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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련 록의 전설, 고려인 뮤지션 빅토르 최의 공연장

클럽 캄차카 – 빅토르 최를 기억하는 곳

by 타이준



⚠️ 주의사항


이 여행기는 코로나 팬데믹 이전, 그리고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이전의 경험을 바탕으로 작성되었습니다.


현재 러시아의 여행 환경은 당시와 다를 수 있으며,


정치적·국제 정세로 인해 방문이 제한되거나 위험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따라서 본 글의 내용은 단순한 여행 경험 공유일 뿐, 실제 여행 계획 시 참고하지 않는 것을 권장합니다.


클럽 캄차카 – 빅토르 최를 기억하는 곳


러시아 여행 중 가장 감명 깊었던 장소를 꼽으라면, 단연 클럽 캄차카(Камчатка)입니다.


이곳은 소련의 전설적인 록밴드 ‘키노(Кино)’와 고려인 출신 뮤지션 빅토르 최(Виктор Цой)를 기리는 공간이었습니다.


키노는 소련 시대에 활동했던 전설적인 록밴드이며, 그 리더이자 보컬이 바로 고려인 3세 출신의 빅토르 최입니다.



이제부터 그와 키노에 대한 짧은 이야기를 먼저 들려드리겠습니다.


빅토르 최와 키노 – 소련 록의 아이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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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인 빅토르 최는 우연히 록 음악을 접한 후 친구들과 함께 ‘키노’를 결성했습니다.


그들은 소련 사회를 은유적으로 비판하는 가사를 담은 노래를 불렀고, 그 노래들은 당시 젊은이들에게 큰 반향을 일으켜 톱스타 반열에 올랐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인기는 소련 정부를 당황하게 만들었습니다.


록 음악을 자본주의 국가의 퇴폐적인 문화라고 비난하며 금지하려 했지만, 키노의 열풍을 막을 수는 없었습니다.


오히려 당국의 금지 조치에도 불구하고 음반이 불법 복제되어 소련 전역으로 퍼졌고, 젊은이들 사이에서 하나의 문화적 혁명처럼 확산되었습니다.


1987년, 개혁 개방 정책 이후 키노의 활동 제한이 풀리면서 그들의 전성기가 시작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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Группа крови 엘범 커버


빅토르 최는 그의 대표곡 ‘혈액형(Группа крови)’을 발표하며 소련의 국민적 영웅으로 떠올랐습니다.


1990년, 모스크바에서 열린 그의 콘서트는 6만 명의 관객을 동원하며 대성공을 거두었지만, 그해 8월 15일, 그는 교통사고로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의 죽음 뒤에는 소련 정부와 비밀기관이 개입했다는 음모론도 있었지만, 정확한 진실은 여전히 밝혀지지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음악은 지금까지도 많은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클럽 캄차카로 가는 길


빅토르 최를 기리는 장소인 클럽 캄차카는 상트페테르부르크 시내의 한 아파트 단지 사이, 반지하에 위치한 작은 클럽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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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이 내리는 날이었고, 거리 곳곳에는 빅토르 최의 그래피티가 그려져 있었습니다.


그의 얼굴과 가사가 새겨진 벽화들이 이곳이 그를 추억하는 장소임을 알려주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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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을 따라 걷다 보니, 낡은 아파트 단지 사이에 위치한 작은 반지하 입구가 보였습니다.


그곳이 바로 클럽 캄차카였습니다.


이름이 특이한데, ‘캄차카(Камчатка)’는 러시아 동쪽 끝에 위치한 지역의 이름이면서 당시 ‘보일러 기술자’를 뜻하는 속어이기도 했습니다.


빅토르 최가 생계를 위해 보일러 기술자로 일하며 음악 활동을 했던 것을 반영해 클럽의 이름을 ‘캄차카’로 지었다고 합니다.


빅토르 최를 기리는 공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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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구 근처에는 그를 추모하는 기념 표지판이 있었습니다. 그를 기억하고 기리기 위해 만들어진 공간이라는 것이 확연히 느껴졌습니다.


클럽 내부는 작지만 따뜻한 분위기였습니다.


카운터에서는 음료와 함께 빅토르 최와 키노 관련 기념품을 판매하고 있었습니다.


직원이 틀어주는 음악도 모두 키노의 곡들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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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나 싶어 직원에게 말을 걸어 ‘혈액형(Группа крови)’을 틀어줄 수 있냐고 부탁하니, 바로 음악을 틀어주었습니다.


이곳을 찾은 사람들은 맥주 한 잔을 마시며 조용히 그의 음악을 감상하고 있었습니다. 저도 그 분위기 속에서 러시아 록 음악의 상징적 존재를 직접 체감할 수 있었습니다.


러시아에서 만난 빅토르 최의 유산


한쪽 벽에는 빅토르 최의 유품과 실제 사용했던 기타가 전시되어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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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기타는 그의 가족이 직접 기증한 것이며, 클럽 캄차카의 사장은 그의 오랜 친구였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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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클럽 한쪽에는 작은 공연 무대가 있었는데, 이곳에서는 저녁마다 키노의 커버 밴드들이 공연을 한다고 합니다.


(공연 일정은 클럽 캄차카 홈페이지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http://clubkamchatka.r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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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가기 전, 방명록을 작성하고 클럽을 떠났습니다.


음악으로 이어지는 소통


러시아어를 처음 배웠을 때, 제가 가장 먼저 들었던 러시아 노래가 키노의 ‘혈액형’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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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는 단순한 관심이었지만, 그의 음악을 들으면 들을수록 자연스럽게 팬이 되었고, 상트페테르부르크에 간다면 꼭 이곳을 방문해야겠다고 결심했었습니다.


그 목표를 달성한 기쁨도 컸지만, 무엇보다도 음악을 통해 러시아인들과 소통할 수 있었다는 것이 가장 즐거운 경험이었습니다.


그때 저는 러시아어를 유창하게 하지는 못했지만, 같은 음악을 듣고 공감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서로가 연결될 수 있음을 느꼈습니다.


다음번에 기회가 된다면, 저녁 시간에 다시 방문하여 키노 커버 밴드의 공연을 직접 보고 싶습니다.


이곳은 단순한 클럽이 아니라, 러시아 록의 전설이자 고려인 음악가였던 빅토르 최의 유산이 살아 숨 쉬는 곳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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