에스토니아의 상황을 국외에 알리고 에스토니아의 세계적인 입지를 넓히기 위해 노력한 정치인이다. 그는 외교부 장관을 역임하고 1992년에 대통령에 당선되어 재선을 거쳐 2001년까지 에스토니아의 2대 대통령으로 재임하였다. 그가 대통령에서 퇴임한 5년 후에 세상을 떠났는데 아직도 에스토니아 사람들이 존경하는 대통령이라고 한다. 그의 이름은 내가 금방 도착한 이 탈린 공항의 이름이기도 하다. (탈린 렌나르트 메리 공항)
이 차는 92년에 벤츠에서 제작한 SE-300 모델이다. 렌나르트 메리가 대통령으로 취임하던 이듬해 1993년에 관용차로 업무를 시작하여 그가 퇴임한 후인 2005년에 에스토니아 국방 방위대 사령관의 관용차가 되었고 2015년에 퇴역하였다고 한다. 1993년부터 2015년까지 장장 22년간 국가를 위해 헌신한 차였던 것이다. 22년을 고생하며 일하고 퇴역한 (대통령 관용차로써만 300,000 km를 주행했다.) 차라고 하기에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상태가 좋아 보였다. 퇴역 2년 후에는 이렇게 공항에 전시되어 에스토니아의 역사의 한 부분을 여행객들에게 이야기를 해주고 있었다. 그냥 오래된 자동차 한 대지만 말로 설명할 수 없는 아우라가 풍겨지는 거 같았다.
에스토니아에 도착하자마자 이런 역사적 사실을 접해 매우 인상 깊었다.
짐을 찾고 출국장을 빠져나온 후 조금만 걸어가면 편의점이 있었다. 편의점에서 대중교통 3일권 카드와 인터넷 유심칩을 구입한 후에 숙소를 찾아갔다. 유심 3.5 유로, 교통카드 7유로(보증금 2유로 포함)
편의점 왼편에 있는 통로를 따라 조금만 걸어 나가면 시내로 가는 버스 & 트램 정류장이 있다. 역시 인터넷 강국답게 버스 출도착 정보와 실시간 위치가 지도에 표시되는데 초행길에도 길을 헷갈리지 않고 숙소까지 잘 찾아갈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