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화성 융건릉 : 사도세자의 죽음, 정조의 눈물

그날의 비극 그리고 남겨진 그리움의 자리

by 타이준

융건릉 – 남겨진 그리움의 자리


겨울이 막바지에 접어든 것인지, 눈이 한참 내리더니 이제 서서히 녹고 있었습니다.

차가운 공기 속에서도 어딘가 봄이 다가오고 있음을 느끼며, 융건릉을 찾았습니다.

20250215_164220.jpg?type=w1

이곳은 조용하고 한적했습니다.


눈이 쌓여서 복구중이라 출입이 제한된 구역이 많아 사람이 쉽게 오갈 수 없는 공간이었지만, 그 덕분에 능 주변은 오롯이 고요함을 유지하고 있었습니다.

20250215_162802.jpg?type=w1

화성 시민들은 무료 입장이 가능해 종종 산책을 나온다고 했지만, 이곳이 품고 있는 이야기를 생각하면 그저 가벼운 산책로로만 보기 어려웠습니다.

갈림길에서 마주한 두 개의 무덤


융건릉의 초입에서 길이 두 갈래로 나뉘었습니다.

20250215_155316.jpg?type=w1

오른쪽으로 가면 사도세자(장조)와 혜경궁 홍씨의 능, 왼쪽으로 가면 정조와 그의 왕후 효의왕후의 능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먼저 오른쪽으로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정조가 평생 가슴에 품었던 아버지, 사도세자가 잠들어 있는 곳이기에 이곳이 그에게 어떤 의미였을지 생각해 보고 싶었습니다.

20250215_155930.jpg?type=w1
20250215_155944.jpg?type=w1

사도세자는 조선의 왕세자로 태어났지만, 정치적 소용돌이 속에서 뒤주에 갇혀 생을 마감해야 했습니다.


그 비극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던 어린 정조에게 이곳은 단순한 묘소가 아니라 한없이 부르고 싶었던 아버지의 이름이 새겨진 장소였을 것입니다.

20250215_160245.jpg

정조는 왕위에 오른 후에도 아버지의 묘를 여러 차례 옮기며 그를 왕으로 추존하려 했지만 늘 반대에 부딪혔습니다.


그리움과 죄책감, 그리고 무력감이 교차하는 시간 속에서, 그는 끝내 아버지를 왕으로 인정받지 못한 채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리고 한참이 지나, 고종 때에 이르러서야 사도세자는 ‘장조’라는 군주 칭호를 얻게 되었습니다.


아버지와 함께하고 싶었던 정조의 마음은 시간이 지나서야 이루어졌지만, 그가 생전에 보지 못했던 일이었기에 이곳에 서 있는 것만으로도 그 아쉬움이 전해지는 듯했습니다.


아버지 곁에서 잠든 아들


사도세자의 능을 둘러본 뒤, 다시 갈림길로 돌아와 정조의 능이 있는 왼쪽으로 걸음을 옮겼습니다. 정조는 아버지를 그리워하며 살았지만, 정작 자신이 떠난 후에는 아버지와 함께할 수 있었습니다.


그는 생전에는 이루지 못했던 바람을, 죽어서야 비로소 이룬 셈이었습니다. 능 앞에 서서 정조가 마지막으로 남긴 흔적을 바라보았습니다.

20250215_162318.jpg?type=w1

그는 왕으로서 개혁을 추진하고 새로운 시대를 만들고자 했지만, 끝내 뜻을 이루지 못한 채 48세의 나이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의 업적은 후대에 기억되고 있지만, 정작 그가 원했던 가장 단순한 바람, 아버지를 온전히 왕으로 만들고 싶었던 마음은 자신이 떠난 후에서야 이루어졌습니다.

20250215_160604.jpg?type=w1
20250215_162452.jpg?type=w1

두 개의 무덤을 순서대로 둘러보며, 이곳을 마지막으로 찾았을 정조의 모습을 떠올려 보았습니다.


왕으로서가 아니라, 한 아들로서 이곳을 찾았을 때 그는 어떤 기분이었을까요.


그는 이곳에서 아버지를 만날 수 있었을까요? 그토록 지키고 싶어 했던 존재의 곁에서, 이제는 편히 쉬고 있을까요?


시간이 지나도 남아 있는 이야기


융건릉에는 왕이었던 한 남자가 끝내 채우지 못한 그리움과, 시간이 지나서야 이루어진 바람이 남아 있었습니다.


겨울이 끝나고 봄이 오듯, 그들이 품었던 아쉬움도 시간이 지나며 희미해졌을까요.

아니면, 여전히 이곳을 감싸고 있는 바람처럼 누군가의 마음속에 남아 있을까요.


발길을 돌리며, 무덤을 마지막으로 바라보았습니다. 눈이 녹아 흘러내리는 능의 언덕이, 마치 긴 시간 동안 이어져 온 그들의 이야기를 전해주는 것 같았습니다.

20250215_154837.jpg?type=w1




keyword
작가의 이전글상트페테르부르크 : 거대한 성당과 한국의 아픈 흔적